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과 북극 그리고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꼭대기까지, 그는 세계 최초로 3극점을 정복했다. 세계 최초로 걸어서 7대륙 최고봉(3극점 포함)을 모두 밟은 그는 최근에는 경비행기로 하늘을 섭렵하고 스킨스쿠버로 바다를 누비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야말로 이 지구상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곳이 어디든, 목적지를 향해 두려움 없이 첫발을 내딛는 그는 늘 ‘극한의 탐험’을 꿈꾼다. 그래서 그의 명함 속 이름 옆에 적혀 있는 문구 역시 ‘Dream & Adventure’. 탐험 기획을 위해 1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그가 직접 지은 사명이란다. <머니위크>가 창간 4주년을 기념해 1세대 산악인이자 탐험가 허영호 대장을 만났다. 그에게서 끊임없는 도전이 주는 의미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진=류승희 기자)
-지 맬러니는 “산이 거기 있어 올라간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허 대장께서 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는 특별히 놀거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형들과 산에 가는 것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산에 가는 것이 기다려지고 설레고 그랬죠. 지금도 산에 가거나 탐험을 나서면 설렙니다.
본격적인 산악인에 접어든 건 73년이죠. 사실 해발 8000m 넘는 산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자기 자신을 이겨 낸 사람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죠.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쁨이 탐험을 계속하게 만듭니다.
물론 탐험의 길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무산소로 에베레스트에 올라갈 땐 하늘 보면서 살려달라고 절규를 수십번도 더 했죠. 8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한겨울에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했는데, 영하 50도 속에서 쉬지 않고 걸어야 해요. 영하 40도면 바닷물이 얼기 시작하는 온도인데 상상이나 갑니까. 북극 횡단이나 남극 횡단 때 고생도 상상 이상이구요. 그런데도 목표를 이루고 나면 그 성취감이 대단해요.
자연이 주는 무서움도 있지만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원대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있어요. 중독성이 강하거든요. 그러니 자꾸 새로운 길을 찾는 것 같아요. 성공을 하면 자연을 이겼다는 생각보다 자연에 동화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계에 도전하다 보면 실패에 대한 부담이 따를 텐데 어떻게 이겨내세요? ▶도전에 나설 때는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시작하기도 하고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어요. 특히 최고봉 등정 같은 건 자연의 거대한 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신중한 건 당연한 거죠. 제 자랑 중 하나는 지금까지 탐험에서 단 한 차례도 사망자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철저한 준비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실패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눈앞에 목표를 보고도 되돌아서야 했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의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죠. 그렇다고 거기서 도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또 도전해야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실패를 하고 나면 저를 믿고 지원을 해 준 기업이나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앞서긴 해요. 기업에서도 그만큼 투자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거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잖아요. 탐험 과정을 촬영하고 홍보하는 데 엄청난 돈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냈을 때 미안하죠.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 등정을 했지만 히말라야 14좌 등반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도전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선택의 문제죠. 저는 14좌 등반 대신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선택한 것입니다. 14좌 등반이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길은 아닙니다. 에베레스트에 또 다시 가고픈 마음은 있지만 14좌 등반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최근에는 경비행기로 독도 선회비행을 하셨습니다. 경비행기를 배우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95년 이후 7대륙 최고봉을 다 밟은 뒤에 목표를 이뤘으니 새로운 목표를 찾고 싶었죠. 그래서 어릴 적 꿈을 다시 찾은 겁니다. 어렸을 때 꿈이 파일럿이었습니다. 98년에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으니 경비행기도 시작한지가 꽤 됐네요.
-경비행기를 시작하셨으니, 또 다른 탐험 목표가 있을 것 같은데요. ▶목표는 경비행기로 세계일주를 하는 거죠. 제가 올랐던 최고봉을 경비행기로 다 넘고 싶습니다. 태평양을 건너는 것과 에베르스트산에 오르는 것이 최대 난제죠.
태평양은 망망대해여서 비행기가 쉴 곳이 없어요. 기름만 의지하면 건널 수가 없어요. 바람을 잘 타는 등 비행조건을 잘 맞춰야만 가능한 일이죠.
