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A 씨는 그룹 '리센느'의 멤버 원이가 유튜브에서 "무섭노"라고 말한 장면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자 동향 출신 선후배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이렇게 물었다.
"'와 이래 힘드노', '배고프노' 이런 말 쓰잖아."(B 씨)
"'와 이래 무섭노'라고는 하는데, 그냥 '무섭노'만은 안 쓰는 거 아냐?"(A 씨)
"실제 얼마나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냐. 나는 할머니 손에 커서 '와 점마 와 이래 무섭노', '와이카노' 이런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앞으로 괜히 '일베(극우 커뮤니티)'로 몰릴까 조심스러워졌다니까. 사투리 쓰는 것도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C 씨)
지난달 28일 올린 원이의 유튜브 영상이 뒤늦게 논란이 된 것은 MBC경남의 한 PD가 지난 1일 '무섭노'라는 표현을 두고 "혐오 표현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 논란이 전국적 공론장에 등장한 건 부산 출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다.
조 전 대표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산 사투리와 일베 표현 구별법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문문에 '노'를 붙여 사용하는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잘못된 행위임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자 야권에선 "말끝 하나로 아이돌을 일베로 낙인 찍는다"며 반격했다. 급기야 국민MC 유재석이 한 예능에서 "내가 무슨 화를 냈노"라고 말하는 장면이 재조명되는 등 '~노' 논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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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갈등…기름 끼얹고 떠나는 정치권━
가히 '갈등 증폭 사회'다. 그 패턴은 일정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논란에 정치권이 참전한다. 더 세고 , 더 날카로운 용어로 그 논란을 공론장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상대 진영도 침묵할 수 없다. 결국 좌우 진영이 서로를 향해 '말 폭탄'을 쏟아낸다. 그 사이 처음 논란의 시시비비는 사라진다. 남은 건 양 진영간 혐오와 갈등뿐이다.이번 '배재고 사태'가 그렇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도 다르지 않다. 앞서 '배우 조진웅의 소년범 논쟁'도, 기업들의 '집게손 파장'도 동일하다. 정치권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우리 사회는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아무런 성찰 없이 다음 싸움을 준비한다. 갈등 증폭 사회에서 '증폭의 소모전'만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달랐다. 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그의 현재는 잊힌 기억과 추호도 함께할 수 없느냐"며 조진웅을 옹호하고 나섰다. 일부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조진웅의 범죄 이력 폭로 과정에 정치적 배후가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좌파 범죄 카르텔을 인증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배우의 정치적 성향을 둘러싼 좌우 진영간 한바탕 공방이 벌어지는 사이 소년범의 사회 복귀나 공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는 증발해버렸다.
2021년과 2023년 연이어 터진 '집게손 논란'의 결말은 더 허무하다. 집게손은 무언가를 집거나 크기를 가늠할 때 흔히 하는 동작이지만, 남성 중심 일부 커뮤니티에선 '남성 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2021년 GS25가 캠핑용품 행사 포스터에 집게손 모양을 넣었다가 남혐 논란에 휘말렸다. 불매 운동 조짐이 나타나자 회사는 즉각 포스터 디자이너를 징계하고, 사장 및 임원을 교체하며 남성 소비자 달래기에 나섰다.
2023년, 이번에는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에 집게손이 0.1초 등장했다. 젊은 남성 게임 유저들이 분노하자 넥슨도 영상을 바로 내리고 사과했다. 네티즌들은 집게손을 그린 인물로 외주 제작업체 여성 작가를 지목하며 신상을 퍼뜨렸다. 하지만 집게손을 그린 당사자는 40대 남성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치권이 '갈등 증폭자'로 나섰다. GS25의 집게손 논란 당시에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다"고 가세했다. 넥슨 사태 때는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이 "왜 업장에서 사회운동을 하느냐"고 타박했다. 확인되지 않은 남혐 주장에 정치권이 동조하면서 젠더 갈등은 더 깊어졌다. 지금도 어디엔가 집게손 모양이 나오면 어김없이 같은 논란이 반복된다. 정작 젠더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지는 정치권의 관심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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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야구 놓고 "야구부 해체" vs "응원 화환" ━
배재고 사태는 이런 토양 위에서 나온 또 하나의 '갈등 증폭' 사례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으로 불거진 '좌우 이념 갈등'은 한 달여 뒤 카페에서 학교로 옮겨갔다. 야구 시합 도중 배재고 선수들이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자'고 외친 게 논란이 되자 배재고에는 근조화환이 몰려들었다. 이번 사태와 무관한 학생이 많음에도, 학교를 장례식장으로 만든 것이다. 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반복되는 반역사적 혐오 형태를 뿌리 뽑기 위해 야구부 해체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그러자 야권에선 배재고에 대한 징계와 비난이 과도하다며 방어막을 쳤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배재고 학생들과 함께 합니다'라고 적은 응원 화환을 보냈다. 급기야 '5·18 성역화 논란'으로 번졌다. "역사의 성역화로 어린 학생들의 장난에 가까운 일탈도 어른들의 정치가 됐다"고 주장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이병태 부위원장은 결국 사퇴했다. 이 부위원장은 사퇴 직후 이런 글을 남겼다.
"어린 학생들의 스포츠 경기에 쓰인 간단한 구호마저 정치적 도구와 진영 간 이념 대결로 비화하는 현상을 보며,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의견에 조금만 더 유연하고 관대해지기를 호소하고자 했던 것이 제 본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 의도와 무관하게 갈등을 증폭시키는 꼴이 되었습니다. 정치적 민감성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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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의 사과, 광주일고의 용서…갈등 해소의 희망 보여줘━
정치권의 가세로 갈등 증폭의 소모전 속으로 빨려들어간 이들에겐 '혐오의 낙인'이란 또 다른 '사회적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스타벅스 마케팅 담당자들은 업무에서 배제된 채 회사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스타벅스 전체 직원들은 지난달 22일 오후 전국 매장 문을 닫고 역사 인식과 사회적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일부 프로야구 구단과 대학들이 배재고 출신 선수 선발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다만 배재고 사태에서 보여준 '사과와 용서, 화해'를 통한 갈등 해소의 과정은 갈등 증폭에 열을 올리는 정치권을 압도했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 6일 배재고 선수와 학부모, 교직원 등 80여 명은 광주일고를 찾아가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광주일고는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며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어 지난 7일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어제의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고려해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경기장 내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행정적 역량과 지혜를 모아 달라"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선처를 호소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홍경표 광주일고 총동창회 회장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 학생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일은 우리가 바라는 길이 결코 아니다"라며 배재고 선수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한 뒤 광주일고 후배들을 향해 "먼저 관용의 손길을 내밀어 갈등과 분열로 병들어가는 우리 사회에 성숙한 '바른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념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최근 10년간 198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갈등 증폭의 소모전에서 벗어나 갈등 해소의 궤도 위로 진입할 수 있다면 전남광주에 들어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 비용(약 800조원)의 2배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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