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 은행나무는 노란잎을 떨구었고, 하늘 향해 뻗은 빈가지엔 겨울바람 잠시 머물다 간다. 뒷산 대숲과 비자나무숲은 오늘도 여전히 푸른데, 고택 사랑채 마루에 걸터앉으면 남도의 겨울 햇살은 옛 시인의 시심을 자극했던 그날처럼 참 따사롭다.
‘남도답사 일번지’ 땅끝 해남은 볼거리가 많은 고을이다. 두륜산 대흥사, 달마산 미황사 같은 천년고찰에 고천암 갈대밭의 철새들과 우항리 공룡발자국 화석, 그리고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의 현장인 우수영국민관광지…. 그렇지만 이곳들을 모두 둘러봤다 해도 해남 윤씨 종택인 녹우단(綠雨壇, 사적 제167호)을 빼놓은 해남 여정은 허전하다.
◆효종이 고산에게 지어준 집을 옮겨 지은 녹우당
녹우단은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뛰어난 작품을 남긴 조선시대의 문장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체취가 서려있는 곳이다. 종손이 기거하는 사랑채가 녹우당(綠雨堂)이고, 이 녹우당을 비롯해 선조인 어초은사당, 고산사당 및 추원당 등을 모두 아우르는 해남 윤씨 종택 전체를 녹우단이라 한다.
녹우단 전경
흔히 녹우당을 윤선도의 생가라고 짐작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고산은 지금의 서울 종로 연지동에서 윤유심(尹惟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큰 아버지인 윤유기(尹唯幾)에 입양되어 종가의 대를 잇는다. 고산은 17세에 남원 윤씨와 결혼하였는데 그 후에도 계속 서울에서 살다가 25세가 되어서야 녹우당을 들렀다 한다.
여든다섯의 생애 동안 고산이 해남 일대에 머문 기간은 30년이 채 안 된다. 즉 서울에서 39년, 여러 유배지에서 20여년을 보냈다. 해남으로 내려와서는 은거지인 보길도에서 13년, 금쇄동에서 9년을 지냈는데, 종택인 이곳 녹우당에서는 6년 정도만 머물렀다 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종택에 머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산은 1628년(인조 6년) 별시 문과의 초시에 장원한 후 봉림대군(효종)을 모시는 왕자사부가 되었는데, 녹우당은 임금이 된 효종이 어릴 때 자신의 사부였던 고산을 위해 지어준 수원 집을 지금의 해남 연동마을로 옮겨지은 건물이다.
당호인 녹우(綠雨)에 대한 해석은 여럿이다. 사람들은 녹우당 앞에 있는 은행나무에서 잎이 우수수 떨어지면 마치 빗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녹우당 뒤편의 대숲에서 부는 바람이 빗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녹우당 뒷산엔 비자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바람 부는 날이면 그 숲에서 마치 빗줄기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해서 지은 당호라고도 한다.
그런데 녹우(綠雨)는 사전적 의미로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풀과 나무가 푸를 때 내리는 비’를 말한다. 자연의 성장에 큰 보탬이 되는 생명수인 것이다. 녹우당이란 당호를 지은 이는 고산의 증손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와 절친한 사이였던 이서(1662∼1723). 공재의 재능을 잘 알고 있던 그가 공재를 녹우에 견주어 당호를 붙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은행나무, 대숲, 비자림 모두 녹우단의 소중한 보물이다. 500년 묵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고산이 시심을 가다듬는 것을 지켜봤을 테고, 대숲은 국난이 닥쳤을 때마다 대대로 전해오는 소중한 보물을 항아리에 넣어 묻어두던 곳이다. 녹우단 뒷산의 비자림 역시 해남 윤씨가 대대로 가꿔온 숲이다. 녹우단에 처음 터를 잡아 해남 윤씨가 번창하게 되는 기틀을 마련한 어초은 윤효정이 “뒷산의 바위가 보이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유훈을 남기자 후손들이 비자나무를 심은 것이라 한다. 현재 비자림엔 500여년 된 비자나무 400여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녹우단에 들렀다면 뒷산에 조성된 이 비자나무숲을 꼭 거닐어보자. 어초은 사당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400m 정도 걸으면 비자나무숲이 시작된다. 찬바람 불어대는 한겨울에도 진녹색 바늘잎을 매달고 있는 모습에서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에 한치 물러섬 없이 치열하게 맞서던 고산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비자림 구경에 왕복 40~50분 정도 걸린다.
고산윤선도유적지입구
고산사당
◆해남 윤씨의 소중한 보물이 전시돼 있는 유물전시관
고산과 녹우단의 인연을 이야기하려고 뒤로 미뤄졌지만, 고산 윤선도 유적지 답사에서 매표소를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은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이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문적(文籍) 문서 및 고화(古畵) 등이 고루 갖추어진 이 유물전시관을 둘러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보물로 지정된 산중신곡(보물 제482호), 노비문권(보물 제483호)을 비롯해 고산의 육필과 집안 문서, 윤두서가 그린 걸작 공재자화상(국보 제240호), 그리고 동국여지도·일본여도와 ‘나물 캐는 두 여인’ 등이 수록된 해남윤씨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등 웬만한 박물관에 뒤지지 않는 귀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 자체도 눈길을 끈다. 2010년 개관한 이 유물전시관은 최근 ‘2011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고산의 삶과 문화예술을 아름다운 전통한옥으로 구성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특히 지하의 전시관과 지상의 전통한옥을 이어주는 매개공간인 아트리움을 도입하고 전시관 동선을 녹우당으로 자연스럽게 연계시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입장료는 일반 1000원, 어린이 700원. 유물 관람과 녹우당 구경에 비자림 산책까지 포함해 1~2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전화 061-530-5548
여행수첩
●교통 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2번 국도(영암·해남·진도 방면)→영산호하굿둑→월산교차로→13번 국도(해남 방면)→해남읍 평동 교차로(좌회전)→806번 지방도(대흥사 방면 1.7km)→연동리 사거리(좌회전)→1.3km→고산윤선도유적지<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숙식 해남읍에 있는 해남관광호텔(061-533-9002), 하얏트모텔(061-536-2020), 사파이어모텔(061-537-4825) 등이 깨끗하다. 해남읍 농협 뒤에 있는 천일식당(061-536-4001)은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한정식집이다. 떡갈비정식(1인분)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