에베르스트산을 넘으려면 비행기로 8000m 이상을 올라야 합니다. 제 경비행기로 6000m 상공까지 올라가봤어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태평양과 에베레스트산을 넘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는 거죠.
-경비행기 세계일주를 마치면 현재 계획한 목표는 다 달성하는 것인가요. ▶이보다 더 큰 목표는 북한에서 백두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직접 경비행기를 몰고 북한에 가서 묘향산과 백두산을 등반해 보고 싶습니다. 중국쪽으로 백두산은 수차례 올라가 봤지만, 우리 땅에서 우리의 산을 밟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경비행기로 묘향산이나 백두산 초입까지 가서 종주를 하고 싶은데, 북한 하늘 나는 게 생각보다 힘드네요. 비행기로 가는 것이 어렵다면 묘향산과 백두산 등정만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10년 넘게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저랑 인연이 있다면 밟을 날이 오겠죠.
-에베레스트를 다시 가고픈 생각은 없으신지요. ▶산악인으로써 또 탐험가로써 에베레스트는 가장 매력적입니다. 언제든지 모험해 보고 싶은 산입니다. 특히 새로운 루트를 개발하고픈 욕심도 있죠.
지난해에는 아들과 함께 에베레스트 등반 20년을 기념해 부자 동반 등정에 성공했어요. 산을 내려오면서 40주년에 다시 오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제 나이가 70을 넘게 되죠. 허락만 된다면 40주년 기념등반을 하고 싶습니다.
-등정을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등정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과연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탐험에 나서지 않을 때도 매우 바쁘게 삽니다. 새로운 탐험 기획도 하고 전국에 강의도 다닙니다. 제 자동차의 1년 주행거리가 1만km나 됩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 강의를 하다 보니 자동차가 1년이면 똥차가 되곤 합니다.
-아무래도 탐험에 나설 일이 많다 보면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는지, 재테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젊었을 때는 그저 내가 좋아서 지구 끝까지 찾아 다녔어요. 덕분에 집에서 고생이 많았죠. 지금은 저도 강의를 다니며 꽤 쏠쏠하게 벌고 있어요. 주식이니 펀드니 이런 전문적인 관리는 아내한테 다 맡기는 편이에요.
-돈 관리에 대해 너무 무심한 것은 아니신지. ▶돈에는 굉장히 무던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등반대를 이끌 때는 달라집니다. 승패를 가르는 문젠데 비용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잖아요.
등반대의 회계는 보통 막내가 맡게 되죠. 에베레스트 첫 등반 때 제가 회계를 맡았어요. 지금이야 훤히 꿰뚫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네팔의 통화인 루피가 우리 돈으로 얼마인지도 몰랐죠. 또 카드가 안 되는 커다란 돈주머니를 직접 들고 다니기도 했죠. 그 돈을 들고 셰르파와 흥정하느라 낑낑 거린 적도 많았죠.
북극점 횡단을 할 때는 후원금을 현금으로 품에 안고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내 생애 만져 본 돈 중 가장 큰 액수였어요. 신고를 하면 마피아들이 덤벼들 것이라고 겁을 주고, 안 했다고 걸리면 다 빼앗길 테고 고민이 많았죠. 결국 신고는 하고 가서 돈주머니를 나눴다 합쳤다 하면서 지켜낸, 조마조마한 무용담도 있습니다.
☞허영호 대장은
1954년 충북 제천 출신으로 제천고, 청주대 체육학과를 거쳐 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5월 히말라야 마카루 등정을 시작으로 북극점 원정, 남극점 원정,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정 등 2007년 동계 에베레스트 등정에 이르기까지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과 남북극점 정복, 북극횡단, 에베레스트 4회 등정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1987년 대한민국 산악인 최초로 겨울철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 그는 드림앤어드벤처를 설립하고 초경량 비행기 조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007년 1월1일 경기도 여주에서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까지 왕복 1100km의 단독 비행에 나섰으나 전라남도 청산도 해상에서 추락했다. 2008년 4월 18일 같은 기종의 항공기로 같은 코스에 재도전해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지난 9월에는 한가위를 맞아 독도 선회 비행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