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15만원쯤 하는 에스티로더 갈색병이 프랑스 가니까 3만원 대였다던 충격적인 이야기가 생각난다." - @JH_Darkness(트위터)
최근 시민단체들의 화장품 가격에 대한 조사가 잇따르면서 ‘제 값 못하는 프리미엄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이후에도 화장품 가격은 여전히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높아가는 불만에도 화장품이 이토록 고가행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격 거품은 과연 꺼질 수 있는 것인가.
한국화장품 더샘 매장
◆ 고가 화장품 거품 확인에도 가격은 그대로?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 9월 국내 20개 제품의 비비크림 가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비싼 아모레퍼시픽 제품과 가장 저렴한 쿠시 제품의 10ml당 가격 차이는 15배에 달했다. 자외선 차단기능 성분 배합한도를 초과한 4개 제품 중에는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대기업 제품이 포함돼 있었다.
이어 발표된 서울YWCA의 조사 결과는 화장품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수입화장품 가격 및 소비자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총 4개 품목의 36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국내에서 판매되는 수입화장품 가격은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1.5~2배가량 비쌌다. 한국관세무역개발원에서 제공받은 수입액과 수입중량 정보를 바탕으로 따져본 립스틱의 국내소비자가격은 수입원가에 비해 8배나 차이가 났다.
조사 결과 발표 이후 “거품이 이 정도인 줄 몰랐다”는 소비자들의 원성은 높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화장품 가격은 현재까지 요지부동. 실제 이번 조사를 진행한 서울YWCA의 허지현 소비자환경부 간사는 “조사 결과를 내놨지만 이후에도 해당 업체의 화장품 가격 변화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업체 측에서 연락을 해 온 경우도 없었다”고 전했다.
당장 수입화장품 업체들은 화장품 가격 결정은 수입원가에 관세, 운송비, 인건비, 유통업체 마진과 광고판촉비 등의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고 반발하고 나선 상황. 이는 국내 화장품 대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프리미엄 화장품으로서 제품의 질에 자신이 있다”며 “당장 가격 정책의 변화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 전문가들 "가격 거품 악순환 구조"
“결국엔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화장품 업체들이 이 같은 소비자의 막연한 기대심리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악순환이죠.”
소비자YWCA 허지현 소비자환경부 간사는 이번 조사를 진행하면서 내린 겨론을 이렇게 정리했다. 실제로 이번에 함께 실시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 92.7%가 수입화장품 가격이 비싸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같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화장품은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는 답을 한 이들이 67.3%,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내 피부에 투자하고 싶다’는 이들도 48.5%에 달했다.
허 간사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제품을 모를 때에는 저렴한 중소기업 화장품에 우수한 평가를 내렸던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인지한 뒤에는 저렴한 화장품의 단점을 찾아내는 등의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설문조사 응답자 중에서도 내가 사용 중인 고가의 화장품이 마트나 로드숍에서 판매되길 원하지 않거나, 집에서는 저렴한 화장품을 사용하더라도 남들에게 보여지는 휴대용으로는 고가의 제품을 쓴다는 이들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수입화장품을 취급하고 있는 병행수입업체 관계자 역시 이와 비슷한 구조를 지목했다. 그는 “업체들이 정확한 자료를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통상 추정하기로는 원가와 비교해 최종소비자가가 6배 정도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가격 거품의 대부분이 유통 마진과 마케팅 비용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주 소비자층은 대부분 30대 후반부터 50대의 여성들. 최근 20~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화장품 가격 거품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저렴이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주 소비자층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화장품업체들이 현재의 높은 마진률을 포기할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높은 가격에도 이를 찾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수입화장품업체들 입장에선 독점적인 판매망을 통해 가격경쟁 없이 손쉽게 고가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 화장품들 역시 이에 맞춰 높은 가격대를 책정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마케팅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고가 정책이 강화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국내 프리미엄 화장품은 주로 방판 판매비율이 높다”며 “방판의 주 타깃층인 40대 이상 중년여성들의 소비자층이 워낙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화장품업체들이 프리미엄 제품 가격을 떨어뜨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 정신차리는 소비자들…거품 제거 시기 앞당길까
현재 정부는 수입 화장품들의 독점적인 유통망을 개선하기 위해 병행수입을 활성화하고 국내 중소 업체의 기술개발을 위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화장품 가격 거품을 꺼뜨리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화장품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의 프리미엄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는 한 단기간 내에 화장품 가격 거품이 꺼지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고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화장품 업체들 역시 소비자들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다. 한 중소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은 한 제품을 꾸준히 사용하기보다는 정보를 따져보고 수시로 제품을 바꾸는 경향이 강하다”며 “장기적으로 실속 소비를 주도하는 현재 20~30대 소비자층이 확대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향후 5년 안팎으로 화장품업체들의 가격 정책 역시 변해야 할 시점이 머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YWCA 허지현 간사는 “화장품 가격 거품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향후 소비자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며 “이번 조사로 인해 파장이 만만치 않았던 만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이 같은 조사를 통해 장기적인 가격 정책의 변화를 유도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현재로서는 화장품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때문에 소비자들이 브랜드 이미지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이와 관련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