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00원. 길에 떨어진 돈이라면 주변 시선을 의식해 줍지 않고 그냥 지나칠 법한 가벼운 액수다.

하지만 기름값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유류비를 생각하면 단돈 100원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어느덧 10원이라도 더 싼 기름을 넣기 위해 인터넷 삼매경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운전자별로 상황은 다르지만 자가 차량으로 출퇴근하는 경우 리터당 100원 할인이면 하루 1000원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가 생긴다. 한달이면 2만2000원, 3개월이면 6만6000원 꼴이다.

정부의 유류가 인하 요구에 지난 7일 정유업계는 휘발유와 경유에 대해 ‘리터당 100원 할인’ 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놓쳐버린 풍선마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기름값에 무게추를 단 것이다.

소비자들은 정유업계의 ‘통큰 할인’을 환영했다. ‘3개월’이라는 조건부가 붙긴 했지만 말이다. 소비자들은 당장 주유소로 향했다. 근데 웬걸? 100원 할인 받기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떤 곳은 카드가 있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곳은 카드를 쓰면 안 된다고 한다.

기대 이하의 할인율을 적용받거나 아예 할인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할인 발표가 거짓이었냐며 10원 싸움에 뛰어들었다가 이내 돈 몇푼에 흥분하는 자신을 보면 머쓱해진다.

왜 기름값 할인이 이처럼 복잡하고 쉽지 않은 걸까? 주유소별 할인조건과 정유업계의 계산법을 살펴봤다.

◆업계 선두 SK의 발 빠른 계산법

시장점유율 35%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SK에너지는 정부의 유가 인하 압박에 선제 대응한 케이스다. 정유업계에서 가장 먼저 리터당 100원 할인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동안 정부는 정유업계에 유가 인하 요구를 주장해 왔다.

 

‘뒤통수를 쳤다’는 경쟁사의 비난을 들어가면서 까지 감행했던 할인 선언이다. '소비자들의 유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것이 SK의 선제 할인의 변이지만 그동안 신용카드 청구할인방식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가격 할인을 선언해 시장에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타 정유사에 비해 며칠이라도 더 준비하고 고민한 덕에 SK에너지는 주유 시 리터당 100원을 소비자에게 직접 돌려주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SK가 자랑하는 OK캐쉬백으로 포인트 100원을 적립해주는 방식이다.

 

이 경우 주유업계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대신 복잡한 과정이 남는다. 할인을 받으려면 OK캐쉬백 적립카드(현금 결제 시)나 OK캐쉬백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신용카드 결제 시)가 있어야 한다. 해당 카드가 없다면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

 

SK 측은 할인 미적용자를 위해 현장에서 직접 카드 발급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자사 포인트 카드 유치를 위한 수단이 되는 셈이다.

 

SK의 입장은 다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이미 3500만명이 OK캐쉬백 가입자다. 오히려 고무적인 것은 활성화가 된다는 점”이라며 고객 유치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포인트를 적립했다고 해도 당장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인트는 활용면에서 한계가 있는데다 5만점 이상 됐을 경우에야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주유 할인금액으로만 이 점수를 모으려면 13일 보통휘발유 기준(리터당 1985.67원) 99만2835원을 주유해야 한다. 5만원 돌려받기 위해 100원 할인 기간 내내 SK만 이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SK에너지는 포인트를 현금으로 쌓아 돌려받기 어렵다면 주유할 때 현금처럼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SK에너지 관계자는 “1포인트라도 주유 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며 “특정  카드와 결합 시 최대 리터 당 150원까지 가격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20일 각종 언론매체의 최대 광고주는 SK에너지였다. 전 일간지와 경제지, 무가지 1면에 '금일부터 모든 신용카드는 SK주유소에서 리터당 100원 할인된다'는 내용의 대대적인 광고를 집행했다. 선제 할인 선언 이후 두번째 차별화 전략인 셈이다.


◆정유 3사의 순진하지 않은 셈법

SK에너지의 선제공격에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100원 인하바람에 동참해야 했다.

급박하게 준비한 터라 포인트로 돌려주는 방식을 적용하지 못했다. 대신 주유소에 100원을 낮춰 공급하겠다는 ‘순진한 방식’을 선택했다.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의 경우 100원 할인이 효과를 봤지만 문제는 자영 주유소였다. 미리 확보해 놓은 휘발유·경유의 가격이 할인 전 수급물량이라는 이유로 할인 폭을 낮춰야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

10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SK에너지를 제외한 정유사의 직영 주유소 휘발유가격은 91원 하락한 반면, 자영 주유소는 36원에 그쳤다. 경유 역시 직영 주유소가 89원 낮아진 데 반해 자영 주유소의 하락폭은 29원이었다.

문제는 직영에 비해 자영 주유소의 수가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정유사별 직영 주유소의 수는 GS칼텍스가 3400개 중 300개, 현대오일뱅크가 2300개 중 300개, 에쓰오일은 1900개 중 150개 정도다. 3사의 간판을 달고 운영하는 주유소 가운데 10%도 되지 않는 주유소만 100원 할인이 적용됐다는 의미다.

정유 3사가 할인된 공급가격을 제시하더라도 주유소가 인하된 가격만큼 공급하지 않는다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일부 주유소는 그간의 손실 보전을 이유로 할인 폭을 20~30원으로 낮춰 운영하기도 했다. 100원 할인을 기대했던 소비자와의 충돌이 불가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가 폴 주유소(특정 정유사의 간판을 달지 않은 주유소)의 경우 상황은 더 암담하다. 이들 3사는 자가 폴 주유소에 공급하는 유류에 대해 할인 가격을 적용하지 않았다. 매번 최저가 공급 순위 상위권에 랭크됐던 자가 폴 주유소가 7일 이후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다.

그동안 자가 폴 주유소는 정유업계의 골칫거리였다. 한국석유공사가 밝힌 1~3월 휘발유 가격을 보면 자가 폴 주유소는 정유사 폴 주유소의 가격에 비해 약 40원가량 싸게 공급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자가 폴 주유소 활성화를 위해 ‘석유품질보증 프로그램’ 등 지원책을 준비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결국 정유업계는 100원 가격 인하로 소비자의 환심도 사면서 세를 불리고 있는 자가 폴 주유소를 견제하는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순진한 방식’에도 그들만의 계산이 숨어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