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의 높이에 대한 에콜로지카
에코라이프
이경숙 이로운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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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북적였다. 나름대로 조용한 자리를 찾아 앉고 책을 펼쳤다. 표지에 적힌 문단이 무슨 말인지 도대체 이해되지 않아 산 것이었다. <에콜로지카>.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상가, 앙드레 고르가 쓴 책이다. 책 뒤표지에 적힌 글은 이렇다.
"(전략)'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는 추세와 확실히 결별하려면, 그리고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이, 더 잘하기'를 지향하는 삶의 모델을 재설정하려면, 소비하는 것은 전혀 생산하지 않고 생산하는 것은 전혀 소비하지 않는 문명과의 결별이 전제되어야 한다."
'소비하는 것은 전혀 생산하지 않고 생산하는 것은 전혀 소비하지 않는 문명'이란 뭘까. 책 본문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전혀 소비하지 않는 것을 생산하고 우리가 생산하는 것을 전혀 소비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모든 욕구와 욕망은 상품에 대한 욕구와 욕망, 즉 돈에 대한 욕구이다. 우리는 돈으로 부를 생산해내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추상적이고 한계가 없으니, 욕망 역시 결과적으로 한계가 없다."
본문으로 읽어도 문장은 난해했다. 뜻하지 않게 옆자리 여자들이 이해를 도왔다.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뽀얀 얼굴이 예쁜 20대 여자와, 집에서 방금 나온 듯 편한 옷차림의 30대 초반 여자였다. 20대 여자가 말했다.
"언니, 이제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야. 내가 코 성형을 안하고 필라만 넣었잖아. 이게 1년은 가더라구. 내 친구 중에 손 안 댄 애가 있는 줄 알아? 그렇게 해야 남자도 좀 괜찮은 애를 만나니까. 그게 다 자신에 대한 투자야."
말을 듣던 '언니'는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오히려 깨달음에 무릎을 친 건, 옆자리에서 책에 얼굴 파묻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나였다. 여자들의 대화를 듣고 나니 고르의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광고와 사방에 넘쳐흐르는 상품이 우리의 욕망과 욕구를 훼손하고, 획일화하며, 빈약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의 노동을 팔려면 우리 자신을 팔아야만 하는 한 우리 자신이 상품이니, 우리는 자본주의 고유의 논리를 내재화했다."
고르의 표현을 빌자면, 내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는 '자신이 전혀 소비하지 않는 것' 즉 성형된 얼굴을 생산해 '괜찮은 애' 즉 조건 좋은 남자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 자신이 상품'이니, 자신에 대해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이건 노동의 상품화를 넘어선 신체의 상품화다.
노동의 상품화에 주목했던 고르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자본주의가 소멸을 준비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자본주의는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추구하지만, 노동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생산인구 수 즉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든다.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다. 그럴수록 소비여력이 높은 인구도 줄어든다.
이런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고르는 '에콜로지카' 즉 '정치적 생태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왜 고르는 생태주의 앞에 '정치적'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그는 지구를 함부로 파헤치는 행위, 생명의 자연적 기반을 파괴하는 행위를 막으려면 자연은 물론 자기 자신의 노동까지 상품화하는 우리 사회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본 것 같다.
그가 말한 에콜로지카의 핵심은 이렇다. '노동시간과 상관없이 충분한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재분배해 누구나 일할 수 있고 일을 좀 더 잘하면서 덜 하도록 하는 것, 노동에서 놓여난 시간을 개개인 스스로 선택한 활동에 쓸 수 있게 하는 것.'
그는 구체적으로 '일자리 나누기'와 '생계수당 보장'을 주장했다. 이것을 우리 사회에서 나오고 있는 논의로 바꿔 말하자면, '사회적기업'과 '보편적 복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판 에콜로지카엔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같다. '코의 높이, 소득의 수준과 상관없이 충분한 연애기회를 보장할 것.'
"(전략)'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는 추세와 확실히 결별하려면, 그리고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이, 더 잘하기'를 지향하는 삶의 모델을 재설정하려면, 소비하는 것은 전혀 생산하지 않고 생산하는 것은 전혀 소비하지 않는 문명과의 결별이 전제되어야 한다."
'소비하는 것은 전혀 생산하지 않고 생산하는 것은 전혀 소비하지 않는 문명'이란 뭘까. 책 본문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전혀 소비하지 않는 것을 생산하고 우리가 생산하는 것을 전혀 소비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모든 욕구와 욕망은 상품에 대한 욕구와 욕망, 즉 돈에 대한 욕구이다. 우리는 돈으로 부를 생산해내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추상적이고 한계가 없으니, 욕망 역시 결과적으로 한계가 없다."
본문으로 읽어도 문장은 난해했다. 뜻하지 않게 옆자리 여자들이 이해를 도왔다.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뽀얀 얼굴이 예쁜 20대 여자와, 집에서 방금 나온 듯 편한 옷차림의 30대 초반 여자였다. 20대 여자가 말했다.
"언니, 이제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야. 내가 코 성형을 안하고 필라만 넣었잖아. 이게 1년은 가더라구. 내 친구 중에 손 안 댄 애가 있는 줄 알아? 그렇게 해야 남자도 좀 괜찮은 애를 만나니까. 그게 다 자신에 대한 투자야."
말을 듣던 '언니'는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오히려 깨달음에 무릎을 친 건, 옆자리에서 책에 얼굴 파묻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나였다. 여자들의 대화를 듣고 나니 고르의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광고와 사방에 넘쳐흐르는 상품이 우리의 욕망과 욕구를 훼손하고, 획일화하며, 빈약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의 노동을 팔려면 우리 자신을 팔아야만 하는 한 우리 자신이 상품이니, 우리는 자본주의 고유의 논리를 내재화했다."
고르의 표현을 빌자면, 내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는 '자신이 전혀 소비하지 않는 것' 즉 성형된 얼굴을 생산해 '괜찮은 애' 즉 조건 좋은 남자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 자신이 상품'이니, 자신에 대해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이건 노동의 상품화를 넘어선 신체의 상품화다.
노동의 상품화에 주목했던 고르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자본주의가 소멸을 준비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자본주의는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추구하지만, 노동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생산인구 수 즉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든다.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다. 그럴수록 소비여력이 높은 인구도 줄어든다.
이런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고르는 '에콜로지카' 즉 '정치적 생태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왜 고르는 생태주의 앞에 '정치적'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그는 지구를 함부로 파헤치는 행위, 생명의 자연적 기반을 파괴하는 행위를 막으려면 자연은 물론 자기 자신의 노동까지 상품화하는 우리 사회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본 것 같다.
그가 말한 에콜로지카의 핵심은 이렇다. '노동시간과 상관없이 충분한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재분배해 누구나 일할 수 있고 일을 좀 더 잘하면서 덜 하도록 하는 것, 노동에서 놓여난 시간을 개개인 스스로 선택한 활동에 쓸 수 있게 하는 것.'
그는 구체적으로 '일자리 나누기'와 '생계수당 보장'을 주장했다. 이것을 우리 사회에서 나오고 있는 논의로 바꿔 말하자면, '사회적기업'과 '보편적 복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판 에콜로지카엔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같다. '코의 높이, 소득의 수준과 상관없이 충분한 연애기회를 보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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