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오디세우스가 휩쓸렸던 바다처럼 광대하고, 칼립소의 섬에서 느꼈던 고통의 심연처럼 깊었던 호메로스의 통찰력을 담기 내기에는, 상영 시간이 너무 짧았다. 호메로스는 전작 <일리아스>에서 '클레오스(불멸의 영광)'를 좇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그렸지만, <오디세이>에서는 '노스토스(귀환)'를 선택하는 고뇌하는 인간 오디세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놀란 감독의 캐스팅은 탁월했다. 영원한 젊음과 불멸을 약속하는 칼립소의 유혹을 뿌리치고 인간적인 노스토스를 선택하는 주인공 맷 데이먼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특히 돛대에 몸이 묶인 채 울부짖으며 사이렌의 유혹을 견디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흔히 사이렌의 유혹을 육체적 욕망으로 해석하지만, 원작에서 사이렌이 불렀던 노래는 트로이의 영광과 전지(全知)의 능력을 제안하는 클레오스의 유혹이었다. 오디세우스는 과거의 영광도, 인공지능 따위가 약속하는 전지의 세계도 모두 뒤로한 채 풍랑이 기다리는 거친 바다로, 늙어가는 아내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옆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있던 아내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여! 그의 충직한 역할을 히스패닉계 감초 배우 존 레귀자모가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는 <오디세이>의 또 다른 핵심어인 '크세니아(환대)'를 실천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제우스의 명에 따라, 그리스인들은 손님이 찾아오면 이름과 출신과 신분을 묻기 전에 먼저 물을 건네고 발을 씻겨준 뒤 음식을 대접했다. 20년 동안 이타카의 왕을 기다려 온 에우마이오스는 노인으로 변장한 오디세우스를 진심으로 환대한다. 놀란의 영화에서 크세니아로 이름난 파이아케스족과의 만남이 생략된 것은 아쉬웠지만, 복잡한 문학적 구도를 스크린 위에 풀어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 역할은 칼립소에게 맡겨졌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읽지 않고 영화를 본다면,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다채로운 모험담과 이야깃거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트로이 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배트맨의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는 장면, 식인 거인족을 중세 철갑 복장으로 그려낸 장면, 1,000척의 배를 띄우게 만든 금발의 절세미인 헬레네 역을 흑인 배우에게 맡긴 캐스팅 등이 이런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를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영화 상영 내내, 다양한 모험 이야기가 숨 가쁘게 펼쳐진다. 원작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겪는 다양한 고난과 좌절이 강조되기 때문에 이 역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를 이렇게 시작했다. "내게 말해주오,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 성을 파괴한 뒤 그토록 많은 방랑을 한 사람에 대하여!" "그토록 많은 방랑을 한"으로 묘사된 주인공의 성격에 <오디세이>의 핵심이 담겨 있는데, 이는 '폴리트로폰(πολύτροπον)'이란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천병희 선생은 이를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으로 옮겼는데, 생성형 인공지능에 물었더니 "천의 얼굴을 가진"이라 번역했다. 오디세우스는 거친 파도 너머에서 기다리던 끊임없는 괴물의 공격에 "천의 얼굴을 가진" 인간으로 대처하며 노스토스(귀환)를 완성한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할 날이 머지않았다지만, 우리 인류는 호메로스와 놀란으로부터 '천의 얼굴을 가진 자'로 미래의 상황에 대처할 지혜를 배운다. 놀란은 <오디세이>를 통해 3,000년 전의 고전이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문명의 재건을 위해 새로운 항해에 나서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힘찬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원작에서,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에게 또 다른 사명이 있음을 알린다. 고난의 상징인 노를 어깨에 메고 "소금 친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들"의 땅을 찾아가, 포세이돈 신 앞에서 그 노를 땅에 꽂는 것이었다. 오디세우스가 겪었던 모든 폭풍과 고난은 모두 포세이돈이 일으킨 것이었다. 포세이돈과 화해한다는 것은 자신이 겪었던 "눈물과 한숨의 여정"과 화해하란 뜻일 것이다. 진정한 노스토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눈물로 얼룩졌던 자신의 운명과 화해함으로써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노스토스이다. 놀란의 영화가 끝났고, LA 인문학 강연도 무사히 마쳤다. 나는 노스토스를 이루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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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신과대학장, 연합신학대학원장을 역임했다. 그리스 로마 철학, 르네상스 연구의 권위자로 다양한 저서와 강연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의 설립과 운영을 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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