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부터 세 차례 개정된 상법이 순차 시행되며 이사의 의무와 자기주식, 이사회 구성, 주주총회 규칙이 모두 달라졌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오는 9월10일 시행된다. 회사가 번 돈을 어디에 쓸지, 그 결정을 누가 하고 누가 감시하는지가 관행의 영역에서 법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최근 기업 현장에서는 "결정하면 배임, 안 하면 직무유기"라는 말이 나온다. 경영진이 체감하는 변화는 시장의 예상보다 거세다. 1년 새 세 차례 상법이 개정되며 의사결정의 기준은 달라졌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실무에서는 혼란이 크다.
경영진은 기업 안팎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밖에서는 주주와 감독당국이 결정의 근거를 묻고, 안에서는 그 물음에 답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규칙은 바뀌었지만 이를 감당할 조직을 갖춘 회사는 많지 않다.
가장 큰 숙제는 자본효율이다. 벌어들인 자본이 다음 수익을 만들지 못한 채 쌓인다. 이익잉여금의 사용 원칙이 없다 보니 투자 안건이 올라와도 '일단 보유'로 결론이 난다. 돈이 놀고 있는데 이를 점검하는 절차조차 마련해 두지 않은 회사가 흔하다.
주주환원도 마찬가지다. 배당을 '작년 수준'으로 정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정책이 아니라 관행이다 보니 실적이 늘어도 환원은 제자리이고, 그 이유를 주주에게 설명할 논리도 궁색해진다.
지배구조 역시 오랜 과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해는 뒤로 밀린다. 계열사 간 거래 조건이나 합병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 이들의 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사실상 없었다. 핵심 사업을 떼어내 별도 상장하는 물적분할을 둘러싼 반발도 같은 맥락이다. 모회사 주주 입장에서는 보유 가치의 일부가 옮겨 가는 결정인데도 판단 근거를 충분히 듣지 못한 채 결과만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시장과의 소통도 부족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하지 않는 문화가 여전하다.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고도 자본 조달 방식과 투자금 회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미확정'으로 답을 피한다.
당시엔 이를 막을 법 조항이 없었다. 제동을 건 것은 주주의 반발과 감독당국의 압박이었다. 세 차례 개정 상법은 그 역할을 제도 안으로 들여왔다. 이사 충실의무 확대는 결정 과정의 공정성을,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는 쌓아둔 자본의 사용을 문제 삼는다. 독립이사 확대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결정 구조 자체를 바꾸는 조치다.
경영진이 체감하는 '배임 공포'를 두고 전문가들의 진단은 대체로 일치한다. 결정 자체가 아니라 결정의 기록이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법이 회사 규모에 따라 전혀 다른 무게로 작동한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대기업은 법무·IR 조직과 외부 자문을 갖추고 이미 대응에 나섰지만 중견 상장사는 CEO와 CFO, 재무담당 몇 명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김동한 가천대 교수(법무법인 지평 고문)는 "결정 자체가 책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면서 "어떤 대안을 검토했고 왜 그 결론에 이르렀는지 남기지 않은 것이 다툼의 소지를 키운다"고 말했다. "검토의 기록과 절차가 곧 방어 수단"이며 "두려워할 것은 결정이 아니라 근거 없는 결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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