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가 잦으면 XX가 나온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 또 한번 증명됐다.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지난 14일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으로 취임했다. 강 회장은 산은지주 회장에 내정되기 전부터 우리, 신한, 하나금융 등 금융지주회사의 임기가 모두 끝나면서 가장 유력한 회장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금융지주 회장에 관심 없다"고 밝히면서 지주 회상 인사에 '강만수 변수'는 사라졌었다. 그리고 실제 이들 3개 금융지주에 강 회장은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3월 초 산은지주 회장에 이름이 다시 거론되더니 결국 산은지주 회장에 취임됐다.

다른 금융지주는 '회장추천위원회'의 인터뷰를 거쳐 이사회에서 선임했지만, 산은지주는 국책은행 인만큼 법에 따라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금융위원장의 제청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삼고초려를 했다고 하지만, 강만수 회장의 전력을 보면 '대통령의 인물'을 선택했다고 보는 시작이 우세하다. 특히 산업은행장은 그동안 차관급이 가던 자리였는데, 강 회장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사람이었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강 회장은 행정고시 8회다. 그러나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강 회장보다 15회가 늦은 행시 23회다. 강 회장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한참 후배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MB정부 출범 후 4번째 보직 '회장'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설계자', 'MB의 경제 멘토' ….

강만수 회장을 설명할 때 함께 따라다니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 회장은 MB노믹스의 핵심인 747(연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달성을 위해 임기 내내 고환율・고성장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물가를 급등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 대기업들의 투자를 늘기기 위해 소득세, 상속세, 법인세, 종부세 등의 세금을 낮췄거나 인하를 시도해 부자편에만 선다는 혹평도 들었다.

강 회장은 경륜으로만 보면 잘 나가는 경제관료였다. 강 회장은 1970년 행정고시 8회로 합격해 경주세무서 총무과장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재무부 보험국장과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 주미대사관 재무관,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원의 마지막 차관을 역임하는 등 세제와 금융, 예산 등 핵심요직을 두루 거쳤다. 재무부 재직 시 부가가치세 및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금융시장 자율화, 금융감독제도 개편을 추진했다. 그러나 재경원 차관 시절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무역협회 상근 부회장, 디지털 경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외환위기 이후 공직에서 물러난 강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정책조정실장을 맡아 공약을 다듬었고 인수위원회에선 경제1분과를 책임졌다. 현 정권 출범 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공직에 복귀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은행 외화부채에 대한 100% 정부 지급보증 ▲적자재정 ▲재정 조기집행 등을 단행했으며 '한ㆍ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이끌어내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2009년 각료 교체 때 장관직 옷을 벗었지만, 현 정권과의 인연을 계속됐다. 2009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이번 산은지주 회장까지 보면 이 대통령 취임 이후 평균 1년에 한개씩의 보직을 맡은 것이다. '회전문 인사'의 종결자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단순히 강 회장의 복귀라고만 보지는 않는다. 돌아왔다는 말 보다 대통령이 더 좋은 자리로 보낸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이 같은 말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김석동 위원장이 "(강 회장의) 연봉 인상이 필요해 협의혀 보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임 민유성 회장의 경우 4억6000만원의 연봉을 받았는데, 이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이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강 회장의 연봉은 민간 금융지주 회장 수준인 10억원 수준으로 대폭 상승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고액 연봉 논란에 대해 강 회장은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현 산업은행장의 연봉을 현 수준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강 회장이다.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공기업 경영합리화를 위해 산업은행 연봉을 낮췄다. 자신이 낮춰놓은 연봉에 대해 관계 없는 일이라고 넘어가는 것이 그래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청와대에서 "더 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제동을 걸어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다시 살아난 메가뱅크론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의 당면과제는 산업은행의 민영화다. 그리고 정책금융의 재정립 등 구조개혁도 고민해야 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산은엔 현안 문제가 많아 믿고 통으로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며 강 회장을 추천한 이유를 밝혔다. 그만큼 민영화와 정책금융의 통합 문제가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사실 강 회장은 '메가뱅크(초대형 은행)론자'다. 아니 메가뱅크 주창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 회장은 현 정권 초기부터 자산 500조원대의 메가뱅크 구상을 해왔다. 세계 금융시장을 메가뱅크들이 쥐고 흔들고 있는 만큼, 국내도 2~3개의 메가뱅크 체제로 움직여 세계 금융시장에서 다른 나라의 금융회사들과 어깨를 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강 회장은 산업+기업+우리은행을 합쳐 글로벌 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지만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글로벌 메가뱅크로부터 발생되면서 메가뱅크의 위험성이 대두됐고 메가뱅크론도 자연스럽게 사그러들었다.

그러나 강 회장이 산은에 입성하면서 금융권는 다시 메가뱅크 논란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강 회장이 취임함에 따라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메가뱅크의 밑그림이 새로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 회장은 취임사에서 "세계로 더 뻗어나가기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은행이 필요하다"며 "산은금융그룹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며 산은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했다.

여기에 삼고초려로 강 회장을 데려온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자본시장법 시행 2주년을 앞두고 대형투자은행(IB)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따라서 금융시장의 재편은 불가피한 수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산은지주(자산규모 159조원)와 우리금융(326조원)이 합병하면 강 회장이 장관 시절 원했던 자산 500조원 규모의 메가뱅크가 탄생하게 된다. 메가뱅크를 만들기 위한 우리금융과 산은지주의 합병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특히 강 회장이 취임하기 이전부터 우리금융의 자회사인 우리투자증권과 산은지주 자회사인 대우증권의 합병론이 제기된 바 있다. 업계 최상위에 있는 사실상 공기업 두개사가 합병하면 대형 투자금융회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정책금융공사 등 4개 정책금융기관을 통합해 기능을 재편하는 방안도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제기되고 있다.

일단 강 회장은 취임식 후 기자들이 메가뱅크에 대해 질문하자 "메가뱅크 추진 여부는 금융당국이 결정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장관 시절에는 뚝심과 강한 소신 때문에 '강고집'으로 불렸다. 그런데 그 고집과 뚝심이 사라지고 몸사림이 느껴진다.

강 회장은 취임사를 마치고 건배사로 "원더풀"을 외쳤다. 산업은행이 '원'하는 것보다 '더' 크게 '풀'리라는 의미를 지녔다. 과연 이 강 회장이 외친 '원더풀'에 담기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