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가 출범 10년 만에 위기를 만났다. 이미 이탈리아, 스페인을 넘어 프랑스, 독일까지 위기의 마수가 뻗치고 있다.
마르크, 리라, 프랑 등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던 시장을 단일 통화로 묶어 번영의 기회를 잡자는 것이 유로의 당초 꿈이었다. 1위 경제권 미국과 달러화에 대항한다는 경쟁심이 출범에 한몫했다.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위험관리가 너무 안됐다.
통화만 통합하고 재정과 정치주권은 그대로 유지한 어정쩡한 구조는 부채위기에 틈을 열어줬다. 재정규율이 작용하지 않아 앞뒤 안 가리고 돈을 써도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리스처럼 포퓰리즘적 정치에 헤픈 씀씀이를 허용하는 틈도 줬다. 신용도가 낮아도 유로의 이름하에 마음대로 돈을 써도 될 줄 알았다.
통화통합 후 유로존 성장률이 돋보였다고 보기도 힘들다. 2005~2010년 유로존 평균 경제성장률은 0.98%로 같은 기간 1.2%인 미국보다 못하다. 여기엔 유럽중앙은행이 긴축에 치중한 영향이 크다. 그간 유럽중앙은행은 물가목표제를 내걸고 고금리 정책을 펴왔다. 이는 유로화를 추세적으로 강세로 만들어 성장에 주름살을 줬다.
이 같은 성장부진은 부채위기를 탈출하는 데 큰 어려움을 만들고 있다. 이제 그 부담은 유로 출범을 주도한 독일에 쏠리고 있다. 유로 사수를 위해서는 독일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는 한 유로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독일은 그같은 희생을 감수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는 리더로서의 심각한 결함이다. 미국은 2차 대전 후 자기 비용과 희생을 치르면서 공산진영에 대항하는 자본주의 진영을 이끌어왔다. 최근 와서 빚 부담 속에 리더로서 빛을 잃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독일은 처음부터 선을 긋고 있다.
11월23일(현지시간) 독일은 38억8900만유로 규모의 10년물 국채를 발행했다. 목표치는 60억유로였으나 2% 이상의 수익률을 요구하는 응찰은 배제해 예정액의 65% 수준만 낙찰됐다. 이에 따라 낙찰률 부진에도 불구하고 낙찰금리는 1.98%로 2%를 넘지 않았다.
독일 정부가 의도적으로 2% 이상 금리낙찰을 피하려 한 경우다. 유로존 위기 속에 그 금리가 나올 수 없는 데도 욕심을 부렸다. "나는 다른 유로존 국가와 다르다"는 자존심을 세우려 한 흔적이다. 다른 유로존 국가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보기 싫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웅변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이 같은 분위기는 독일의 희생을 요하는 해법이 나올 때마다 독일이 반대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독일 국채입찰이 실패했던 23일 호세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유로존 공동채권인 유로본드 발행안을 제안했다. 유로존 공동명의의 채권이 발행되면 신용도가 실추돼 국채발행이 불가능한 나라에 숨통을 열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나오기 무섭게 독일의 앙겔라 마르켈 총리는 "안될 말"이라고 일축했다. 위기국의 긴축의지를 느슨하게 만들어 나중에 혼자 덤터기를 쓸 수 있다는 정서가 배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니스트의 지적대로 유로는 화끈한 진전이냐 포기냐의 기로에 놓여 있다. 그 선택은 독일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