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걷기 좋은 길이 많다. 강릉에는 '바우길'이 있다. 지금까지 총 열일곱 구간이 열렸다. 이 중 제1구간인 '선자령 풍차길'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숲길이다. 이 길을 걸어본 이들은 동의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싶은 바로 그 숲길이란 사실을.

강릉의 바우길은 강릉이 고향인 작가 이순원 씨와 산악인 이기호 씨가 힘을 모아 2009년부터 열어 나가고 있는 길이다. (사)강릉바우길 이사장이기도 한 이순원 작가는 길의 의미를 글로 형상화하고, 사무국장 및 탐사대장을 맡고 있는 이기호 씨는 옛길의 흔적을 찾아 퍼즐 맞추듯 연결하고 있다.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로 등단한 이순원 작가는 1996년 단편소설 <수색, 어머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동인문학상을, 1997년 <은비령>으로 현대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창작집 <그 여름의 꽃게>, <첫눈>, 장편소설 <나무>, <워낭>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강원도 특유의 자연미가 넘치는 길

바우길에서 '바우'는 '바위'의 강원도 말로서,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감자바우'라고 부르는 데서 따온 말이라 한다. 또 바우(Bau)는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손으로 한번만 쓰다듬어도 죽을병을 낫게 하는 능력을 지닌 여신을 일컫는다. 이 바우길을 걸으면서 건강도 지키자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2009년 6월 처음 열린 바우길은 백두대간의 대관령에서 출발해 동해의 경포대와 정동진을 잇는다. 지금까지 열일곱 구간이 열렸는데, 거리만 해도 총 270km에 달한다. 산길, 숲길, 마을길, 해안길 등 다양한데 강원도 산천을 잇는 길답게 모두 자연과 사람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바우길을 '이야기가 있는 생태 탐방로'로 선정하기도 했다.

각각 장점이 있는 바우길 여러 구간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숲길은 바로 제1구간인 '선자령 풍차길'이다. 선자령 풍차길은 새로 개척한 길이 아니다. 오래전 산림청에서 숲 관리를 위해 다듬었으나 이후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어 수풀이 무성했던 계곡길을 바우길 탐사대가 찾아낸 것이다. 매력 넘치는 이 계곡길을 백두대간 마루금이자 겨울 눈꽃 산행코스로 사랑 받는 선자령 능선길과 연결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숲길로 재탄생했다.

선자령 풍차길의 매력은 많다. 맑은 기운 서린 아름다운 계곡, 피톤치드 가득한 짙은 숲, 고지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앙증맞은 들꽃들, 고원지대의 목가적인 풍경, 풍력발전기들의 이국적인 풍광 등은 걷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숲길 역시 콧노래 절로 나올 정도로 완만하고 부드럽다. 선자령 정상은 해발 1157m나 되지만, 출발 지점의 해발이 850m쯤이니 고도를 300m 정도만 높이면 되기 때문이다.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아 원점회귀가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선자령 풍차길 출발 지점은 지금은 456번 지방도로 바뀐 구영동고속도로 상행선 휴게소 주차장이다. 매점 앞에서 대관령국사성황당 가는 길로 400m 정도 걸어가면 풍차(풍력발전기) 바로 앞 왼쪽으로 공터가 보인다. 여기서 '←선자령(순환 등산로) 5.8km'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공터를 가로질러 숲길로 들어서면 된다.

길은 작은 계류를 건넌 뒤 대관령양떼목장 경계 철망을 지난다. 잣나무와 낙엽송 사이로 뻗어있는 길은 부드럽고 푹신하다. 주변은 싱그러운 숲향으로 가득하다. 풍해조림지를 지나면 길은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산세가 부드러우니 계류도 느릿느릿 흐른다. 경관도 좋다. 바위와 숲이 잘 어우러진 계곡의 아름다움은 웬만한 유명 계곡에 뒤지지 않는다. 밋밋한 산세의 고원 구릉지에 이렇게 멋진 계곡이 숨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걷다가 편히 쉴 수 있는 곳도 많다. 맑은 계류에 손 담그고 땀을 들여도 좋고, 나무 그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도 괜찮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백두대간 마루금

