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994년엔 거리를 걷다보면 어디서든 쉽게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록밴드 부활의 '사랑할수록'. 18년여가 지난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름대로 뭉클한 추억에 새삼 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노래를 부른 당사자만큼 애틋한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 있을까. 최근 싱글앨범을 발표하고 음악활동을 재개한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 씨를 서울 남산자락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곡을 발매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한 그이지만 과거 얘기를 들춰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랑할수록'에 얽힌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앞으로 음악 활동에 대한 각오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류승희 기자
◆형의 사망, 그리고 '부활'
이미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가 방송이나 언론 매체 등을 통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사랑할수록'에 얽힌 사연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본래 부활의 보컬은 김재희 씨의 친형인 김재기 씨였다.
그런데 앨범 작업을 마치고 교통사고를 당한 김재기 씨는 정작 부활 보컬로 활동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사랑할수록'이란 명곡을 마냥 앨범으로만 듣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동생 김재희 씨가 보컬로 합류해 형의 빈자리를 메웠다.
"'사랑할수록'이 정말 큰 히트를 쳤지만 저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어요. 노래가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 인기가 치솟으니 주변 사람들은 축하해주고 기뻐했지만, 저는 마음 한편으로 형이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죠."
단지 형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만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뮤지션으로 보였겠지만 그의 마음은 뭔가 항상 불안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웃어야 했지만 마음속은 아프고.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했죠. 현재 갖고 있는 것이 내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슴 속에서 마치 폭탄이 터지기 직전이었다고 할까요?"
◆친형 같은 김태원, 그리고 방황
부활의 보컬로 활동하던 당시엔 김재희 씨 개인적으로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기였지만, 김태원 씨는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큰 힘이 돼준 은인이었다.
"제 이야기를 하다보면 태원이 형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정말 형과 집안을 구해준 구세주 같은 분이에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을 동생을 대타로 내세워 영원히 기억하게 해준다는 게 마치 중국 무협영화처럼 감동적이고 신비롭지 않나요?"
인간적인 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선배로 존경했다. "정말 팀의 리더다운 분이고 항상 1등을 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해요. 가난하게 음악을 하던 시절 본인 돈을 모두 털어서라도 밴드 동생들이 밥을 굶지 않게 하려고 했던 모습이 선하네요."
뮤직비디오 촬영을 앞두고 마땅한 의상이 없어 고민하던 때의 기억도 떠올렸다. 부활 멤버들이 마냥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김태원 씨의 부인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두 털어 남대문시장에서 멤버들의 옷을 사줬다는 것.
이처럼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히트곡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음악활동을 했지만 김재희 씨의 삶이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솔로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음반을 낸 후 회사가 망한 적도 있고요.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포자기 한 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반성했다.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그동안 지속성이 없었던 것 같아요. 독하지 못한 면도 있었고요. 태원이 형이 올려줬는데 제 스스로 떨어진 셈이죠.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등산에 푹 빠지면서 철도 더 들었고 겸손해진 것 같습니다."
◆김재희가 홍대로 간 까닭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최근에는 '캐신의 전설' '오월의 입맞춤' 두곡이 담긴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랑할수록'을 부를 때처럼 뮤지션으로서 화려했던 시절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대중들과 스킨십하기 위해 홍대 거리로 향했다.
"홍대의 '풀뿌리 문화'에 반했습니다. 부활과 '사랑할수록'의 보컬로 소위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했을 때는 몰랐지만, 홍대문화를 알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프로란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는 홍대에 있는 공연장에서 꾸준히 공연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지난 10월에 이어 오는 12월30일에도 상상마당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에도 정기적으로 홍대 공연장에서 대중들과 만나겠다는 각오다.
"앞으로는 더 넓고 길게, 그리고 한발한발 천천히 다가가려 합니다. 오랜만에 앨범도 발매하고 새롭게 시작한 만큼 따뜻하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리고 이제 다시는 떠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