'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 모임인 ‘총체적 부실에 대한 특별법 개정 및 국가위로금 추진결사(총특위추)’ 회원들이 지난 24일 전남 무안군 전남지방경찰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총특위추
지난 24일 전남 무안군 전남지방경찰청 앞에 한 무리의 남녀가 피켓을 들고 섰다. 이들은 2024년 12월 29일 일어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의 유족들이다. 참사가 일어난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이들은 왜 다시 거리로 나서야만 했을까.
이날 시위에 나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 모임의 이름은 '총체적 부실에 대한 특별법 개정 및 국가위로금 추진 결사(총특위추)'로 무척 길다. 이 긴 이름엔 지난 1년 반 동안 이들이 겪은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부 조사를 신뢰하기 힘든 현실, 유족들의 불신 속에 지지부진하기만 한 조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 그리고 점점 지쳐가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유족들….

총특위추의 천병헌 공동대표는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면서 유족들의 정신적 피해가 심각하다"며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쓰러지거나 세상을 떠난 분도 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사고 이후 치매 증상과 저혈당 쇼크를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천 공동대표는 제주항공 참사 당시 형을 잃었다.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남매는 조부모와 어렵게 살고 있고, 딸을 잃은 아버지는 지병이 악화돼 최근 세상을 떠나는 등 유족들의 고통이 점점 깊어지고 있지만 사고 원인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정당한 보상도 기약이 없는 상태다. 과연 1년 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사위 공정성 논란에 1년 허송세월
2024년 12월 29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태국 방콕발 무안행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 구조물 등을 충돌하며 17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사진=뉴시스
당초 참사 원인 조사를 맡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지난해 2월 "최대 1년 반 내에 조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공언대로라면 지금쯤 조사가 끝났어야 하지만 아직 중간보고서조차 발표하지 못했다.
처음 문제가 된 것은 항철위의 공정성 논란이었다. 국토교통부 산하 기구인 항철위는 전직 국토부 관료가 조사위원장을, 현직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사실상 국토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이 위원회가 국토부를 상대로 객관적인 조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게 첫 번째 의구심이었다.

유족들의 의구심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7월 항철위는 비행기가 조류와 충돌한 직후 조종사가 손상이 큰 우측 엔진이 아닌 좌측 엔진을 끈 정황을 사고의 주요 원인을 발표하려 했다. 그러자 유족들은 국토부 책임을 축소하고 조종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중간 조사 결과 발표는 없던 일이 됐다.

항철위가 지난해 3월 한국전산구조공학회에 의뢰한 용역 보고서에 무안공항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다면 '탑승자 전원이 생존했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담기면서 유족들의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항철위는 지난해 12월 공청회 형식을 빌려 중간 조사 결과를 다시 한번 내놓으려 했지만 유족들이 삭발까지 하며 반발하자 무기한 연기했다.
조사위 독립시키자 이번엔 위원장 공석
국토부 산하에 있는 항철위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정치권에서는 항철위 독립 논의가 본격화 됐다. 결국 올해 1월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항철위는 국토부가 아닌 국무총리 산하 독립기구가 됐다. 유족들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암초를 만났다. 독립기구화된 항철위는 반년 가까이 위원장 선임을 못하고 있다. 항철위 관계자는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위원장 결격 사유가 엄격해졌다"며 "특히 최근 3년 이내에 국토부의 용역 연구를 한 적 없어야 하는데, 항공 조사 분야에서 유능한 분들 중에 그런 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실 조사는 거의 다 됐고, 분석 평가가 남은 상황인데, 블랙박스 내용 중 마지막 4분 7초가 없어서 분석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항철위 안팎에선 위원장이 없는 상태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어렵고, 이제 와서 위원장을 새로 선임해 조사 결과를 발표해도 유족들의 불신을 해소하긴 힘들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경찰 특별수사단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넘겨받은 검찰은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 과실 등이 명확하게 확인되기 전에 둔덕 설치 책임자만 먼저 기소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항철위 조사 결과가 나온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항철위는 위원장 없이 표류하고, 검찰은 항철위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대형 참사의 책임을 지고 처발받은 사람은 현재까지 아무도 없다.
유족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해외 전문기관의 검증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국무총리실은 신속하게 용역을 발주하라"고 주장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무안공항 참사 현장을 찾아 "우리 안에서 (조사를) 하려고 하니 유착이니 이런 의심을 받는 것 아니냐"며 "해외 전문 집단에 (사고 조사를) 아예 맡기는 것을 검토해 보라"고 주문했다.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아 취임하면 제주항공 참사 조사와 관련해 유족들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가 첫 번째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