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부는 3월이라지만 코스닥증시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올해도 회계감사의 문턱을 넘지 못한 12월 결산법인이 속출하면서 코스닥 기업 30개사가량이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평소 '문제아'로 거론됐던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거래소나 증권사에서 유망하다고 추천한 종목까지 '블랙리스트'에 오르자 투자자들은 좌불안석이다.
◆유망하다더니..상장폐지 위기에
디젤자동차 배기가스 저감장치 제조업체인 포휴먼은 지난 28일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고 밝혀 시장을 놀라게 했다. 포휴먼은 지난 2008년 6월부터 거래소가 선정한 '코스닥 스타지수'에 편입된 종목이다. 스타지수의 선정 기준은 재무 안정성, 경영 투명성, 시장 대표성 등으로 이에 합당한 우량 종목 30개가 지수를 구성한다.
증권업계에서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가시화되자 포휴먼을 수혜주로 꼽았다. 실제로 포휴먼의 주가는 일본 닛산디젤 연구소와의 전략적 제휴 체결, 서울시 매연저감장치 부착 의무화 등의 호재에 상승했고,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는 더 몰렸다.
그러나 실적은 시장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난해 영업손실 434억원으로 전년보다 손실 규모가 30배나 급증했다. 주가는 바로 6000원대에서 1005원까지 주저앉았다. 결국 포휴먼을 스타지수 편입종목으로 선정했던 거래소는 2년여 만에 이를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스타지수에서 제외했다. 관리종목이라는 이유로 스타지수에서 퇴출된 건 2004년 스타지수가 생긴 이후 포휴먼이 처음이다.
대선조선은 지난 3월11일 자기자본 전액 잠식, 3년 연속 대규모 손실 발생 등으로 인해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거래가 정지됐다. 주권 거래매매 정지 직전 마감가는 2만1500원으로 상폐 위기에 몰린 기업 가운데 가장 높다.
대선조선은 지난해 3월 관리종목으로 지정됐을 때만해도 2만원대 중반에서 거래되던 종목이다. 이후에도 벌크선 수주 공시가 뜨면서 주가가 5만원을 넘어서기도 했으나 결국 실적 악화의 벽을 넘진 못했다.
에코솔루션과 씨모텍은 유상증자 이후 감사의견 '거절'이라는 철퇴를 맞은 경우다. 에코솔루션은 유진투자증권 주관 아래 일반공모 형식으로 98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유무선 통신장치 제조업체 씨모텍도 올 1월 연구개발 투자 목적으로 278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100% 주주와 개인투자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종목 모두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폐 사유가 발생했다. 특히 씨모텍은 '거절' 의견을 받은 지 이틀 만에 대표가 자살하면서 투자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코스닥 올해도 '퇴출대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1일 오전까지 올해 자본잠식이나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12월 결산법인은 코스피증시에서 6개, 코스닥증시에서 22개 등 모두 28개다. 감사의견은 적정ㆍ한정ㆍ부적정ㆍ의견거절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이나 '부적정' 판정을 받으면 상장폐지 사유가 되고, 해당 기업이 7일 이내에 이의신청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감사보고서를 내지 못한 상장사는 코스닥증시의 알피전자가 유일하다. 제때 감사보고서를 내지 못한 기업의 상당수가 상장폐지됐던 사례를 감안하면 올해 퇴출 대상 기업은 30개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네오세미테크 등 39개사가 퇴출됐다. 2009년 40개사, 2008년 16개사가 시장에서 떠나야만 했다.
2009년 이후 회계감사로 상장폐지가 늘어난 건 2009년 초 상장폐지 실질심사가 도입되면서 회계감사가 엄격해진 결과라는 관측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적이 악화되면서 자본잠식이 많아진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실질심사는 감사보고서 미제출과 부도, 자본잠식 등 기존 상장폐지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분식회계나 횡령, 배임 등 상장사로 부적격한 이유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상장폐지시킬 수 있는 제도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실적 부진이 심각하진 않으면 '적정' 의견을 쉽게 받았지만 2009년부터 회계감사에서 '합격'되도 실질심사에서 걸릴 수 있게 되자 회계법인의 감사가 전보다 엄격해진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실제로 감사의견 '거절'로 상폐된 기업은 2009년 13개에서 지난해 19개로 늘었다.
◆'잡주' 걸러내고 옥석 가리기 제대로 되야
회계감사를 통해 증시에서 퇴출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코스닥 기업이 많다. 게다가 이들 기업의 대부분이 개인 투자자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코스닥 상장사 퇴출은 결국 개인의 피해로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전한 증시를 만들기 위해선 합당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장사는 솎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해 연속 '퇴출 대란'이라고 불릴 만큼 수십개 기업이 상장폐지되지만 여전히 코스닥증시에는 1700개에 달하는 기업이 상장돼 있다"며 "증시에 오래 몸담았다는 전문가들도 어떤 기업이 상장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자격이 안 되는 기업을 상장시키는 것부터 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회상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한 애널리스트는 "실적이 나쁜 기업이라도 우회상장이라는 문을 통과하면 코스닥증시에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며 "거래소와 증권사들이 양질의 기업보다 많은 기업을 상장시키려 하고 사후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 분석의 역할을 맡은 증권사들이 제대로 분석하는 코스닥 기업이 손에 꼽힐 정도라는 것도 문제다. 일부 대형 증권사의 경우 실제 분석하는 코스닥 기업은 30개에 불과하고 이 중에도 '투자의견을 매길 수 없다'(Not Rated)며 목표주가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증권사 스몰캡 팀장은 "시가총액이 몇천억원에 달하는 대형주든, 시총 500억원에 불과한 기업이든 분석에 드는 노력이나 에너지는 동일하다"며 "증권사 입장에선 한정된 인력으로 코스닥 기업을 모두 대형주 분석하듯 보고서를 내놓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관리에 소홀한 거래소나 증권사, 쉽게 고수익을 보려는 투자자들 모두 각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근해 우리투자증권 팀장은 "애널리스트가 기업의 주가를 정확히 맞출 수 없다고 하더라도 보고서에서 제시한 실적 전망치와 실제 실적이 크게 차이나선 곤란하다"며 "시장에서 일정 요건이 되지 않은 기업을 가려내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