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 위. 스파이들끼리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고 있다. 순간 한 스파이의 손에서 나온 휴대전화. 삼성전자 애니콜 브랜드 로고가 선명하다. 그러나 상대 스파이의 공격에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치고 만다. 저 앞에 떨어지며 열린 휴대전화 폴더. 다른 스파이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다급한 목소리로 휴대폰에 대고 소리친다. "본부, 본부!"

이쯤 되면 어떤 광고인지 대부분 기억이 날 것이다. 1997년에 방영됐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애니콜 광고다. 스파이로 분해 열연을 펼친 '국민배우' 안성기 씨가 광고 마지막 부분에 본부에서 출동한 것으로 보이는 헬기에 매달려 한결 온화해진 목소리로 "휴대전화는 역시 애니콜"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지금 보면 약간 머쓱하기도 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광고 내용만이 아니다. 휴대전화의 음성인식 기술에 광고의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는 점에 관심이 간다. 광고가 처음 방영됐던 1997년은 거의 휴대전화가 처음 보급됐던 시점이다. CDMA 기술을 이용한 전화보다는 PCS가 더 많이 사용되던 때다. 그런 시점에서 음성인식에 마케팅 포인트를 둔 전화가 있었다는 점은 놀라울 뿐이다.

점점 커지는 음성인식시장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요즘, 음성인식기술은 새로운 IT 트렌드가 되고 있다. 세계 IT 트렌드를 선도하는 구글이 온라인 기반의 모바일 음성솔루션을 제공한 것이 단초가 됐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IT세트업체들은 너도나도 음성인식기술을 자사의 서비스나 제품에 접목하기 위해 궁리 중이다.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구글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순한 웹 검색 수준을 넘어선다. 휴대전화, 태블릿PC 등 모바일기기 내에서 각종 기능을 작동시키는 것과 전화번호부 검색, 파일 검색 등 통합 서치 기능을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존에 단일 입력수단으로 지위를 누려오던 터치스크린의 위상이 흔들릴 정도다. 사용자 편의가 증대되는 것을 물론이다.

서비스뿐만이 아니다. 적용기기도 확대되고 있다. 모바일기기 중심에서 이제는 스마트TV나 자동차 등으로 적용처가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미국소비가전전시회(CES)에서 공개한 구글TV용 스마트박스는 음성인식기술을 내장하고 있다. 아직 정식제품을 출시한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TV의 발전방향에 음성인식 기술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아우디와 포드, 현대자동차 등 세계 자동차메이커들은 CES에서 일제히 스마트카를 선보였다. 음성인식을 통해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고, 음성인식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해 자동차 안에서 정보검색이 가능한 것처럼 스마트카에서도 음성인식 기술은 핵심적인 입력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전격Z작전>에서 주인공 마이클(데이빗 하셀호프)이 "가자 키트"를 외치던 장면이 실제 모습이 될 때까지 그리 긴 시간이 남지 않았다.

김성태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음성인식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과 이를 탑재한 스마트 디바이스의 증가는 입력방법 다변화 측면에서 사용자 편의를 크게 제고시켜줄 것"이라며 "TV, 자동차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음성인식을 포함한 음성기술의 활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2013년 53억달러 규모로 커진다

시장 성장성에 대한 기대도 크다.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음성언어 및 인공지능시장 규모는 2010년 30억달러 수준에서 2013년 53억8400만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때 휴대전화 광고에서 잠깐 선보였다가 생명이 끝난 것으로 생각됐던 음성인식 기술이 그렇게 알게 모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임베디드 음성솔루션의 글로벌 리딩업체는 미국의 뉘앙스(Nuance)사다. 뉘앙스는 70여개국에 음성솔루션을 판매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으로 50여개에 이르는 다양한 언어DB를 바탕으로 음성솔루션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사업영역은 모바일, 자동차 및 헬스케어 임베디드 음성솔루션으로 지난 6년간 연평균 매출성장률(CAGR) 40%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2010년 예상 매출액은 12억달러로 추정된다. 국내 주요 세트업체들도 뉘앙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주요 IT세트업체들도 음성솔루션을 뉘앙스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업체의 경우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음성솔루션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에서도 관련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의 성장성에 비해 관련기업들의 움직임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 증권업계의 해석이다. 자칫 음성산업 성장의 과실이 모두 해외로 빠져나가 버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음성사업 추진…주가도 화답

뒤늦게나마 음성솔루션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코스닥 기업인 디오텍은 최근 국내 음성인식회사인 에이치씨아이랩(HCI  LAB)의 지분을 51% 인수했다. 에이치씨아이랩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음성인식사업을 하고 있고, 삼성종합기술원의 연구인력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회사다. 한국, 중국, 일본어, 영어 등 4개 언어에 대한 음성합성과 음성인식 기술을 가지고 있다.

디오텍은 또 최근 스위스 에스브이오엑스(SVOX)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기도 했다. 에스브이오엑스는 검색엔진 구글, 노키아, 아우디, BMW 등 글로벌기업들의 음성인식사업의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다. 특히 자동차 텔레매트릭스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22개 언어의 음성인식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오텍의 주가는 음성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며 지난해 연말 7200원대에서 움직이던 주가가 최근 9000원대 수준까지 상승했다. 디오텍이 필기 인식 솔루션이나 명함 인식 솔루션 등을 주요 IT세트업체에 공급하고 있는 만큼 음성솔루션도 본격적으로 사업화가 되면 이들 업체에 공급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성태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휴대폰에서 음성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음성으로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 등은 벌써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을 정도로 음성인식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며 "음성인식 기술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인간과 대화하는 지능형 컴퓨터의 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