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미국의 시사 풍자만화가 케첨이 그린 ‘개구쟁이 데니스’. 금발에 주근깨 투성이의 다섯 살짜리 꼬마 데니스는 이 만화에서 심술궂은 이웃을 보기 좋게 골려주는 모습으로 지난 50여년간 세계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케첨이 세상을 떠난 탓에 더 이상의 데니스는 볼 수 없게 됐지만 다행히도 국내 골프시장에선 데니스가 ‘환생’해 여전히 맹활약 중이다. 골프용품 전문기업 (주)데니스코리아를 통해서다.
이 회사의 박노준(44) 사장은 지난 2003년 스포츠마케팅업체 IMG를 통해 ‘개구쟁이 데니스’ 브랜드의 세계총판권을 따낸 이후 골프클럽을 제외한 골프의류, 골프백, 볼마커, 골프화 등의 각종 골프용품에 데니스 캐릭터를 부착해 골프업계에 ‘데니스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데니스 브랜드는 전국 백화점과 골프장 40여개의 매장을 통해 골프 유저들에 소개되며 올해만 140억원의 매출을 기록 중이다. 국내에서의 성공적인 안착을 토대로 영국과 일본, 홍콩, 대만, 중국 등지의 해외시장 수출량도 매년 늘고 있다.
“데니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골프시장에서 신규 브랜드를 소비자가 인식하기에는 데니스 만한 캐릭터가 없었죠.”
(사진=류승희 기자)
◆골프백 전문 OEM 포시즌, 국내 외제차 브랜드 '석권'
박노준 사장이 데니스를 골프 브랜드로 탄생시키기까지는 남다른 애환이 있었다. 코오롱엘로드와 삼성물산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던 그는 데니스코리아를 설립하기 이전인 2000년 골프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인 ‘포시즌’을 먼저 세웠다.
당시로서는 골프백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 없었던 덕분에 포시즌은 설립 이후 단기간에 외국 유명 자동차 브랜드에 OEM으로 골프용품을 납품하는 등 골프업계 OEM 시장을 거의 석권했다. 그러나 박 사장의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아무리 자사 제품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어도 남의 상표를 부착하고 판매되다 보니 '내 상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
이에 박 사장은 자사 브랜드 창안에 열의를 가졌고 만화 캐릭터 ‘데니스’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인지도가 상당한 점에 착안, 2003년 ‘데니스’라는 독창적인 브랜드를 내세운 (주)데니스코리아를 설립했다.
“우리나라의 만화캐릭터가 아닌데도 ‘데니스’라는 브랜드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총판을 갖고 있습니다. 점차 브랜드의 경쟁력이 커지다 보니 이제는 골프공 업체나 골프장 카트업체에서도 ‘데니스’를 사용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이 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데니스 수제 햄버거’나 ‘데니스 커피’ 등 향후 라이선스 사업으로까지 데니스를 더 활용할 계획이에요.”
◆남성엔 선굵은 '데니스', 여성엔 앙증맞은 '세서미스트리트'
데니스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박 사장은 내친 김에 2년 전에는 캐릭터 브랜드를 하나 더 추가했다. ‘세서미스트리트’라는 또 다른 미국의 인기캐릭터가 그것이다. 14명의 개성있는 세서미 캐릭터들을 골프백이나 골프용품, 골프의류에 새겨 20~40대 여성들의 감수성을 자극했고 박 사장의 이같은 전략은 적중했다. 어느덧 데니스 브랜드 매출액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 골프용품점에 최소한 두 개의 브랜드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고객들이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두 가지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신상품과 이월상품, 기획상품까지 취급해 가격을 차별화할 수도 있고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골프업계 CEO로 성공의 반열에 오른 박 사장. 그는 욕심이 많은 남자다. 하나가 잘 되면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골프백에서 시작한 (주)포시즌, 그리고 골프용품에 데니스를 입힌 (주)데니스코리아에 이어 지난해 4월 박 사장은 골프의류 시장에도 도전장을 던지며 (주)데니스를 설립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골퍼들의 평균 라운딩 횟수가 15%나 줄어드는 등 골프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신 시장을 개척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터. 하지만 박 사장은 코오롱과 삼성물산에 몸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데니스와 세서미스트리트를 고스란히 의류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골프웨어이면서 아웃도어 스타일을 겸비해 골퍼들과 아웃도어 소비자들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도록 했다. 효과는 곧 현실화됐다. 지난해 10개의 전문매장에서 판매된 이 제품은 올 들어선 30개 매장으로 확대됐고 데니스·세서미스트리트 전문직영점도 지난해 1개에서 올해는 3개까지 늘어났다.
(사진=류승희 기자)
◆골프 대중화 위해서라면…최경주재단에 '1억 쾌척'
골프용품과 골프의류가 잘 나가는 사이 포시즌의 골프백 OEM사업도 덩달아 '훈풍'을 내고 있다. 보통 새로운 사업을 하면 기존에 잘 하던 사업이 다소 위축되기 마련인데 포시즌은 그렇지 않다. 웬만한 외제차량 브랜드의 골프백 대부분을 생산할 만큼 시장장악력이 더 높아졌다. '메이드인 코리아’라는 자부심을 골퍼들에게 잘 각인시킨 덕분이다.
“유명 골프백 브랜드의 경우 여전히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는 가격이 좀 높아지더라도 좋은 재질과 즉각적인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직원 40명의 작은 회사지만 데니스코리아의 박 사장은 매년 '좋은 일'도 많이 한다. 데니스 골프 아카데미를 통해 프로골퍼를 육성하거나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레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여기에 중고 아마추어 학생 선수권대회, 수원시장배 골프대회 등을 열어 골프 대중화에도 힘쓴다. 최근에는 최경주재단과 골프꿈나무 지원을 위한 기부 협약을 맺고 재단 측에 총 1억원 규모를 후원하기도 했다. 그를 둘러싸고 '골프대중화 전도사'라는 평가가 많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