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인 사비성이 있던 곳이다. 사진은 사비성 방어를 위해 축조된 부여 가림성. /사진=한국관광공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고요한 그늘과 잔잔한 강바람이 있는 곳을 찾는다면 충남 부여가 제격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인 사비성이 자리했던 부여에는 장엄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곳곳을 거닐며 1000여년 전 이야기를 마주하다 보면 역사 속 인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한국관광공사가 찬란했던 백제의 마지막 숨결을 따라갈 수 있는 부여 여행지 4곳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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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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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성에 오르면 부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성흥산 중턱에 자리한 산성으로 백제 동성왕이 사비성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진. 정상인 성흥루에 오르면 논산 강경과 금강 하류까지 아득히 펼쳐진 풍경이 발아래 놓인다. 숲 그늘 아래 정자에 앉아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백제 멸망의 슬픔이 서린 황산벌과도 40km 남짓 떨어져 있어, 나당연합군에 맞선 백제부흥운동의 마지막 함성이 이곳까지 닿았을 급박함이 그려진다. 산성 내부의 충혼사는 이름 없이 스러져 간 병사들의 넋을 조용히 품고 있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 속 인물의 사연을 품은 '사랑나무' 아래 서면 백제의 옛이야기와 오늘의 낭만을 한 번에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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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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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 로비 가운데 놓인 '부여 석조'는 자연광과 만나 한층 더 눈길을 끈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선사 문화와 백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4개의 전시실과 야외 유물전시장에서 약 1000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상설전시관 로비 홀 가운데 놓여 있는 '부여 석조'는 자연을 활용한 공간 설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천창의 햇빛과 맞닿아 빛나는 돌그릇은 표면에 새겨진 수천년의 세월이 마치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곳곳에 전시된 불상에서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검이불루 화이불치)로 대표되는 백제 예술의 절제 미학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가장 강렬한 순간은 '백제대향로관'에서 찾아온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이곳은 백제 금속 공예의 결정체이자 최고의 걸작인 '백제금동대향로'만을 위해 조성됐다. 어두운 공간 속 한 줄기 신비로운 빛을 받으며 우뚝 서 있는 향로를 마주하는 순간,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고요한 적막과 압도적인 경외감에 휩싸인다. 세밀하게 조각된 백제의 이상향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찬란했던 역사가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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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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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대는 백제의 재상을 선출하는 귀족 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백제의 재상을 선출하던 귀족 회의체인 정사암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정사암 바위'로도 불린다. 재상 후보 서너 명의 이름을 봉해 바위 위에 올려두면 하늘의 뜻이 담긴 도장이 찍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장일치로 뜻을 모으던 신라 화백회의와 달리, 하늘의 결정에 기대어 귀족 간 다툼을 피하려 한 장치에 가깝다. 정자에 오르면 굽이치는 강물과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풍경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백마강 너머로 부소산성과 낙화암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왕진나루와 백제보의 풍경이 펼쳐진다. 선선한 강바람 사이로 스며드는 고대의 숨결은 찬란했던 옛 왕국의 흔적을 여운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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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기와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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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기와문화관에서는 기와에 담긴 역사와 기술을 만날 수 있다. /사진=한국관광공사
백제 시대에 제작된 기와의 역사와 제작 과정, 출토 유물을 전시한 곳으로 기와 한 장에 담긴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야외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한 가마터의 정취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기와 제작의 흔적을 말해준다. 지붕 위를 장식하던 치미를 본뜬 조형물과 연구에 쓰이는 가마, 장작더미가 마당 곳곳에 놓여 있어 고즈넉함을 더한다. 내부 전시관에는 발굴 과정 및 와당의 종류, 발굴된 백제 치미들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다. 유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에서 1000년 전 장인의 손끝이 느껴진다. 8가지 와당 문양을 직접 찍어보는 것을 비롯해 전통 기와와 도자 공예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주변에는 실제 백제 기와를 굽던 가마터 유적인 '정암리 와요지'가 남아 있어 백제 기와 생산 현장을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