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수펙스 3.0버전… '또 다른 역할' 기대

#1. 1998년 9월, SK그룹 최종현 회장이 타계하자 손길승 당시 SK텔레콤 부회장이 그룹 총수(회장)로 올라섰다. 후계체제가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그는 최태원 회장과 ‘쌍두마차’로 SK그룹을 진두지휘하며 재계순위 5위의 SK를 3위로 끌어올렸다.

#2. 2012년 1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이 선임됐다. 손길승 전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전문경영인이 SK그룹 대표를 맡게 된 셈이다.

SK그룹이 최태원 회장 체제에서 김창근 부회장 체제로 공식 전환했다. SK는 지난 12월18일 서울 서린동 SK사옥에서 17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고 김창근(62) 부회장을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신임 의장으로 선출했다. 김 부회장은 대내외적으로 SK그룹을 대표하게 됐다.   
 


◆‘따로 또 같이 3.0’ 닻 올린 첫 ‘선장’

수펙스(SUPEX·Super Excellent)추구협의회는 각 계열사 CEO들이 모여 대규모 투자 등 주요 경영 사안을 결정하는 그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집단경영체제를 취하는 SK만의 독특한 조직이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그룹의 '사장단회의'와 같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과 집행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SK그룹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SK그룹 성장에 기여해왔고 향후 ‘따로 또 같이 3.0 체제’ 하에서 각사의 책임 경영과 자율적인 위원회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적임자”라며 만장일치로 의장에 선임된 배경을 설명했다.

SK그룹의 대표이자 수펙스추구협의회 신임 의장이 된 김 부회장은 지난 1974년 선경합섬(현 SK케미칼)에 입사한 뒤 그룹 경영기획실 재무담당 임원, 구조조정추진본부장, SK㈜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SK 성장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1994년 그룹의 자금 담당자로 고(故) 최종현 회장을 도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는 등 현재 SK그룹의 수직·수평적 성장을 이루는데 기여했고, 2004년에는 친정 격인 SK케미칼 부회장으로 복귀하며 SK케미칼을 첨단 화학소재·생명과학 기업으로 탈바꿈시켜 7년간 기업가치를 400% 넘게 올려놨다.

김 부회장은 향후 대내외적으로 SK를 총괄하면서 위원회 인선, 위원회 간 조정 역할 등을 수행하게 되는데 그룹 대표로 공식선상에 선보인 ‘무대’는 1월2일 열리는 신년교례회가 유력하다.

행사 당일 김 부회장은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최태원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교례회를 주재한다. 이 행사는 임직원들 간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자는 취지지만 통상 그룹 총수인 최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그해의 경영 방침을 천명해왔던 터라 대내외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따라서 2013년에는 김 부회장이 신년사를 발표하고 그룹 차원의 경영 목표와 화두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신년사에서 내세울 경영화두로는 ‘마음을 같이하고 덕을 같이한다'는 뜻의 '동심동덕(同心同德)'이 될 것이라는 게 SK측 설명이다. 

◆‘손길승 시대’와 따로 또 같다?

김 부회장이 신년교례회를 주재한다는 것은 '따로 또 같이 3.0' 체제가 1월1일부로 가동됨과 동시에 그룹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이 최 회장에서 김 부회장에게로 옮겨갔음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김 부회장은 과거 손길승 전 그룹 회장의 그룹 내 위치와 어떻게 구분이 되는 것일까.

현재로선 김 부회장이 과거 손 전 회장의 역할과 일맥상통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SK그룹 관계자 역시 "김 부회장이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과거 그룹을 대내외적으로 대표한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과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손 전 회장 이후 두 번째 전문경영인 체제를 맞이하게 된 SK그룹이지만 손 전 회장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현격히 다른 만큼 세부적인 역할 범위에 있어서는 손 전 회장과 적지 않은 차이점을 보일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손 전 회장은 1998년 최종현 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당시 어렸던(38세) 최태원 회장을 도와 SK그룹을 이끌었다. 후계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최 회장이 그룹을 총괄할 준비를 갖출 때까지 '과도체제'를 유지하며 1998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으며 SK그룹을 총괄했다. 최 회장의 '후견인' 격으로 그룹회장에 올랐지만 취임 이후 재계 5위의 SK를 재계 3위로 끌어올렸다. 

지금 SK는 김 부회장 체제로 전환하며 새롭게 시도하는 '따로 또 같이 3.0' 경영 실험의 첫 단추를 꿰기 위한 상황에 다다랐다. 따라서 SK그룹 내부적으로는 김 부회장이 손 전 회장과 ‘같지만 또 다른’ 역할을 해 줄 것을 내심 기대한다. 과거 손 전 회장이 SK그룹 전체를 이끌며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면 현재의 김 부회장은 계열사 간 조정자 역할을 할 것에 기대감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 회장과의 관계설정을 보면 두 전문경영인의 역할 범위는 엄연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손 전 회장이 재임 당시 SK그룹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투톱 체제’였다. 손 전 회장이 그룹을 대표하는 위치에, 최 회장은 대주주로서 그룹 경영에 적극 관여했다.

하지만 현재 김 부회장은 '원톱'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최 회장이 대주주로 ‘2선’ 후퇴하면서 SK(주),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본인이 대표이사로 있는 계열사 경영에만 관여한다고 보면 김 부회장은 그룹 차원 의사결정에 있어 최종적인 ‘조정자’ 역할을 단독으로 수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김 부회장은 1월 예정인 그룹인사에서 SK케미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SK 새 사령탑, 김창근은 누구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은 선경합섬을 시작으로 SK그룹에서만 40년 가깝게 근무한 정통 ‘SK맨’이다. 특히 그는 그룹내 재무와 구조조정 부문의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1981년 SK케미칼 자금부 외환과장·자금부장·재무팀장을 거쳐 1997년 SK 구조조정추진본부 재무팀장, 2000년 SK 재무지원부문장 등을 역임했다. 마지막 구조조정 본부장으로 1974년 ‘경영기획실’로 출범한 SK 구조조정본부를 30년 만에 직접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도 평가받는다. 구조조정 본부장이던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최 회장과 함께 형사처벌되기도 했다.

그의 별명은 ‘마징가’다. 매일 서너 시간만 자며 일에 매달리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그러나 SK케미칼 안팎에서는 ‘소통의 달인’으로 불린다.

실제 지난해 2월 발렌타인데이 당시 그는 13개 전국사업장 임직원들에게 음료를 선물하는 깜짝 이벤트를 진행해 화제를 일으켰다. 이날 하루 동안 그가 쏜 음료는 총 2600여잔으로 시가 5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김 부회장의 소통경영 때문인지 SK케미칼은 지난해 국내 기업사에 유례없는 43년 무분규를 기록하기도 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