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개시 3시간 전에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70여 미터를 넘어섰다. 공연이 1시간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1500여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공연장과 부대시설을 갖춘 건물 사면이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완전히 포위됐다. 

지난 3월 22일 늦은 오후(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장 큰 나이트클럽 쿨하우스(KOOL HAUS) 앞. 금발의 백인부터 동양인, 흑인, 남미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종의 청소년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줄을 서 있었다. 이날 오후 8시부터 시작하는 '2K12 코리아 나이트: K-팝 웨이브 X 서울 소닉' 공연을 기다리는 인파들이다.

드디어 8시를 몇 분 남기고 공연장 문이 열리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쏟아져 들어가 무대 앞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그 넓던 공연장이 금세 채워지고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 대부분이 휴대폰을 높이 쳐들고 한국에서 온 가수들의 공연 모습을 찍으며 음악에 취했다.

틴탑, 에이핑크, 지나, 브라이언 등 한국의 K-팝 가수들과 크라잉 넛, 3호선 버터플라이, 옐로 몬스터즈 등 한국의 인디밴드가 오후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장장 5시간에 걸쳐 공연을 펼쳤다.

오후 10시까지 K-팝 가수들의 공연이 끝나자 미성년자들이 집에 돌아가느라 관객이 한차례 빠지긴 했으나 수백명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는 새벽 1시까지 서서 한국 인디밴드들의 음악세계에 흠뻑 취했다. 한 백인 남성은 "여자친구가 지나를 보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크라잉 넛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에 반했다"고 말했다.
 
공연장 밖에 붙여 놓았던 500장의 포스터는 K-팝 팬들이 모조리 뜯어갔고, 시험 삼아 준비해온 틴탑의 CD 200장은 몇분 만에 동이 나 버렸다.

 


◆K-팝, 캐나다에서도 통했다…한국 인디밴드 잠재력도 확인

이날 행사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캐내디언 뮤직 페스티벌'의 하나로 기획됐다. 21~25일까지 5일간 진행된 '캐나다 뮤직 페스티벌'에는 40여개국에서 900명 이상의 가수들이 참여해 토론토 곳곳의 공연장에서 각자의 음악세계를 펼쳐보였다. '2K12 코리아 나이트'는 '캐내디언 뮤직 페스티벌' 기간 중 가장 넓은 장소에서 열리는 핵심 공연 중의 하나였다.

김경희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KOFICE) 사무국장은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라고 하지만 북미에서는 아직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며 "캐나다 관객들에게도 K-팝이 설득력이 있을까 궁금했고 한국의 인디밴드들도 해외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알아보고 싶었다"며 공연을 기획한 취지를 설명했다.

또 "캐나다에서 한국 가수들이 모여 이런 규모의 공연을 펼치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막상 공연을 해보니 이미 틴탑, 지나 등 K-팝 가수들을 캐나다 관객들이 많이 알고 있어 놀랐다"고 밝혔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관객 중에는 틴탑을 보기 위해 퀘벡에서부터 5시간 자동차를 몰고 온 열성팬도 있었다.

김 국장은 욕심내 레이디 가가와 밥 딜런 등이 공연했던, 토론토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넓은 나이트클럽 쿨하우스를 공연장소로 결정하긴 했지만 내심 걱정이 많았다. 출연진이 소녀시대나 2EN1, 샤이니처럼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들은 아닌데다 K-팝이 아시아와 남미에서 열풍이긴 하지만 북미에선 반응이 어떨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20일 아침 한국을 출발하기 직전 표가 1000장 이상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에서도 K-팝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한국 인디밴드들의 해외 진출도 추진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놀라기는 공연 주최측인 캐나다 뮤직 위크(CMW) 조직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CMW 관계자는 이날 밤 11시쯤 KOFICE측에 전화를 걸어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넓은 공연장에서 펼쳐진 가장 성공적인 공연"이라며 "한국 음악의 힘에 놀랐다"고 말했다.

