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의사결정 체계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와 비서실장 주재 회의를 통해 주요 현안을 조율하고, 중요한 보고도 비서실장을 거치는 체계를 갖췄다고 한다. 한 참모가 특정 현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자 대통령이 "비서실장도 알고 있느냐"고 되물었다는 일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식 회의에서 어렵게 결론을 내린 사안이 밤사이 이유 없이 뒤집히는 일이 허다했다는 지난 정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비선이 없고 공식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해서 권력 운영까지 건강하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대통령실을 보면 정책과 메시지가 이례적으로 일사불란하다. 치열한 토론과 숙의를 거쳐 도출된 결론인지, 처음부터 하나의 방향으로만 의견이 수렴된 결과인지는 국민이 알 길이 없다. 메가 프로젝트를 포함해 초고가 주택 보유세,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등 크고 작은 정책 방향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먼저 제시되고 내각은 이를 챙기는 역할에 머무르는 모습이 반복된다.
요컨대 지금의 국정 운영은 머리만 커지는 가분수 구조를 닮아가고 있다. 대통령실이라는 머리는 갈수록 비대해지는데 내각이라는 몸통은 점점 왜소해지는 것이다. 사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은 커졌지만, 그만큼 권력도 대통령실로 집중돼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검찰 개혁 방향 등 거대 여당과 삐걱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지지층 내부의 이슈이고 웬만한 정책 결정은 거의 대통령실, 즉 대통령 뜻대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정당과 내각, 관료 조직을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장악하고 있고, 내각제 국가에서도 '수상의 대통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프레지던셜라이제이션(Presidentialization)'이라고 한다.
문제는 권력의 집중이 곧 판단의 집중으로 이어지는 것의 위험성이다. 모든 정책의 첫 문장을 대통령이 쓰기 시작하면 청와대 참모들이나 장관은 국정의 동반자가 아니라 대통령 뜻의 '답정너' 실행자가 된다.
2000여 년 전 한비자는 '세난(說難)'에서 권력의 본질을 간파했다. 흔히 '세난'은 군주에게 직언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 글로 읽힌다. 그러나 그의 더 깊은 통찰은 따로 있다. 신하들이 각자의 직분보다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더 골몰한다는 점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래야 살아남든 자리를 보전하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정책의 타당성 보다 '선출직 임기제 군주'라 불리는 대통령의 생각을 먼저 헤아리게 될 때 집단사고의 위험이 시작된다. 집단사고는 토론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이 사라지고 모두가 같은 방향만 바라볼 때 나타나는 조직의 병리다.
그래서 '프레지던셜라이제이션'의 세상일수록 숙의의 통로는 더욱 넓어져야 한다. 문제는 여당 자체가 강성 지지층에 휘둘려 공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 안에서라도 다양한 의견이 끝까지 경쟁하는 구조가 살아 있어야 한다. 참모진 회의도 좋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국가적 의제일수록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한 발 떨어진 전문가 집단과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중요한 축으로 참여해 실질적 자유 토론을 거쳐 정책의 큰 흐름을 설정하는 다층적인 '비공개 숙의 구조'가 필요하다. '부동산 대토론회'처럼 정부가 방향을 상당 부분 정한 뒤 국민 의견을 확인하는 '직접 소통' 방식 보다는 방향을 결정하기 전에 서로 다른 진단과 해법을 놓고 충분히 토론하는 선행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대통령은 모든 문제를 직접 챙기는 해결사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지휘하는 '제너럴 리더'다. 뛰어난 장군일수록 모든 전투를 직접 지휘하지 않는다. 큰 전략은 제시하되 전술은 현장에 맡기고, 서로 다른 지휘관들의 판단을 끝까지 들은 뒤 결정을 내린다. 국가 운영은 전쟁보다 훨씬 복잡하다.
대통령의 '주변' 문제가 잠복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 정부에서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대통령 '자신',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 개인에게 권력과 판단이 함께 집중되는 구조다. 이는 특정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도 '의심'해야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대통령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수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 위에서 다른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 구조를 만드는 것, 앞으로는 그것이 국가의 시스템 경쟁력이자 핵심적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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