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를 출발한 가스파이프가 북한을 거쳐 남한까지 온다.'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한 계획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아무래도 올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이른바 '김정일 테마주'의 주가 움직임을 보면 그렇다.

'김정일 테마주'가 형성된 이유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가운데 러시아가 가스관 건설을 조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한국에 가스를 팔고 북한에는 수수료를 준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전해진 지난달 22일 강관(철제 파이프) 테마주는 상한가로 직행했다. 800km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파이프라인에 어마어마한 양의 강관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미주제강과 동양철관, 비앤비성원, 하이스틸 등이 주인공이다. 이후 주가도 닮은꼴로 움직이며 등락을 함께하고 있다.

이 초대형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기업도 투자자도 모두 행복할 일이다. 그런데 과연 프로젝트는 현실화될까. 만약 현실이 된다면 이들의 수혜는 가능할까.
 답을 내기는 이른 질문이지만 적어도 현재 이들의 생산능력과 국내 철강시장 현황을 기준으로 유사답안을 찾을 수는 있다. 안타깝게도 '아니다'에 가깝다.

 

 
◆강관 수혜주, 실체 있나?

동양철관과 미주제강, 하이스틸은 물론 비앤비성원으로 이름을 바꾼 성원파이프 등은 모두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장거리 송유관으로는 쓸 수 없다.

미주제강과 동양철관의 주력은 스파이럴강관이다. 특히 미주제강은 지난해 전체 매출 1855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868억원(47%)이 스파이럴강관 매출에서 발생했다.

스파이럴강관은 철판을 꽈배기 형태로 꼬아 용접해 만든 강관이다. 얼마든지 길게 만들 수 있는 대신 압력에 견디는 힘이 약하다. 대형 토목공사를 할 때 약한 지반을 강화하기 위해 땅에 박는 '강관말뚝'이 거의 유일한 용처다.

시베리아의 강추위에도 수축이 적고 심해의 초고압력에도 견디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수 제품인 유정용 강관(원유나 가스 등을 운송하는 강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제품이 필요하다. 스파이럴강관과는 제조기술 수준에 큰 차이가 있다.

유정용 강관으로는 벽면이 두꺼운 '후육관'을 쓰는데 이 후육관은 일반 강관과는 족보가 다르다.

강관은 보통 작은 롤로 철판을 말며 전기 용접해 만든다. 반면 후육관은 두꺼운 후판을 휘어야 하기 때문에 기존 설비로는 제조가 불가능하다. 고압 프레스로 때리거나 대형 롤로 눌러 휜 후 특수 용접해 만든다. 강력한 설비가 필요함은 물론 개당 제조시간도 훨씬 길다.

미주제강과 하이스틸도 후육관 설비를 일부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가공능력이 조선 및 해양플랜트 정도에 쓸 수 있는 두께에 그친다. 국내 후육관 제조 1~2위인 스틸플라워와 아주베스틸의 제품도 대구경 송유관에는 어림없다.

유승록 포스리(POSRI) 선임연구원은 "유정용 강관은 구조관이나 건설용 강관과는 소재와 용접기술이 전혀 다르다"며 "이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소재인 두꺼운 후판을 가공해야 하는 만큼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동반 상한가를 치고 있는 비앤비성원 역시 송유관과는 인연이 없다. 비앤비성원은 스테인리스강관 국내 1위다. 스테인리스강관은 건축물의 수도배관에 주로 쓰이는 고가의 제품이다.

시베리아에서 북한을 거쳐 남한에 이르는 송유관에 스테인리스강관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싸기 때문이다. 생산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재료를 사올 곳도 없다. 가스관사업이 성사된다 해도 수혜를 기대하기 어렵다.

철강업계는 이상의 이유로 이른바 '김정일 수혜주'는 실체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수혜주로 언급되는 강관업체들의 진짜 수혜 업종은 건설업"이라며 "오히려 4대강 사업에 이들의 주가가 들썩이던 때가 훨씬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세아제강 등 빅3도 수혜 불투명

사실 미주제강이나 동양철관, 비앤비성원 등을 놓고 강관시장을 모두 논할 수는 없다. 국내 강관시장은 사실상 세아제강과 현대하이스코, 휴스틸 3개사가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를 나눠가진 것이 이른바 김정일 테마주들이다.

빅3는 생산능력(CAPA)이 훨씬 높고 제품 스펙트럼도 중소 강관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특히 철강업체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인 포스코 원자재 확보율이 높다.

그렇다면 이들이 수혜주일까. 재미있는 것은 대형 강관업체들의 수혜도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역시 초대형 파이프라인용 강관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동해 가스관 프로젝트는 사실 강관제조업체들에게 생소한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미 시베리아에서 동해를 거쳐 한반도로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사업이 추진됐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논의가 더 구체적이었다. 대형송유관 제조기술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빅3가 혁신적인 안을 내놨다. 합작 투자를 통해 유정용 강관공장을 건설하자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투자금액까지 나왔다. 업체당 약 8000억원. 연매출이 5000억원 수준인 휴스틸은 물론 세아제강과 현대하이스코의 입장에서도 적잖은 금액이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성사되지 않았고 빅3의 합작 기획안도 묻혔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국내서 일괄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할 경우 유럽 등에서 제품을 수입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 상태라면 국내서는 메인 파이프에서 곁가지로 나오는 지선을 빅3가 수주하는 정도의 수혜밖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도 이른바 김정일 테마주에 대해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몇년이 걸릴지 얼마가 들지 모르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정세가 불안한 북한과 협력해 성공시킬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지금 김정일 테마주를 상한가로 끌어올리는 투자자 중 프로젝트가 성사를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수혜 가능성도 확인하지 않고 심리에 편승해 차익을 얻으려는 투자자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