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추진보다는 종합식품회사로 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이라면 언제든 인수합병(M&A) 할 의지가 있습니다.”
2007년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으로 활약할 당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기업 M&A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실제 동원은 2005년 덴마크우유를 시작으로 2006년 해태유업, 2007년에는 조미식품업체와 택배업체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해왔다. 이후에도 김 회장의 동원은 1년에 1개 기업 정도의 크고 작은 M&A를 단행하며 몸집불리기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지난해 사활을 걸었던 해태음료 인수에 실패하면서 주춤하더니 최근 삼전건설과 삼보유통의 M&A마저 ‘물거품’이 되면서 김 회장의 영토확장 행보에 급제동이 걸렸다. 특히 회사채 발행까지 하며 강한 인수 의지를 드러냈던 삼전건설-삼보유통의 ‘실패한 M&A’는 그 후폭풍이 상당하다.
사진=류승희 기자
◆당찬 M&A 계획,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9월 15일 동원그룹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제19회차 무보증사채 발행’을 알렸다. 사채발행을 통해 조달하는 500억원 중 325억원을 건설사와 급식업체의 인수대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라는 게 당시 공시의 요점.
특히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이 M&A가 경쟁입찰 방식이 아닌 ‘프라이빗 딜’로 진행돼 인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덩달아 증권업계에서도 동원그룹 내에서 건설사업을 맡고 있는 동원시스템즈와의 시너지효과가 기대된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공시 직후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피인수기업으로 지목됐던 삼전건설과 삼보유통이 “사실이 아니다”며 강하게 발끈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삼전건설 측은 “동원그룹이 공시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재무상태 표에서 적시한 자산, 부채, 자본, 매출액, 영업이익이 일치하는 건설업체는 우리밖에 없다”면서 “현재 어떠한 협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는데 동원그룹의 이같은 공시로 인해 영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 회사는 법적 소송까지 검토한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또 다른 M&A 대상자로 지목된 삼보유통 역시 “우리도 동원그룹의 M&A와 관련해서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고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공시내용에 대해 황당해 했다.
피인수기업 쪽의 이같은 반응이 나오자 시장에선 동원그룹이 자금조달을 위해 허위공시를 했다는 논란이 들끓었다. 실제 인수할 것도 아니면서 자금을 모으기 위해 ‘페이크’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원그룹측은 “8월경 M&A 주관사로부터 삼전건설에 대한 인수 제안을 받아 내부적으로 적극 검토 중이었다”며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동원은 공시 5일 만에 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 더 이상의 M&A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 (피인수기업으로 지목된) 기업들과 잘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인수실패, 동원이 잃은 것은?
동원그룹측의 회사채 발행 취소로 ‘M&A 사태’가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동원그룹으로선 이번 M&A 철회가 그룹의 성장과정에 있어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 두 기업을 인수했더라면 동원그룹으로선 원양어업, 식품제조업과 더불어 건설 부문에 있어서의 사업안정성을 높이고 급식 시장의 시장지배력까지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주택건설업체인 동원시스템즈 중심이었던 그룹 건설부문의 토목사업 능력이 삼전건설 인수를 계기로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보였다. 삼전건설이 경남지역 토목공사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기업분석팀장은 “동원그룹의 건설사업 분야는 유독 주택부문 비중이 커 그룹에 부담이 됐던 게 사실이다. 만약 (삼전건설 인수로) 토목 부문을 강화했었다면 그룹 건설이 한 단계 성숙하는 전환점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보유통의 인수실패 역시 동원으로선 안타까운 부분이다.
동원의 기존 급식 계열사인 동원홈푸드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이 3194억원으로 전년(1315억원)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어 이번 삼보유통의 공급망이 더해졌다면 동원그룹의 부산·경남지역 급식시장 점유율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M&A 실패로 동원그룹이 향후 M&A 사업 추진에 있어 동력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동원그룹은 2000년대 들어 1년에 한두 건씩 기업 인수를 진행해 왔다”면서 “2005년 덴마크우유, 2006년 해태유업, 2007년에는 조미식품 및 택배업체 등을 인수하면서 탄력받은 영토확장 의지가 한 풀 꺾인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