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투를 그동안은 너무 나쁘게만 봤는데, 레버리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초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 말을 했을 때만 해도 대다수 국민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정부 안에서도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올해 5월 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후 두 달이 채 안 된 지금은 '레버리지'가 뭔지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레버리지' 발언이 나온 건 사상 첫 코스피 4,000선 돌파 1주일 뒤였다. 무리한 목표처럼 보이던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 대선 공약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때다. 이후 올해 들어 코스피는 '오천피', '육천피', '칠천피'를 거쳐 5월 26일 '팔천피'까지 돌파했다. 그 다음 날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가 시장에 선보였고, 20일 뒤 코스피는 '구천피'까지 넘겼다.
어떻게 봐도 당시 레버리지 ETF는 시장 상황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급하게 도입된 정황이 역력하다. 홍콩 증시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상품으로 빠져나가는 달러를 국내로 돌려 고공행진하는 원-달러 환율을 낮추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 결과는 포모(FOMO·소외 공포)에 쫓겨 뒤늦게 증시에 뛰어든 개인투자자의 계좌를 강제청산 위험에 빠뜨리는 개미지옥이 됐다.
'팔천피' 돌파 다음날 이 상품 도입이 예정됐다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아니라도 정부, 청와대 내의 누군가는 "드러누워서라도" 과속을 경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 1년 차의 막바지이자, '6·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휘슬을 분 사람은 없었다. 금융당국은 최근에야 투자 장벽을 높이기로 했는데, 이 대통령은 "신속, 과감한 추가 보완대책"을 다시 주문했다.
#. "발생하지 않은 갈등 상황을 지나치게 우려하기보다 노사 간 대화와 협의가 필요하다." 올해 3월 10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에 즈음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 말이다. 당시 재계의 우려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사용자' 개념을 넓혀 하청 근로자들이 대기업 등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파업 등 쟁의의 사유를 '근로조건의 결정'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으로 확대한 거다.
법 시행 직후엔 하청 노조들의 교섭 요구 폭증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영업이익 N% 성과급 논란'의 주연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6월 말 발표된 '800조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문제를 내년도 단체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조의 주장은 '호남 반도체' 때문에 조합원이 향후 근무지를 옮겨야 한다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9월 정부, 여당이 입법을 밀어붙인 노란봉투법이 현 정부 최대 역점 사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생겼다. 이 대통령이 "그렇게 따지면 경영권 행사와 관련이 없는 게 없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노동부에 지침 마련을 지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 "원자력 발전소 짓는 데 최하 15년이 걸리는데 지을 곳이 없다. 내가 보기에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 작년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전력수요가 폭증하는 만큼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가장 신속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라며 원전 확대 요구를 반박한 것이다.
이랬던 대통령과 정부가 달라졌다. 간헐성이 큰 신재생 에너지에만 의존해선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품질 좋은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지적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이달 초 "새 부지를 만들지 않더라도 전남 영광 한빛 원전에 2기, 울산 울주 새울 원전에 2기 등 총 4기를 더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고 했다. 부지확보 상태에서는 7년이면 완공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 지난달 2년 차에 접어든 정부는 1년 차 때 이재명 정부와 싸우고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이미 최고 속도로 달리는 코스피에 터보엔진을 붙였다가 탈이 난 경우다. 역대 어떤 정부보다 '노동친화적'인 현 정부가 재계와 야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작년에 도입한 노란봉투법은 "가장 큰 국민적·역사적 성과"의 장애 요인으로 떠올랐다. 원전에 대한 정부의 자세는 2년 차 들어 극적으로 바뀐 경우인데, "과거 발언 사과부터 하라"는 일각의 요구가 있긴 해도 현 정부 '실용주의' 기조에 잘 맞는다는 평가가 많다.
이재명 정부는 1년 차 정책이 난관에 부딪힌 또 하나의 사안을 23일 마주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2년 걸린 대책을 1년 만에 '2배속'으로 추진했지만 '매매·전세·월세 트리플 강세'만 초래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부동산 정책을 놓고 벌이는 청와대 국민토론회다. 이 대통령은 최근 사회개혁과 관련해 "요란하게 하면 멋있을지는 몰라도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했다. 1년 차 때 요란한 '정책 과속'을 통해 배운 교훈들이 2년 차 부동산 정책에 반영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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