◆K-팝에 반하는 지구촌, SNS와 10대 초반 공략이 비결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월4일 K-팝이 아시아를 점령한데 이어 남미와 유럽을 거쳐 미국시장까지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또 K-팝이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는 원인을 유트뷰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찾았다.

NYT는 "최근 K-팝이 서구에서 성공의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은 자국 음악산업에서 배운 교훈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음악계는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CD 판매량이 70.7% 급감하면서 일찌감치 음악의 디지털 유통에 주력했는데 때마침 세계적으로 SNS 사용이 급증하면서 한국 음악이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설명이다.

NYT는 제이 박(박재범)이 2010년부터 미국과 캐나다, 덴마크 등에서 애플 아이튠즈의 R&B/소울 부문 1위에 자주 오르고 있다며 인터넷 강국인 한국의 음악이 SNS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콘텐츠 측면에서는 K-POP이 과거의 보아나 비를 통해 시도했던 섹스 어필 분위기에서 벗어나 사춘기 직전의 청소년들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음악방송 Mnet의 미국 채널인 Mnet 아메리카의 애덤 웨어 대표도 지난 2월7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디즈니 채널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 유튜브를 검색하다 소녀시대 동영상을 보고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사춘기 직전의 아이들이 자신보다 서너살 또는 대여섯살 밖에 나이가 많지 않은 청소년들이 멋진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동경심을 가지면서 K-팝의 팬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KOFICE의 김 국장은 3월초 브라질 삼바축제에 아이돌들의 댄스 교사들과 참여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브라질 삼바축제에 K-팝 댄스를 가르쳐준다고 신청을 받았다. 그랬더니 전혀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몇 시간만에 금세 300명이 넘어갔다. 인원이 너무 많아 신청을 그만 받았더니 교습 인원을 늘려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댄스를 가르치는 당일엔 교사들이 마치 아이돌인양 사인을 받으려고 난리였다."

◆K-팝 열풍, 북미시장도 점령할까

원더걸즈가 미국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소녀시대도 지난 1월초 'The Boys'의 미국 발매를 계기로 인기 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맨쇼'에 출연하는 등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지만 북미시장의 K-팝 인기는 아직 아시아나 남미만큼 뜨겁지 않다.

미국 LA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 컨설턴트 모간 캐리는 NYT와 인터뷰에서 K-팝이 미국에선 아직 틈새시장용이라며 K-팝이 미국 음악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패션과 영화 등 미국 팝문화 전반을 공략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지난 2월7일 소녀시대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잘하는 제시카와 티파니를 멤버로 포함시킨 것이 영리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노래의 언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아시아나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영어 노래라는 점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미국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른 곡 가운데 영어가 아닌 것은 '마카레나'를 비롯해 5곡밖에 없다. 따라서 영어적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 북미시장에서 성공하는 비결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반면 Mnet 아메리카의 웨어 대표는 소녀시대의 'Gee'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6400만건 이상 조회된 것을 지적하며 "영어 노래가 아니라도 많은 대중들이 (소녀시대의) 손동작을 정확히 안다"며 "이런 현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K-팝이 영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매력과 강점을 갖고 있다는 의견이다.

뉴욕 데일리 뉴스는 지난해 10월23일 기사에서 K-팝이 "빌보드 차트 100위권 노래들에 식상함을 느끼는 대중들에게 대안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서 너스랫 두러나이 MTV 월드의 매니저는 "오늘날 미국 팝 음악을 보면 위대하고 수준도 매우 높지만 비슷비슷한 반면 한국 음악의 비주얼적 어휘는 완전히 다르다"며 "왜 팝 음악은 오로지 미국이 주도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K-팝이 아직 북미 음악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유수의 언론에서 이처럼 K-팝에 대해 주목하며 언급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전과 다른 K-팝의 위상과 영향력을 증명한다. 
 

권성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