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경제 세계에서는 새로운 큰 구간이 시작되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구간에서는 선진시장보다 이머징시장이 위기에서 더 잘 벗어나며 경제가 회복되어갔다고 정리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선진국에서는 정책수단을 통한 노력에도 회복세가 만족스럽지 못하여 통화량을 더 푸는 양적완화정책을 사용했다.
반면에 이머징시장은 선진시장보다 회복세가 좋은 편이면서 선진국에서 풀려나오는 돈까지 흘러들었기 때문에 이머징국가에서 환율이 떨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나의 큰 구간 안에서 자리 잡은 추세는 그 구간의 특성이 무너질 때까지는 계속 유효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언제까지 환율이 떨어질 것인가, 얼마까지 떨어질 것인가에 대한 예상보다는 추세가 진행 중인가, 추세가 끝나가는가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환율이 가지고 있는 두개의 얼굴을 보아야한다. 즉 ‘무역수지’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환율의 효과와 상황 전개가 어떤 지를 보아야한다.
◆무역수지
선진시장에서 신흥시장으로 흘러들어온 돈에 의하여 환율이 하락하여 통화의 가치가 높아질 때 신흥시장국의 제품이 선진국에서 팔리는 가격이 올라가서 수출에는 불리한 영향이 나타난다. 경제성장을 위해 수출을 늘리고자 환율을 제어하고픈 마음이 두 국가 사이에 극단적으로 충돌하면 환율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근래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그러했다.
미국은 지난해 5000억달러 수준의 무역수지 적자가 났고 그중에서 44%가 중국에 기인하고 일본에는 10%, 한국에는 2% 정도 기인한다. 따라서 미국은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중국에 대해 환율을 내리라는 압력을 넣고 싶은 것이 당연하고, 중국은 고성장을 유지하고 수출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중국은 GDP에서 경상수지흑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에 3% 근처이다가 최근에는 9~10%까지도 올라갔다.
신흥시장국과 선진시장국의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환율을 통해 전개되어온 것인데, 환율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은 미국과 중국이 다르다. 미국은 시장에서 돈의 가치가 자유롭게 결정되는 자유변동환율제인 반면, 중국은 거래를 많이 하는 국가들의 통화로 구성된 바스켓인 통화바스켓에 위안화의 가치를 고정화시킨다. 다만 형식적으로는 고정환율제이지만, 통화바스켓의 가치를 원하는 수준으로 조정하기 위해 가중치를 임의로 바꾸면서 환율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관리변동환율제도다.
고정시킨 통화바스켓에 달러가치를 구한 뒤 그에 의해 위안화와 달러의 가치를 결정함으로써 위안화의 가치가 달러로 환산된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중국과 같은 신흥시장국이 자본자유화가 되고 변동환율제로 바뀌기를 바라지만 신흥시장국 입장에서는 자칫하면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가 야기되는 토양이 마련될 수도 있고 흑자 규모에 따라 서서히 조절하려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처럼 과거에 일본이 대규모 흑자를 내던 시절 미국의 대일 적자는 85년에 429억달러로까지 확대됐었다. 이에 따라 지금의 중국과 미국 사이처럼 일본과 미국 사이에 환율전쟁이 일어났었다. 그 결과 플라자합의가 이루어져서 1985년경부터 약 1년 동안 엔화환율이 2배 가까이 하락했었다. 그 시절은 공산권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대치하던 동서냉전시대라서 정치적인 이유로도 일본이 미국에 협조해야할 상황이므로 그러한 합의가 가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선진국과 이머징국가 사이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의 뜻에 부응하는 플라자합의 같은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 약세로 인하여 가격경쟁력을 얻은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해외시장에서 잘나가게 되었고 90년대 미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그 반대쪽에서 일본은 엔고로 인한 어려움이 초래되었다. 그러한 역사를 지켜본 중국이 미국의 뜻에 쉽게 부응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중국은 국가 전체의 국력과 경제력은 매우 크지만, 1인당 환산한 소득은 3000달러에 불과하여 과거 일본처럼 급격한 환율인하 압력을 받아드리기도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환율이 급격히 내려가서 자국 내 수많은 영세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 고용에 악영향이 오므로 환율 하락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한국도 지난 4월에 58억2000만달러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고 수출 호조로 국가 안으로 들어오는 달러가 늘어나는 것은 환율이 하락하게끔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가 경제의 무역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중국과 비슷하므로 환율의 하락 속도가 늦추어지기를 바라는 정부의 입장은 비슷하다. 따라서 시장에서 외환당국의 개입 없이 환율이 결정되는 경우에 비해서는 환율이 높게 유지된 셈이다. 이는 환율이 본질적으로는 더 하락할 여지가 있는 셈이라서 추세적인 하락이 더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무역수지의 반대쪽에는 인플레이션이 있다. 환율이 내려가면 수출가격 하락으로 무역수지에는 불리해지지만 수입물가는 낮아져서 인플레이션 측면에서는 유리해진다.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에는 경제수준이 높은 선진국에 비하여 식료품과 석유 등 생필품에 대한 소비 비중이 높은 이머징마켓 국가들이 더 취약하므로 근래 빠른 속도로 올라간 물가에 이머징마켓 국가들이 더 긴장하게 되었다.
