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이후 국내 증시의 급등세를 주도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순매도로 돌아섰다. 외국인의 매도 공세 속에 연초 2000선을 가볍게 뛰어 올랐던 코스피지수는 이달 1960선까지 뒤로 밀리며 고전 중이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 수급의 '키'를 쥐고 있는 탓에 향후 이들의 매매 패턴에 따라 지수 전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전기전자(IT) 등 일부 업종에서 차익 실현 욕구가 커졌을 뿐 지난해 하반기와 같은 대규모 이탈은 반복되지 않을 걸로 봤다. 하지만 유럽의 불안한 정세가 계속되고 있는 한, 이달에도 매도세가 멈추지 않을 거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IT업종 매도 폭탄, LG전자·SK하이닉스·삼성전자 '팔자'
4월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코스피시장에서 6620억원 규모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4월9일 이후 외국인의 순매도 우위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특히 4월9일에서 20일까지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1조4000억원으로 집계돼 'Bye Korea' 우려가 확산됐다.
월 단위로 외국인이 '팔자' 우위로 돌아선 건 4개월여만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터진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내내 순매도를 기록하던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이후에는 서서히 순매도 폭(-3665억원)을 줄였다.
올 들어서는 1월과 2월에 각각 6조3061억원, 4조2717억원 순매수를 기록, 단 2개월 만에 10조원이 넘는 돈을 퍼부었다. 3월에도 5073억원 매수 우위로 3개월 연속 '사자' 기조를 유지했으나 이달에는 매도 우위로 전환한 것이다.
외국인이 순매도로 방향을 틀면서 국내 증시도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돈'의 힘으로 올라온 증시는 지난달 연중 고점인 2057선을 터치했다. 하지만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지면서 이달에는 1960선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은 어떤 업종을 내다 팔았을까. 외국인은 4월 중 IT업종을 9204억원어치 팔아 순매도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업종과 운수창고업도 각각 2033억원, 1214억원 규모로 매도 우위를 기록했다.
이 밖에 음식료품, 섬유의복, 종이·목재, 의약품, 철강금속, 의료정밀, 전기가스업, 건설업 등 다수 업종에서 '팔자'세를 유지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자동차주가 포함이 된 운수장비업종은 꿋꿋하게 순매수(1155억원)했고, 통신업 역시 3301억원어치를 사들여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업종별 외국인 매매 동향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패턴과 상반돼 눈길을 끌었다. 외국인은 1분기에 2조원에 육박(1조9730억원)하는 자금을 IT업종에 쏟아 부었고, 화학업종 역시 1조7185억원 매수 우위를 보인바 있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이달 외국인 순매도 상위 종목으로 LG전자(-3017억원), SK하이닉스(-3000억원), 삼성전자(-2021억원) 등 IT업종 대표주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삼성화재, S-Oil, LG화학, 현대백화점, 현대중공업, 한국전략, 삼성전자우 등이 외국인 순매도 종목 10위 안에 들었다.
반면 SK텔레콤, 현대모비스, 기아차, 엔씨소프트, 삼성생명, 만도, 이마트, 포스코, KT&G, KB금융은 여전히 외국인의 '러브콜'을 받아 순매수 상위 10위권을 형성했다.
◆외국인 '팔자'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4개월여 만의 외국인의 '변심'을 두고서 증시 전문가들의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까지 매도 규모가 크지 않은 점, 4월 후반으로 갈수록 매도세가 잦아들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외국인 자금이탈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다수를 이뤘다. 외국인은 지난 4월24일 소폭 순매수로 전환했고, 26일에는 1734억원 순매수를 기록해 시장의 우려를 누그러뜨렸다.
이재만 동양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매도가 특정 업종인 IT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외국인 이탈 시그널로 확대 해석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면서 "미국 경기모멘텀 하락 전환 이후 IT업종에 대한 차익실현 욕구가 강하게 시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신흥아시아 6개국 증시의 외국인 매매패턴을 보면 국내(24%)와 대만(47%) 같이 IT업종에 대한 비중이 높은 증시는 4월 들어서 순매도인 반면 인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에서는 여전히 매수 우위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재 외국인의 매도는 남유럽국가(PIGS) 채권만기 도래로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며 "예년에도 3~4월은 외국인 순매도세가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이 대규모로 매수우위를 보일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빠르면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외국인 매도세가 진정되거나 소폭 순매수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 환경도 외국인 매수 쪽에 손을 들어줄 만하다. 2000년 이후 환율이 1100~1300원인 구간에서는 외국인 매수 우위였고, 1100원 미만이거나 1300원 초과 시에는 매도 우위였다. 4월 평균 환율이 1130원대고, 원화강세 가능성이 제한적인 터라 아직은 매수 우위 구간이란 분석이다.
밸류에이션도 아직은 비싸지 않다. 2000년 이후 주가수익배율(PER) 10배 이하에서는 순매수, 10배 초과 구간에서는 순매도 패턴이었는데, 현재 국내 증시의 12개월 예상 PER은 9배 초반대로 외국인 매수 가능 구간에 위치해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외국인 '팔자세'가 다음 달 이후까지 계속될 거란 전망도 있다. 조용현 하나대투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글로벌 경제에 대한 기대심리 후퇴와 유로존 우려로 외국인 매도세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기술적인 관점에서 이격도를 감안하면 외국인 매도가 좀 더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도 "프랑스 대선 이후에 유럽 신재정협약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고, 유럽은행의 자본 확충 이벤트도 6월 말 예정돼 있다"면서 "외국인이 4~5월간 계속 팔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