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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과거 농촌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시대에는 어쩌면 그렇게 있어야 할 사람들이 다 있었는지요. 소리를 잘 하는 사람,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 침을 잘 놓은 사람,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남을 잘 웃기는 사람에 정신이 좀 온전치 못한 바보 같은 사람이 대개 있었지요. 공자님께서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중 한 사람은 스승이라고 한 말도 이런 연유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같지 않기 때문에 내게 없는 것이 누군가에겐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서로 품앗이를 하고 나누는 것이 우리네 풍속이었습니다. 재능을 기부하는 일은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물질 위주의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인간애를 느끼며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매우 뜻 깊은 나눔 행사가 바로 재능기부입니다. 이제 직접 나서 나의 재능을 사회에 환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고 보니 어느덧 재능기부를 하기 좋은 봄이 왔네요.
케이블 채널 tvN <롤러코스터-남녀생활탐구>로 유명해진 성우 서혜정 씨가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목소리 재능기부에 열심인 이유다. 신이 준 목소리로 세상을 아름답게 해야겠다는 그의 말 속에는 의무감마저 느껴진다.
서씨를 만난 것은 여의도의 한 녹음실. 이날도 그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벌이고 있는 '착한 도서관 프로젝트'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밖으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무미건조해 웃음을 더 자극하는 <남녀탐구생활>의 목소리나, 의 세련된 스컬리 목소리가 아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상의 화면해설을 맡은 그의 목소리는 또박또박 차분했다.
그가 이렇게 목소리 기부 활동을 벌이는 곳은 다양하다. 오디오북 제작은 물론 TV화면 해설과 공연, 영화 해설 등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무궁무진하다.
"처음에는 시간을 비워두는 일이 부담스러웠어요. 내 본업에 지장이 생기기도 하니까 이 일을 조금 늦게 시작할 걸 하는 후회도 들었어요. 하지만 봉사는 내가 먹고 남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내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봉사할 시간을 떼어 놓죠."
서씨가 목소리 기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재능기부'란 말이 생겨나기도 전인 20년 전, 성우로 첫발을 내디딜 때였다. 신입 성우의 업무 중 하나는 선배들의 손을 잡고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찾는 것이었다. 시각장애인 봉사가 필수 코스였던 셈이다. 하지만 성우로서 점차 성장하다 보면 본업에 밀려 봉사 일은 엄두도 못 내게 된다.
"저도 한동안 일하느라 바빠 봉사에 관심을 두지 못했죠. 성우로서 자리가 잡혔을 때 비로소 다시 사회에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많은 선배들이 닦아 놓은 봉사의 길에 후배들을 독려해 다시 시작했죠."
서씨는 KBS성우극회에서 임원을 맡을 때부터 시각장애인 복지관과 연계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일을 벌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친구나 다름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소리로써 새로운 것을 잘 전달해주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렇게 봉사에 몰두하면서도 서씨는 오히려 자신의 본업에 더욱 성실해졌다고 말한다. 봉사를 잘하는 만큼 내게 맡겨진 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는 것.
"이제는 봉사를 하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가 됐어요. 우리의 봉사로 도움을 받는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우리 성우들도 봉사를 통해 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선·후배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공신인 셈이에요."
◆봉사의 길로 이끈 가난의 기억
서씨가 봉사의 삶을 사는 이유는 각별하다. 어린 시절 지붕도 벽도 없는 허름한 집에서 살던 가난한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나눔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린 서씨의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실 때면 당시 지폐로 된 10원짜리 10장과 100원짜리 1장을 가져 갔다. 시장가에는 걸인이 항상 다섯 명 정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10원짜리를 접어서 가만히 바구니에 넣어주며 일일이 '힘내라', '건강 잃지 마라'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서약까지 하신 분이에요. 그동안 가난하게 살아 사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면 훌륭한 의사 한 명이 나온다면서요. 이런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닮고 싶어요."
그의 봉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선교 사업도 벌이고 있다. 자신이 성우극회에 기부한 금액으로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 3개의 우물을 팠다. '성우의 샘' 2개와 봉사의 삶을 산 어머니를 기린 '엄마의 샘'이다. 올해 서씨의 계획은 그 마을에 있는 120여명의 고아들에게 1대 1로 한국의 어머니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압니다. 제가 가난을 통해 어려움을 배웠기 때문에 이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게 더 나쁜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는 유명 성우이자 남편 없이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연기자의 꿈을 품고 지금은 군대에 있는 아들과 작곡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딸아이를 두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도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어려운 사람을 더 돕겠다고 강조해 왔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뒷바라지해주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는 알아서 시집장가 가도록 할 거예요. 제가 여러 차례 그렇게 말하자 우리 큰 아들은 '엄마 것 누가 달라고 했어?'라고 정색하기도 한다니까요. (웃음)"
그는 자신의 재능이 뭔지 몰라 기부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이 뭔지 몰라 기부를 망설이고 있기도 해요. 하지만 일단 시작해보면 자신을 시험해볼 수 있고, 의외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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