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7일 대상, 삼양사, 사조CPK, CJ제일제당 등 전분당 제조 4개사에 7년5개월간 가격을 공동 결정한 혐의로 담합 사건 역대 최대 규모인 74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3일 서울시내 대형마트에 전분당 제품인 올리고당 등 전분당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분·전분당 제조 4개사에 담합 사건 역대 최대 규모인 74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전분당은 일반 소비자에게 익숙한 품목은 아니지만 음료와 제과, 제빵, 빙과, 소스 등에 식품 산업 전반에 쓰이는 기초 원재료다. 정부가 2021년부터 물가 안정을 위해 가공용 옥수수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담합의 파장은 더 크다.
7일 공정위에 따르면 대상, 사조CPK ,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4개사는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7년5개월 동안 전분과 전분당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7475억7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체별 과징금은 대상 2341억4100만원, 삼양사 2103억4000만원, 사조CPK 2001억3200만원, CJ제일제당 1029억6500만원이다.

이번 과징금은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금액 가운데 가장 크다. 기존 최대였던 2010년 6개 LPG 공급회사 담합 사건 과징금 6689억원을 넘어섰다. 지난 5월 7개 제분사에 부과된 밀가루 담합 과징금 6710억원보다도 많다.


공정위가 산정한 관련 매출액은 6조525억원이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을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로 보고 부과기준율 15%를 적용했다. 4개사에는 조사·심의 협조 감경 20%가 적용됐다. 대상은 법 위반 반복을 이유로 10% 가중됐다.

전분과 전분당은 옥수수를 원료로 생산된다. 전분은 제지, 골판지, 철강 등 산업용 원료로도 쓰인다. 전분당은 전분을 가수분해해 얻는 당류다. 물엿, 포도당, 과당, 올리고당, 알룰로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공정위는 전분당이 감미료가 들어가는 대부분의 식료품에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 구조도 이번 제재의 배경이 됐다. 4개사의 시장 점유율은 전분 95.7%, 전분당 86.4%다. 대규모 장치 산업 특성상 신규 사업자 진입도 쉽지 않다. 이들 업체는 해외에서 가공용 옥수수를 공동 구매·운송해 원가 구조도 유사했다.


정부는 2021년 4월부터 매년 200만톤 안팎의 가공용 옥수수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해왔다. 전분당이 식품 물가와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조치다. 2022~2024년에는 할당관세 한계수량 범위 안에서 전량 0% 관세가 적용됐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 결과 4개사는 할당관세 적용 기간에도 가격 공동행위를 이어갔다. 국제 옥수수 가격이 오르는 시기에는 원가 상승분을 거래처에 반영하기 위해 가격 인상 폭과 시기를 합의했다. 국제 옥수수 가격이 내리는 시기에는 가격 인하 폭을 줄이고 인하 시기를 늦추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가격 인상 합의는 8차례, 가격 인하 관련 합의는 5차례 이뤄졌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기업 간 가격 담합을 넘어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 효과를 저해한 사안으로 판단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품 원재료 시장에서 장기간 공동행위가 이어졌고, 그 영향이 식품업체를 거쳐 최종 소비자 물가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중대하게 봤다. 이에 담합 사건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과 함께 가격 재결정 명령, 3년간 가격 변경 내역 보고 의무를 함께 부과했다.

담합 실행 방식도 구체적이었다. 4개사는 거래처에 제시할 가격 변경 근거와 품목별 목표가격, 적용 시기, 공문 발송 순서와 날짜를 협의했다. 공문 발송일에는 상대방 회사를 찾아가 공문 내용이 합의와 맞는지 확인했다. 우체국까지 함께 가 실제 발송 여부를 점검한 사례도 확인됐다.

거래처 협상에서는 역할을 나눠 움직였다. 거래 비중이 큰 업체가 협상을 주도했다. 다른 업체는 주도 업체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목표가격 수준으로 협상이 이뤄지도록 했다.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대형 실수요처에는 일부 인하를 수용했다. 소규모 실수요처와 대리점에는 판매가격을 유지하는 방식도 사용됐다.

담합 기간 가격 인상이 진행됐다. 공정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옥수수 가격이 올랐던 2022년 11월 전분당 판매가격이 담합 시작 시점인 2018년 5월보다 최대 73% 인상됐다고 밝혔다. 반대로 옥수수 가격이 하락한 기간에는 원가 인하 폭보다 판매가격 인하 폭이 작았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원가 부담이 식품업체와 대리점,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과징금 외에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렸다. 4개사는 국내 판매 전분당 제품 가격을 담합 전 경쟁 상태를 고려해 다시 정해야 한다.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가격 재결정 명령은 밀가루 담합, 인쇄용지 담합 등에 이어 적용된 조치다.

이번 제재는 설탕, 밀가루, 전분당으로 이어지는 식품 원재료 담합 제재 흐름과 맞물린다. 공정위는 최근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담합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전분당 담합은 소비자 판매가격을 직접 정한 사건은 아니다. 다만 기초 원재료 가격을 장기간 공동으로 조정했다는 점에서 식품업계 전반의 원가와 가격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