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 1단지. 주변으로 퍼지는 잔잔한 오페라 아리아 선율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음악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글로 정직하게 쓰여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행복플러스 카페`
행복플러스 카페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장애인 생산품 판매시설이었다. 이곳을 변신시키자고 제안한 건 2009년 부임한 이광우(57) 행복플러스 가게 원장이다. KT에서 서울본부장을 역임했던 그는 사회적기업도 경영적인 마인드로 접근했다.
"원래는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아 월 매출이 80만원에 불과했어요. 창고 같은 곳에 물건을 300∼400가지씩 쌓아뒀지만 판매자도 제대로 없었어요. 목동이라는 노른자 땅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거죠."
그는 지상 3층(면적 982㎡) 중 1층은 카페와 진열장으로 꾸미고, 2층은 모임장소로 바꿔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차값도 다른 곳의 절반에 불과하다. 자연히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제는 동네 사랑방이 됐다. 월 매출액도 20배 이상 올라 1800만원에 이른다.
행복플러스 카페는 차와 함께 장애인이 만든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모두 93개의 직업재활기관에서 지적장애 2급 이상의 중증 장애인들이 만든 것이다. 이 원장은 20년 이상을 기업에서 일한 탓에 사회적 기업에 대한 철학도 분명하다. 장애인 생산품도 결코 질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
"품질이 고르지 않아 되돌려 보낸 적도 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동정심을 얹어서 파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장애인 상품이라는 표식을 붙여 팔기보다 품질로 승부하고 싶습니다. 다 똑같은 제품을 팔기보다 장애인들이 좀 더 쉽고 잘 만들 수 있는 상품을 계속 개발할 계획입니다."
장애인에게 너무 혹독한 것 같지만 이 원장도 3급 지체장애인이다. 그는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이후 왼쪽 다리를 약간 절게 됐다.
이 원장은 지금은 자신의 장애를 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예전에는 자신이 가족에게 부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년 전 형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아버지의 얘기에 생각을 완전히 달리했다. 아버지께서 "광우(이 원장)는 우리 집안의 복덩이"라고 한 것. 이유인즉슨 아버지는 젊을 적 가정을 버리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자식이 아픈 것에 마음을 돌렸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제게 장애는 어쩌면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지난해 9월엔 불편한 다리로 짐을 든 채 이동하다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고관절 골절로 3주간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중상이었다. 사고 후 그는 걸을 때 목발이 필요할 정도로 다리를 더 심하게 절게 됐다.
"제가 사고가 난 후 직원들에게 더욱 의욕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됐죠. 나도 이 몸으로 움직이다 이렇게 다치기까지 했는데 여러분도 나가서 마케팅을 해오라고 말이죠. 하지만 사고 전에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던 시기에는 약간 절뚝거리는 것조차 싫었는데 지금은 그 이전처럼만 걸어도 감사할 것 같아요."
이 원장은 행복플러스 가게를 비롯해 서울시 사회적기업 육성 실무위원과 중앙대학교 산업·창업대학원 겸임교수를 동시에 맡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행복플러스 가게에 몸담은 이래 전체 판매액은 크게 증가했다. 카페 수입과 함께 상품을 유통시켜 얻는 매출이 96억여원이다. 서울시에서 보조받는 3억7000만원을 제하면 자급자족으로 꾸려가고 있다. 이 원장은 무조건적인 혜택을 받지 않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지켜가는 셈이다.
"기존 판매시설에만 머물렀다면 외부 사람은 거의 없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머물렀을 거예요. 행복플러스 카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바꿔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상품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문화와 복지가 공존하는 복합멀티 공간으로 꾸밀 생각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행복이 플러스되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제 소신대로 앞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찾아갈 생각입니다."
행복플러스 카페는 목동점 외에도 시청역과 공덕역에 매장을 두고 있다. 장애인 복지 차원에서 매장마다 장애인 바리스타 한명씩을 뒀다. 현재 공덕역 지점은 장애인 근무자가 없는 상황이지만 추후 다시 영입할 계획이다.
장애인 바리스타 이경희 씨 "배움이 있는 직장…보람있어요"
"벌써 6개월째인데 아직도 실수가 많아요."
지적장애 4급 바리스타 이경희(가명·21) 씨는 지난 3월 행복플러스 카페 오픈 때부터 함께 했다. 부천상록학교에서 3년 동안 바리스타 과정 교육을 받았다.
"학교에서 실습할 때와 달리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깜짝 놀랐어요. 실질적인 기술을 많이 배우는 거 같아요."
그는 커피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손님들에게 직접 서빙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손님들 앞에 나서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재밌어요. 제 생각인지 몰라도 단골 몇분과는 친해진 것 같구요. 보람도 느낍니다."
이씨는 올해 2월 학교를 졸업한다. 현재 상록학교에서는 장애인 바리스타 과정을 일반반과 심화반으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매년 10명 안팎의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바리스타로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이씨의 친구들은 주로 외식업체에 취업을 했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인 셈.
이씨는 행복플러스 가게와 1년간 계약했다. 1년 후의 행보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배운 것을 직업에 적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