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찾은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AMS동(Advanced Mobility Solution). 이곳은 현대차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를 맞아 연구개발(R&D) 체계를 집약해 놓은 공간이다. 실차를 제작한 뒤 문제를 수정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차량을 만들기 전 가상환경과 디지털 플랫폼에서 대부분의 검증을 끝내는 것이 목표다.
버추얼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룸에 들어서자 270도 곡면 스크린이 운전석을 감싸고 있었다. 실내는 제네시스 G80 운전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 센터 디스플레이는 양산차와 다를 바 없었고, 운전석 아래에는 차량 움직임을 구현하는 대형 모션 플랫폼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차는 남양연구소 시험장을 1mm 단위로 라이다(LiDAR) 스캔해 노면 경사와 요철, 맨홀, 배수로까지 디지털 데이터로 구현했다. 해외 주요 시험로도 같은 방식으로 데이터화했다. 정필영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책임연구원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가상 공간에서 차량의 성능 변화를 예측하고 평가하는 것은 물론 성능 육성까지 가능한 장비"라고 소개했다.
문제는 데이터 용량이다. 1mm 단위로 구현한 시험장 데이터는 1TB를 훌쩍 넘는다. 이를 통째로 불러오면 실시간 주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대차는 차량 주변에 필요한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불러오는 '터레인 서버'(Terrain Server) 기술을 자체 개발해 2025년 12월 세계 최초로 연동에 성공했다. 차량이 이동하는 위치에 맞춰 필요한 정보만 불러오고 지나간 데이터는 즉시 비우는 방식이다. 덕분에 연구원들은 실제 차량을 만들지 않고도 승차감과 조향 성능, 서스펜션 세팅을 반복 검증할 수 있다. 설계가 바뀌면 부품을 새로 제작하는 대신 소프트웨어만 수정해 다시 시험하면 된다.
와이어카는 차량 제작 이전 단계에서 제어기와 배선만 연결해 전장 시스템을 검증하는 플랫폼이다. 기존에는 시작차를 제작한 뒤 오류를 찾아 수정해야 했지만, 이제는 실차가 나오기 전에 대부분의 전장 문제를 걸러낸다. 테스트 벤치 하나에는 300여개의 제어기와 최대 500개의 커넥터가 연결된다. AMS동에는 모두 14개의 테스트 벤치가 구축돼 있으며 중앙집중형 SDV 아키텍처와 기존 분산형 아키텍처를 모두 검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복되는 검증은 대부분 자동으로 이뤄졌다. 공조와 시트, 램프는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스스로 작동했고 화면에는 성공과 실패 여부가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하나라도 오류가 발생하면 연구원들은 통신 로그를 분석해 어느 제어기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찾아낸 뒤 소프트웨어를 수정하고 다시 시험을 반복한다. 실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대신 데이터만 바꿔가며 검증을 이어가는 것이다.
현장 관계자는 "실차에서 기능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발견되면 이후 품질 검증과 협력사 일정까지 모두 영향을 받는다"며 "크리티컬한 문제를 먼저 제거해 다음 단계에서는 완성도 높은 검증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한진수 파이롯트품질검증팀 팀장은 "연관성 있는 포인트 간의 편차와 거리, 평행도를 계산해 실질적인 품질을 판단한다"며 "약 600개의 평가 항목으로 완성된 측정 체계는 그대로 양산 공장으로 이관돼 동일한 기준의 품질을 구현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적층제조 솔루션센터(AMSC)에서는 여러 대의 3D프린터가 쉴 새 없이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금속과 플라스틱 소재를 층층이 쌓아 올리자 형상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김용욱 매니저는 "세계 최초로 도입된 금속 적층 설비로, 주조나 프레스로는 만들 수 없는 복잡한 형상이나 모터 스포츠 부품처럼 강성 확보와 경량화가 동시에 요구되는 부품 등도 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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