인플레 압력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흔히 금리 인상과 통화 절상의 두가지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4월6일에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한 것을 포함하여 올해 들어 두번 기준금리를 인상했으며, 최근 7개월 사이는 4번에 걸쳐 1%p나 금리를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는 얻지 못하고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계속 올라가서 3월에는 5.4% 치솟았으며 4월에는 5.3%를 기록하였다. 정부의 연간 목표인 4%를 크게 넘어섰다.
결국 인플레 압력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서 수입물가를 직접 낮추는 것을 선택하면 통화 절상 쪽으로 정책의 무게가 실리게 된다. 미국채의 8%에 달하는 1조달러어치를 보유한 세계 최대 미국 국채 보유국인 중국은 미국채를 4개월 연속 팔면서까지 환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다가 최근에는 환율이 올라가는 것을 허용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중국 이외의 브라질, 싱가포르 등 다른 신흥국에서도 금리 인상만으로는 물가를 잡기 힘들어서 통화가 절상되는 방향으로 태도를 나타냈다. 신흥국의 통화 절상은 달러로 환산한 임금이 선진국과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을 줄어들게 만들어서 국가 사이 불균형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양쪽 사이의 선택
이와 같이 신흥국의 통화절상은 무역수지에는 부정적이지만 인플레이션은 완화시키는 긍정적인 영향이 커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 영향력 중에서 어떤 것을 정부가 선택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신흥국의 환율에 대한 태도가 무역수지 측면에서는 선진국과 대립되지만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면 선진국이 원하는 방향과 같아지는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에서나, 모든 요소들이 최종 결과에 미치는 영향의 방향성이 항상 같다면 한쪽으로만 계속 끝없이 움직여서 극단적인 상태로까지 가게 되지만 개별 문제들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방향성이 다를 때에는 적정한 선에서 균형점이 존재하게 된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돈과 명예가 늘어나서 개인의 최종 목표인 행복에 유리해지지만 무작정 일만 열심히 할 때에는 건강이 나빠지고 가족관계가 희생되는 등 행복에 불리해진다. 따라서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는 것에도 적정한 선에서 균형점이 나타난다.
국가경제에서는 무역수지와 인플레이션 등 개별 사안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이 목표다. 이에 환율이 무역수지와 인플레이션에 같은 방향으로 영향을 주지 않고 두 개의 얼굴을 나타내므로 균형을 이루는 환율이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한쪽의 논리에만 집중하여 그쪽에 치우친 극단적인 사고를 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도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게 대두될 때에는 다소 완화되다가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이 줄어들면 다시 환율이 기존 추세로 복귀하는 패턴이 반복될 수도 있다. 미국의 무역수지적자가 근본적으로 줄어드는 시기가 오지 않는 한, 환율이 미국의 경제여건상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로 간주할 수 있다. 세계 경제가 매우 어려운 국면으로 빠지지 않는 한 근본적인 전환점이 나타나기는 아직은 힘들 것 같다.
다만 급속한 원화 강세는 당국에서 원하지 않으므로 환율 하락 속도를 늦추는 방향의 영향력은 나타날 것이다. 글로벌 달러의 약세 현상이 지속되리라는 전망 하에서는 원달러 환율 하락 압력이 지속되는 것에 역행하는 태도를 취할 필요는 별로 없을 것 같다. 큰 구간 안에서도 작은 구간은 있으므로 환율 상승은 단기의 작은 구간으로 대응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