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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제주는 달랐다. 바다냄새 나는 민박집을 잡고 여장을 풀었다. 밤바다의 정취 속에서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불 위에서 고기가 익고 소주잔이 돈다. 익숙한 술자리지만 제주의 밤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여행지에서 맛봤던 밤의 만찬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맑은 하늘 제주의 아침은 이국의 정서가 짙다. 야자수가 가로수이며 은빛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끊어지는 풍경은 더욱 더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햇살 맑은 거리로 나섰다.
협재해변
◆바다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제주 서부의 바다와 바닷가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민박집과 가장 가까운 바다는 금능해변이었다. 걸어서도 몇분 거리 밖에 안 되는 곳에 은빛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있었다.
오전 햇살이라고는 하지만 은모래에 반짝이는 햇볕에 눈이 부셨다. 뽀드득거리며 발자국으로 남는 모래를 밟으며 바다가 일렁이는 해안선을 거닐었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었고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날렸다.
마음의 색을 찾아 다녔던 시절이 있었던 나에게 그 바다색은 아주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을 선물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찾은 그 색은 봄의 연둣빛 신록, 잉걸의 이글거리는 크림슨 빛이었으며 신비한 색을 지닌 바다가 그날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색에 억지로라도 이름을 붙이자면 ‘에메랄드빛’ 혹은 ‘옥빛’이라 할 수 있겠다. 옥빛도 부끄러워할 보석 같은 바다가 망망하게 펼쳐졌다.
그 빛은 협재해변에도 있었다. 협재해변은 금능해변의 모래톱 위에 있는, 바로 옆 해변이다. 옥빛바다가 그대로 이어진다. 갯바위가 바다 멀리까지 뻗어 있다. 제주가 생길 때 바다까지 흘러온 용암이 굳어 생긴 태초의 흔적이다.
‘처음’이라는 것만이 가질 수 있는 ‘신비’가 너무나 당연하게 바다에 펼쳐져 있다. 그 위를 걸어 바다 멀리 나갔다. 바다 쪽으로 나가는 만큼 발걸음 만큼씩의 바다가 마음에 들어오고 있었다.
바다를 등지고 돌아섰다. 멀리 해안이 보인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과 바다에서 해안을 바라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더 이상 가지 못하는 동경이 바다를 바라보는 눈이라면, 바다에서 해안을 바라보는 눈은 현실을 떠난 나를 또 다른 내가 볼 수 있는 눈이다.
하얀 모래사장으로 밀려가는 옥빛바닷물에 햇볕이 부서져 눈이 부시다. 모래사장 뒤 바닷가 마을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린다.
제주 바닷가 마을의 돌담
발자국을 포개며 모래사장을 걸어 나왔다. 해변 마을은 아주 평범한 바닷가 마을이다. 골목길을 만드는 건 돌담이다. 모든 집 대문이 열려 있다. 어떤 집 마당에는 세발자전거가 있다. 수도를 잠그지 않았는지 물이 고무호스에서 줄줄 새고 있다. 담쟁이 넝쿨이 가득한 벽은 자연이 만든 벽화다. 채소밭으로 일구던 텃밭에 생활쓰레기가 나뒹굴고 그 건너 돌담 한쪽이 허물어졌다. 무너진 돌담 사이로 저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오랜 연인들처럼 바다와 돌담은 아주 멀리서도 서로가 서로의 풍경이 돼주며 그냥 그렇게 남아 있다.
집집마다 민박을 한다는 푯말을 내걸었다. 햇볕도 지루해지는 한가로운 어느 오후를 대하는 마음으로 몇달 동안 방을 빌려 마당에 내린 햇볕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을 골목골목을 돌아 나와 해변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이 곽지해변(곽지과물해변)이다.
