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언제 그런 표현을 써?"(기자)
"애들이 매일 써요. 남자애들 절반은 쓰는 것 같아요."(A군)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기자)
"하도 많이 들어서 인터넷에서 찾아봤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표현이더라고요. 좋아보이지 않아요. 유가족이 들으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요."(A군)
지난 1일 경기 안양시 범계역 앞에서 만난 A군과의 문답이다. '운○'는 한 음료의 이름이다. 노 전 대통령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만 '운○' 음료 광고에 한 남성이 산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과정을 조롱하고 희화화하기 위해 일부 극우 사이트에서 이 음료 광고를 '밈(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활용하면서 '운○'란 표현이 널리 퍼졌다.
범계역 근처 학원가에서 만난 중학교 3학년 B군은 "SNS 영상이 바이럴되면서 애들이 '운○'과 같은 표현을 엄청 많이 따라한다"며 "거의 일상어처럼 쓰니까 지난해 말 학교에서 (혐오 표현들을) 쓰지 말라는 공지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 대학교 1학년 C씨는 "극우 사이트에서 만든 밈을 여러 SNS를 통해 초등학생 때 많이 접하게 되고, 그게 고인이나 타인을 향한 모독인지 모른 채 '유행어' 정도로 생각하고 사용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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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조롱을 '암호화'하는 '도그 휘슬' 전략━
전문가들은 이런 극우 진영의 소통 전략을 '도그 휘슬(Dog whistle)'이라고 부른다. 도그 휘슬은 개를 훈련시킬 때 사용하는 호루라기다. 사람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 초고주파로 소리를 낸다. 극단적 세력들은 이를 차용해 하나의 소통 전략으로 활용한다. 즉, 일반 사람들이 들었을 때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혐오와 조롱이 담기도록 '암호화'하는 것이다.폴 잭슨 영국 노스햄튼대학교 급진주의·극단주의 역사학 교수는 지난 3월 학내 연구 네트워크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사람들이 반감을 갖지 않도록 논란이 되는 사상을 은유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극우 진영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그래야 더 넓은 공론장에서 인종차별 메시지 등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그 휘슬은 공격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널리 사용하는 상징"이라며 "감정적이면서도 정치적 의미가 강해 극심한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정 집단에게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면서 비판을 받으면 '장난이었다' '내가 의도한 건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해명하고 빠져나갈 여지를 남기는 것도 '도그 휘슬'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운○' 자체는 혐오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그 표현이 만들어진 배경과 맥락을 알고 있는 이들에겐 직접적인 혐오 표현보다 더 강렬한 상징성을 띈다. 그러면서도 일반인들의 거부감은 덜하다. 대다수 사람들, 특히 10대들은 그 배경과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채 '유행어'처럼 사용한다. 그러다가 이 표현이 문제가 되면 "의미를 잘 몰랐다"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조롱 표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용하는 사람의 심리적 죄책감이 덜하다. 그것이 극우 진영이 노리는 '도그 휘슬' 전략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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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커진 '도그 휘슬' 전략, 폭력의 일상화 우려━
배재고 사태는 '도그 휘슬' 전략의 영향력을 확인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효준 배재고 교장은 지난 1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고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교 야구 전반에 조롱하는 응원 문화가 있었다. 상대 학교를 향해 '가야지, 가야지, 집에 가야지' 식의 구호를 외치는 과정에서 한 아이가 '스타벅스'를 꺼내자 다른 학생들이 따라 외쳤다. 이후 흥분한 또 다른 학생이 '탱크데이'라는 부적절한 표현을 한 것 같다. 스타벅스가 '탱크데이' 마케팅에 대해 사과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적 맥락과 5·18민주화운동의 무게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
'도그 휘슬' 전략은 일상어를 교묘하게 혐오와 조롱의 언어로 바꿔 광범위하게 퍼뜨림으로써 폭력의 일상화를 부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종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연구교수는 "혐오와 조롱의 표현들이 놀이처럼 희화화되면 죄책감과 정서적 수치심을 희석시켜 더 쉽게, 더 자주 사용하도록 만든다"며 "이런 현상이 또래집단의 문화적 코드로 작동하는 만큼 인위적으로 억압하거나 제도적 규제로는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자신은 농담으로 한 표현이지만 상대에게는 굉장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교육과정에서 충분히 다루고, 미디어 리터러시(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정보 문해력)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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