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22일 시행된 1차 상법 개정으로 이사가 충실해야 할 대상은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 전체'로 확대됐다.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에 대한 공평한 대우도 명문화됐다. 특정 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에 대해 다른 주주가 이사의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기업들은 즉시 이사회 운영 방식을 바꿨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장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84.3%는 상법 개정 이후 이사회 운영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법무·준법팀 중심의 사내 검토 절차를 신설·강화했다는 응답이 47.0%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기준의 부재'가 자리한다. '주주 전체의 이익'을 실무에서 판단하고 계량할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배당을 줄이고 투자를 늘리는 결정은 장기 주주에게 유리하지만 단기 주주에게는 불리할 수 있다. 어느 선택이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기업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안건도 마찬가지다. 이사가 어느 수준까지 각 주주의 이해를 고려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A 상장사는 지배주주가 난색을 보인 배당 확대안을 논의하면서 가결과 부결 중 어느 쪽이 주주 공평 대우에 부합하는지를 따지기 위한 검토 보고서부터 마련해야 했다.
선례 역시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시행 1년은 법원의 판단이 축적되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확대된 이사의 의무가 실제 분쟁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 허용되는 경영 판단의 범위를 두고 기업마다 해석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기준을 삼을 참고서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셈이다.
할인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도 주요 쟁점이다. 제3자 배정과 할인율에 따라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될 수 있어서다. 자금 조달의 시급성보다 주주배정 등 지분 희석이 덜한 대안을 검토했는지, 할인율을 해당 수준으로 정한 근거는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운영자금 조달을 준비하던 B 코스닥 상장사가 제3자 배정 단일안을 주주배정과 공모 등 다른 자금 조달 방식과 비교·검토하는 형태로 다시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쟁점은 계열사 간 거래 조건이다. 과거에는 내부 기준에 따른 거래라는 설명으로 충분했다면 이제는 제3자와 거래했을 경우 적용됐을 조건과 비교 근거까지 남겨야 한다. 물류 자회사와 수수료 계약을 갱신하던 C 회사는 수년째 적용해온 요율표에 처음으로 외부 시장가격 조사 자료를 첨부했다. 더 이상 관행만으로 거래 조건의 적정성을 설명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이사의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결과에서 과정으로 옮겨졌다. 충분한 정보를 검토해 합리적으로 판단했다면 결과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경영판단의 원칙은 개정 이후에도 유지된다. 달라진 것은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음을 입증할 부담이다.
재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소송 부담이 커지면 이사회가 방어적으로 변해 투자 결정이 늦어진다는 지적이다. 검토와 기록해야 할 사항이 늘면서 회의 준비 비용이 커지고 사외이사 기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한 가천대 교수(법무법인 지평 고문)는 "최선과 최악의 시나리오를 검토한 기록, 외부 자문, 이사들의 질의응답이 담긴 의사록이 사후 방어의 근거"라며 "이사회 의사록은 회의 기록이 아니라 재무 리스크 관리 문서로 격이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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