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는 각박하다.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기회가 생기지만 동료와의 경쟁을 부추겨 유대관계를 해치기도 한다. 자칫 남의 성과에 눈독을 들이기도 하고 폐쇄적인 기업문화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정보의 불균형으로 회사 전체에 마이너스가 될 여지도 다분하다. 물론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사람'보다는 '돈'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존이나 경쟁 같은 치열한 격전이 예상되는 성과주의 앞에 '따뜻한'이라는 관형어가 붙었다. 이율배반적이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취임식에서 '따뜻한 성과주의'를 강조했다. 116년 동안 이어온 국내 최장수 기업의 회장이 강조하는 따뜻한 성과주의란 무엇일까.
◆공정한 인사가 인화의 비결
박 회장이 제시한 따뜻한 성과주의는 두산의 인재육성 전략의 중심이다. 흔히 알려진 성과주의와 비교하면 결과는 같지만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구성원 간의 끝없는 경쟁과 도태가 반복되는 것이 냉혹한 성과주의라면 따뜻한 성과주의는 구성원 스스로 커가고 또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느끼면서 동시에 성과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박 회장은 취임사에서 따뜻한 성과주의의 전제조건으로 "시장과 경쟁에 휘둘리지 않는 탁월한 수준의 제품과 기술을 확보하고 전 조직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뜻을 같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따뜻한 성과주의는 이날 처음 등장한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적어도 인프라그룹으로 변신하면서부터 그룹의 지향점이 됐다. 과거 두산가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따뜻한 성과주의의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따뜻한 성과주의를 언급할 때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가 박두병 초대회장의 일화다. 박 초대회장은 인화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설날 세배하러 오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미풍양속은 권할 일이지만 개인 간 친소관계가 만들어지면 조직이 공평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이 2009년 서울대 특강에서 설명한 따뜻한 성과주의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박 사장은 인사 정책을 설명하면서 "동문이라고 특혜를 줘선 안 되고,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공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사의 공정성이 두산의 경쟁력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용만 회장이 설명하는 따뜻한 성과주의 역시 인사의 공정성에 무게를 뒀다. 박 회장은 2011년 '장수기업 비결' 서울대 강연에서 "냉혹한 성과주의는 조직원의 공포심을 유발하고 팀워크를 저해한다"며 "승진에서 능력 외적인 변수가 없어야 조직 구성원 전체가 서로 당당하게 대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진정한 인화와 팀워크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16년을 이어온 두산그룹 파워의 원천은 공정한 인사를 통한 인화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서울대 채용설명회 강연
◆적극적인 소통으로 인재 잡는다
두산그룹을 상징하는 대표 카피 '사람이 미래다'는 잘 알려진 대로 박 회장의 작품이다. 이 카피는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직급 승진의 개념을 없앤 두산그룹의 차별없는 인재육성 의지를 담았다.
그룹의 모태가 된 OB맥주를 팔면서까지 소비재 위주에서 인프라지원사업(ISB)으로 변신을 주도했던 박 회장 입장에서는 인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인프라지원사업에 대한 원천기술 부족으로 시장 성장의 한계를 느껴왔기 때문이다.
인재중시 사풍은 두산그룹의 인사이념과도 연결된다. 이른바 2G전략이다. 조직구성원의 성장(Growth of People)을 바탕으로 사업의 성장(Growth of Business)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사업의 성장은 다시 사람을 성장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된다. 박 회장은 2G전략을 통해 그룹의 성장을 기획한 주역이다.
박 회장의 인재성장 프로젝트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 사장 시절 해외 MBA 선발제도를 도입하고 우수인력 채용에 일찌감치 공을 들였다. 현지 채용면접을 위해 장거리 비행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행보였다.
국내 인재 발굴에도 소홀함이 없다. 박 회장은 해마다 대학 캠퍼스를 돌면서 신입사원 채용 현장을 누빈다. 벌써 10년째다. 오너가 직접 채용설명회를 갖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박 회장이 주관하는 채용설명회는 항상 '구름관중'을 수반한다. 자리가 없어 발을 구르는 학생이 수백명이 되기도 한다.
대학생 등 젊은 층의 지지는 박 회장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소통'과 연결된다. 박 회장은 그룹 총수로는 드물게 국내에서 손꼽히는 트위터리언이다. 팔로워만 13만1000명이 넘는다. 17만6000명의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에 이어 경영인 중 2위다.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갖는 IT기기에 대한 감상이나 소소한 주변 이야기가 박 회장 트위터의 주된 내용이다. 본인이 등장하는 사진을 올리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그의 콘텐츠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귀엽다'거나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다. 일부에서는 '가볍다'거나 '책임 있는 질문에 침묵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막강한 우군을 보유한 파워트위터리안이다.
박 회장에게 느끼는 친근감은 곧 두산그룹의 이미지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박 회장으로 인해 중공업 중심의 딱딱한 이미지 대신 친근한 이미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두산 3세경영의 마지막 주자이자 세대교체의 선봉장인 박 회장의 미래는 '사람'이다.
박용만 회장의 트위터 위트 어록
- 회장님의 식견으로 미래에 무엇을 하면 돈을 많이 벌수 있을까요? ▶ 그걸 알면 저부터 해치우지 이러고 있겠습니까?
- 오너~ 입장에선 빨간 날들 주루룩~ 이 별로시죠? 솔직하게~ ㅋㅋ ▶ 솔직하게 신나죠. 나도 노니까요. ㅋㅋㅋㅋ
- 회장님, 야근도 안하면서 회사 밥 먹고 퇴근하는 밥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밥 먹여 보내니 기분 좋지 않나요?
- 저는 두산 응원하구요~! 제 친구는 LG 응원합니다. 근데 전 LG다니구요. 제 친구는 두산 다닙니다. ▶ 두 분이 그룹사운드 만드세요. The 배신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