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들의 수수료 압박이 점입가경이다. 영세 상인들의 카드 수수료 압박에 이어 대기업인 현대자동차도 수수료 인하를 요구했다. 말을 듣지 않는(?) 카드사에 거래를 중단하는 특단의 조치도 강행했다. 7개 전업 카드사들은 11월30일 끝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현대차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지만 파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카드업계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비판하고 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카드사들이) 대기업의 수수료 인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시기적으로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현대차가 자동차업계 선두기업일 뿐 아니라 국내 1, 2위를 다투는 그룹인 만큼 다른 자동차기업들과 중소가맹점 등의 수수료 인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카드 현대차에 백기든 이유

현대차는 지난 6월 구두로 카드사에 카드 수수료 인하를 요구했다. 그리고 9월 말께 전업카드사에 현대차와 기아차를 구입할 때 수수료를 인하하라는 공문을 정식으로 발송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후 11월 말 다시한번 최종통첩을 보냈다.

물론 이전에도 현대차의 수수료 인하 요구는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카드사들의 거부로 번번이 미뤄진 것.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올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수료 인하를 요구했고 9월에 공문을 보냈다"면서 "11월 말에 보낸 최후통첩까지 모든 과정이 일방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대차의 수수료 인하 요구에 희생양이 된 곳은 KB국민카드다. 이는 현대차와 계약 연장기간이 가장 빨랐던 곳이 KB국민카드였기 때문이다. 전업 카드사들의 계약 만료기간이 대부분 11~12월인데 비해 KB국민카드는 10월 말이었다.
 
당초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 등 일부 카드사들 제외하고 전업 카드사들은 대부분 현대차 수수료 인하 요구를 거부해왔다. KB국민카드도 계약기간이 지나도록 현대차의 요구를 거부했고 현대차는 11월4일 KB국민카드의 자동차 구입 결제를 중단했다. 현대차의 예상치 못한 강행처리에 아직 만기가 되돌아오지 않았던 삼성과 롯데, 비씨, 하나SK카드 등은 결국 현대차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KB국민카드도 11월30일 백기를 들고 말았다.

카드사들이 대기업의 횡포라며 반발하는 또다른 이유는 현대차의 일방적인 요구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가맹점과의 계약기간은 1년인데 현대차가 보낸 공문은 만기 구분 없이 (현대차가 요구한 시기에) 수수료를 인하하라고 적혀 있다”며 “카드사들마다 계약기간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12월1일부터 적용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뜩이나 영세상인 수수료 인하에 영업에 타격이 큰데 (현대차가) 지위를 악용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면서 “현대차의 수수료 인하 여부는 결국 고객들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업계 카드수수료 얼마나 높나

그렇다면 자동차회사들의 수수료 비율은 어떨까. 그동안 카드사에 지급한 수수료율은 1.75% 다. 2005년 2%, 2007년 1.85%에서 꾸준히 인하돼 왔다. 하지만 자동차회사들은 여전히 카드 수수료율이 과도하게 높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가 이번에 요구한 수수료 인하폭은 신용카드는 1.75%에서 1.7%로, 체크카드는 1.5%에서 1.0%로 각각 0.5%포인트씩이다.

카드사들이 일반 소상공인과 달리 현대차 요구를 쉽게 수용한 이유는 현대차가 국내 자동차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건당 결제금액이 다른 구매 상품 보다 월등이 높다. 내부적으로 자동차 구입으로 카드사들이 올리는 연간 매출은 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중 현대차가 80%를 차지한다면 표적으로 드러나는 금액만 7조원이 넘는 셈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과 카드사와 상호관계를 갑과 을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일반 가맹점보다 연간 매출액이 높기 때문에 (대기업들의) 요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소상공인 수수료 인하 더 어려워졌다

문제는 대기업의 카드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면 중소가맹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카드사가 현대차에 적용한 수수료는 2억원 미만 중소가맹점(1.8%)보다 낮은 수준이다. 카드사들은 최근 소상공인들이 가맹점수수료를 인하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런데 대기업들까지 추가 인하를 요청하면 영세상인들의 요구는 더더욱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경기 양극화가 심화하고 서민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경제적 약자의 박탈감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대기업의 수수료부터 인하하면 경제적 약자와 소비자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고 우려를 표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 역시 “내부적으로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인하 여부를 논의 중이었는데 엉뚱하게 대기업들이 선수를 쳤다”면서 “건당 매출금액이 큰 대기업의 수수료 수입이 줄면 그만큼 영세상인들의 요구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를 현대차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소상공인들과 주유소업계는 이번 카드사 대처에 대해 어이 없다는 표정이다. 전국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대기업에 약한 카드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12월15일 카드결제 거부 캠페인을 갖고 수수료 인하 압박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주유소업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실제로 주유소를 이용하는 고객 99%는 현금대신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카드이용 고객이 대부분인데 대기업만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얘기할 땐 꿈쩍도 하지 않다가 대기업에서 말하니깐 액션(인하 요구 수용)을 취하는 모습이 상당히 불쾌하다"면서 "소상공인연합회와 함께 카드수수료 인하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