곽지해변
◆곽지! 바닷가에서 보낸 하룻밤
곽지해변은 규모가 컸다. 그늘이 드리워진 휴식공간에 의자가 놓였다. 옥빛 바다는 더 넓게 빛나고 있었으며 가도 가도 허리에도 차지 않는 바다는 단연 세 바다 가운데 최고다.
우리는 그 바다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서둘러 민박집을 잡고 식당을 찾았다. 다행히 민박집에서 식당도 함께 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꼭 먹어야 할 ‘오분자기해물뚝배기’와 ‘고등어조림’을 먹었다. 배를 채우고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아이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현무암 갯바위에 갇힌 바다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해수풀장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곳 바다를 잘 알고 있는 냥 아이들은 물에서 뒹굴고 논다.
갯바위가 뒤엉켜 기이한 형상을 만들어 놓은 곳에 앉아 우리는 바다와 바다에 빠져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바다에 울려 퍼진다.
자리를 옮겨 해변 분수대 옆에 앉아 노을 비치는 바다와 하늘을 바라본다. 아이들도 바다에서 나와 분수로 뛰어든다. 솟구치는 분수 물줄기를 손으로 치고 가른다. 그때마다 물보라가 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노을빛 바다가 그윽하다. 해가 지고 나서도 아이들은 해변에서 뛰어 논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해변 통닭집에서 통닭과 생맥주를 시켰다. 파도 소리 들으며 먹는 통닭과 생맥주 맛은 남달랐다.
밤이 깊도록 그곳을 떠날 줄 몰랐다. 그냥 그곳에서 그렇게 새벽을 맞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음 날에도 아이들은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갔다. 튜브를 타고 파도와 함께 너울거리는 아이들만 봐도 행복했다.
바다까지 흘러온 용암 해녀들이 건져올린 해산물
◆바다 절벽 위 해안도로 드라이브
제주는 다른 나라 같다. 바람도 육지의 그것과는 다르다. 바람 많은 언덕의 돌담은 아일랜드 바닷가 언덕마을 같기도 하다. 마음에 덕지덕지 붙은 때가 벗겨지는 느낌이다.
금능해변, 협재해변, 곽지해변을 지나 북쪽으로 가는 길은 웬만하면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로 가야 한다. 속도를 즐기는 것보다 길과 어우러진 주변 바다와 마을 풍경을 즐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다 바로 옆길로 가기도 하고 바닷가 마을로 난 좁은 길도 지난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 공터에 차를 세우고 바라보는 바다와 바위와 마을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때로는 막다른 골목이거나 바다로 이어지는 길 앞에서 길이 끊어지기도 하지만 돌아 나오면 그뿐이다.
그런 길을 달리다 보면 바다에서 갓 나온 해녀와 마주치며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마을 허름한 식당에서 토박이 제주 사람들이 먹던 음식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골목을 돌고 돌아 나와 해변도로를 만났다. 바닷가 절벽 위로 길이 나 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몇 걸음 내딛으면 바로 수직낙하 절벽이다. 흰 파도가 부서져 그르렁 거리는 풍경 속에 갯바위 낚시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로 차를 달리는 일은 제주여행의 또 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제주공항에서 1132 일주도로 서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금능·협재·곽지해변이 차례로 나옴
대중교통
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일주도로를 순환하는 버스를 탄다. 순환 버스는 동쪽으로 가는 ‘동순환 버스’와 서쪽으로 가는 ‘서순환 버스’가 있는데 곽지리, 금능리 등을 지나는 ‘서순환 버스’를 타고 해당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숙박>
각 해변에 민박집과 모텔 등이 있다.
<음식>
고등어찌개, 갈치찌개, 오분자기뚝배기 등 제주 특산물 요리를 맛 볼 수 있다. 우리는 곽지해변에 민박집을 정했다. 민박집에서 식당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오분자기뚝배기, 고등어찌개 등을 맛 봤다. 곽지해변 바로 앞에 통닭과 생맥주를 파는 집이 있는데 바닷가에서 즐기는 통닭과 생맥주 맛도 괜찮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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