선자령 풍차길은 해발 고도가 높아 봄이 늦다. 5월 중순, 남도는 벌써 초여름의 길목에 들어섰건만 여긴 봄이 한창이다. 푸른 기운이 도는 연노랑의 괭이눈, 샛노란 빛깔이 눈길 끄는 노랑제비꽃과 양지꽃, 알록달록한 노랑무늬붓꽃, 자줏빛의 봄구슬붕이, 새하얀 홀아비바람꽃이 미소 짓는다. 붉은 자줏빛의 앵초도 드물게 얼굴을 내민다. 이런 들꽃들과 눈 맞추며 걷는 숲길. 참 좋다.

계류의 몸집이 점점 작아지면서 졸졸졸 흐르는 개울로 바뀌는 듯싶더니 문득 쉭쉭,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 들면 푸른 초원 위에서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풍차들. 이국적인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선자령 풍차길은 숲길을 벗어나자마자 만난 목장 비포장 임도 삼거리에서 눈앞으로 곧장 뻗은 임도로 400~500m 이어진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세워져 있는 풍차 아래 갈림길에서 오른쪽 숲길을 따르면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진달래 군락지 지나 선자령 정상에 닿는다. 동쪽으론 강릉 시내 너머로 파란 동해 물결이 아득하고, 서쪽으론 푸른 산 물결이 첩첩이다. 또 남쪽으로는 능경봉~고루포기산, 북쪽으론 황병산~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는 바람의 왕국이다. 능선을 넘어가는 바람은 덩치 좋은 어른도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 강풍을 막을 수 있는 방풍의류를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까닭이다. 바람은 초원지대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살짝 잦아든다. 이제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대관령까지 콧노래 부르며 슬슬 걷기만 하면 된다.
 


선자령 풍차길 길잡이
 
선자령 풍차길의 출발지점은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상행선 휴게소 주차장이다. 이곳은 대관령양떼목장 주차장으로도 쓰인다. 식수는 휴게소 매점에서 구할 수 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상행선 휴게소 매점에서 대관령국사성황당 방향 300m→공터에서 '선자령(순환 등산로) 5.8km' 이정표 따라 왼쪽 숲길→양떼목장 경계 철망→풍해 조림지 갈림길에서 왼쪽→계곡길→목장 임도 삼거리에서 곧장 뻗은 임도 따라 400~500m→풍차 기둥 아래에서 오른쪽 산길→선자령 정상→새봉→상행선 휴게소로 원점 회귀한다. 역 방향으로 돌면 거센 바람을 먼저 만나고, 아늑한 숲길을 후반에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총 거리 11km로 어느 방향으로든 넉넉하게 4~5시간 정도 걸린다. 능선에서의 거센 바람에 대비해 반드시 방풍 의류를 챙겨야 한다.

현재 바우길에는 이정표가 많지 않아 초보자는 헷갈릴 수도 있다. (사)강릉바우길 홈페이지(www.baugil.org)에 접속해 바우길 지도와 정보를 프린트해가면 도움이 된다. 인터넷 카페(cafe.daum.net/baugil) 회원으로 가입하면 토요일 걷기 일정에 참여 가능하다.

 
여행수첩

●교통 영동고속도로→횡계 나들목→456번지방도→대관령 정상(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상행선 휴게소) <수도권 기준 2시간 30분 소요>

●숙식 대관령 정상에는 숙박시설이 마땅치 않다. 횡계 읍내나 강릉 쪽으로 나가야 한다. 대관령 옛길 주변에 대관령자연휴양림(033-641-9990, www.forest.go.kr) 등 숙박시설이 있다. 바우길 탐사단에서는 대굴령자동차마을에 게스트하우스(033-645-0990)를 운영한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며 1인당 1박2식에 2만원이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상행 휴게소에 황태해장국, 육개장 등을 차리는 식당이 있다.

●참조 (사)강릉바우길 사무소 033-645-0990, 070-4218-0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