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류현진 선수는 데뷔전부터 국내 프로야구 관계자들과 야구팬들을 흥분시켰다. 첫 등판에서 압도적인 투구를 선보인 류현진 선수는 국내 리그에서 뛰는 동안 '괴물투수'로 불리며 수많은 신기록을 남겼고 천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며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국내 주식시장에는 3년 전 류현진급 돌풍을 일으킨 신인이 등장했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스팩)가 그 주인공이다. 2010년 3월 국내 최초의 스팩으로 상장된 대우증권스팩은 일반공모 청약 때 경쟁률 87대 1을 기록하고 청약자금만 1조원 넘게 몰리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대우증권스팩을 포함해 2010년 한해에만 21개의 스팩이 상장됐다.
 
스팩은 투자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상장만 하면 며칠씩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11년 1월 상장된 케이비글로벌스타게임앤앱스스팩을 끝으로 새로운 스팩은 등장하지 않았다. 또 스팩의 목적인 기업 인수·합병(M&A)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존폐를 염려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합병 무산…'릴레이 상폐' 우려

스팩은 비상장 우량기업 인수를 목적으로 일반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로 일반 공모주처럼 증시에 상장돼 거래된다. 비상장사들의 증시 입성을 수월하게 하고 일반투자자들도 M&A 시장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존립 기한 내에 마땅한 합병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합병이 무산돼 상장폐지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증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히든챔피언스팩1호가 상장폐지 됐다. 히든챔피언스팩1호는 환경에너지 전문기업 엔바이오컨스와의 합병을 추진했지만 대주주로 있는 자산운용사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증시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에 앞서 대우증권그린코리아스팩과 우리기업인수목적1호, 동양밸류오션, 미래에셋제1호 등도 마땅한 합병대상을 찾지 못해 상장폐지됐다.

스팩은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공모납입일 기준으로 3년 이내에 합병하지 못하면 청산된다. 존립기한 6개월 전까지 비상장법인과의 합병을 위한 상장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1개월 이내에 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아직 합병에 성공하지 못한 스팩들도 존립기한까지 합병하지 못해 관리종목 지정 후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그로쓰알파스팩과 에스비아이앤솔로몬드림스팩, 한국투자신성장1호스팩 등은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다음달 중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키움제1호를 비롯한 나머지 스팩들도 마찬가지다. 대신증권그로쓰스팩과 하나그린스팩은 주주들의 반대로 합병이 무산된 바 있고 부국퓨처스타즈스팩, 하이제1호스팩, 키움스팩1호, SBI솔로몬드림스팩은 거래소로부터 합병상장 미승인 판정을 받았었다. IBK스팩1호는 합병승인 요청을 자진 철회했다.
 

◆스팩 최대주주 "굳이 합병까지…"

스팩이 본래 목적인 기업인수에 애를 먹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합병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다. 현재 증시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스팩은 자산운용사가 최대주주로 돼 있다.

얼마 전 상장폐지된 히든챔피언1호는 동부자산운용이 17%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이고 에스비아이앤솔로몬스팩은 유진자산운용(지분율 15.5%)이 최대주주다.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합병하지 않아도 원금에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M&A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스팩은 인수합병에 실패해 청산될 경우 공모자금 상환을 위해 공모를 통해 모은 돈의 95% 이상을 은행이나 신탁운용사에 예치해뒀다가 청산될 때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 주주들에게 돌려준다. 투자자들은 스팩이 합병에 실패해 청산되더라도 원금에 연 평균 3% 수준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공모가 이하로 스팩에 투자한 경우라면 수익률은 더욱 높아진다. 한화투자증권은 이 같은 이유로 히든챔피언스팩1호의 상장폐지가 확정된 이후 110만여주 이상을 매입하기도 했다.
 
합병된 회사의 주가흐름이 지지부진하다는 점도 기관투자자들이 합병에 소극적이게 하는 요인이다. 서진오토모티브의 주가(1월17일 기준)는 3040원으로 합병한 스팩의 공모가(5000원)를 39.2% 밑돌고 있으며 삼기오토모티브, 코리아에프티, 화신정공 등도 공모가를 각각 20~30% 이상 하회하고 있다.
 
합병에 반대하는 기관투자자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도 스팩 합병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회사가 합병을 결의한 후 이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공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것을 회사에 청구하는 것이다. 합병에 반대하는 투자자들이 많을 경우 주식을 사주는 데 들어가야 할 돈이 많아지기 때문에 비상장 기업들이 스팩과의 합병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신한스팩과 합병한 서진오토모티브는 주식매수청구대금으로 161억원을 지급했고 코리아에프티와 삼기오토모티브도 스팩과 합병하면서 각각 67억원, 33억원을 주식매수청구대금으로 지급했다.
 
◆M&A 역량부족·초기 난립도 문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스팩 운영진의 M&A 역량 부족과 초기 난립으로 인한 경쟁과열도 스팩이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A증권사 관계자는 "미국 등 외국의 경우 스팩은 헤지펀드와 같은 전문투자자가 중심이 된 시장이지만 국내는 도입 초기 개인투자자들이 기업공개(IPO)와 같은 시장으로 생각해 몰려들었고 스팩이 경쟁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이로 인해 합병기업을 찾기가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초기에 형성된 거품이 꺼지면서 스팩의 매력을 더욱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스팩의 합병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자산양수를 비롯해 영업양수, 현금매수 등 다양한 방식이 허용돼 지분인수를 통한 자회사 편입이나 사업 일부만 인수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하지만 국내의 경우 합병만 허용하고 있어 스팩 활성화를 제한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 시장형성 초기 자본환원율 등으로 스팩과 합병하는 비상장기업의 기업가치 평가에 대해 규제한 것도 스팩 활성화에 찬물을 뿌린 것으로 분석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