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싸움으로 불리던 건설사의 재건축 수주전이 예전같지 않다. 재건축 사업을 진행할 시공사 선정에서 유찰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사업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건설업계와 추가분담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재건축 조합간의 이견차가 ‘시공사 입찰 거부’라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1조 사업장도 시공사 못찾아
지난 12월 1조원 규모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고덕주공2단지의 시공사 입찰 현장은 썰렁했다. 입찰하는 건설사가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이후 두 번째로 무입찰 굴욕이다.
건설업계는 일반분양 물량이 부담스러운데다 지분제 방식이어서 분양가를 조합과 협의해야하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조합원들이 150%의 무상지분율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추가분담금을 낮추기 위한 조치다.
이 경우 고가의 일반분양이 불가피하다. 주택경기 침체로 인해 미분양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지는 구조다. 일반분양 물량을 팔아 수익을 보전해야 하는 시공사의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사업 지연에 시장 가격도 '냉랭'
과거 도급제는 건설사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면 받았던 개발방식이다. 하지만 개발에 따른 부담이 커진 지분제 대신 시공만 책임지는 도급제를 선호하는 추세다.
때문에 지분제를 고집하고 있는 사업장은 줄줄이 시공사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변동지분제 방식의 성내동 미주아파트 역시 지난해 12월 시공사 선정에서 쓴맛을 봤다. 현장설명회에 9개 건설사가 참여했지만 지분제 방식에 부담을 느낀 건설사들이 입찰 포기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강남·강동권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은 금융위기 시절로 복귀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2007년 최고가 11억5000만원을 찍었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76㎡형은 최근 시세가 7억4000만원까지 내려왔다. 경매시장에서는 같은 면적의 매물이 6억7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강남·강동권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 하락은 서울 재건축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아파트의 시세는 14주 동안 연속 하락세를 유지하다 1월 넷째주만에 겨우 반등했다. 지난 8월부터 상승률을 기록한 주는 불과 4주뿐이었다.
강남일대 재건축단지 전경
◆도급제도 입찰 제로, 조건 살피는 건설사들
심지어 도급제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시공사의 외면을 받기도 한다. 지난 1월15일 공릉동 태릉현대아파트의 재건축 시공사를 입찰하는 현장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현장설명회에 6개 회사가 참여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던 사업장이다.
당초 이 사업장의 시공권은 2010년 삼성물산과 GS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가져갔다. 그러나 이듬해 일부 조합원이 시공사 선정과정에서의 향응 등을 문제삼아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결국 조합원의 손을 들어주면서 새로운 시공사 찾기에 나선 것이다.
더군다나 이 사업장은 건설사의 부담이 덜한 도급제 방식이다. 건설업계는 정비계획이 변경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도급제 방식이더라도 세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입찰을 포기할 만큼 건설사는 수익성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셈이다.
이튿날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이 사업장의 60㎡ 이하 소형주택비율을 257가구에서 396가구(32.5%)로 늘려 심의를 통과시켰다. 조합 측은 소형평형 비율이 높아진 만큼 이번 심의를 반영해 또 한번 시공사 찾기에 나설 계획이다.
◆도급제와 지분제 어떻게 다른가
주택재정비사업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도급제와 지분제다. 이들은 재건축사업의 사업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책임과 위험도에서 차이가 있다.
도급제는 시공사가 건축물에 대한 책임만 지고 그에 대한 공사비를 받아가는 방식이다. 건축물의 평당 공사비를 미리 책정하고 설계대로 시공하면 시공사의 역할은 끝난다. 나머지 책임은 시행주체인 조합에 있다.
시공사는 공사에 필요한 직접적인 경비만 책임지고, 조합은 공사에 필요한 간접비나 부대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조합이 직접 마감재 등을 선정해 품질 좋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점, 공사 계약이 확정적이어서 공사 진행속도가 비교적 빠르다는 점, 사업 중 발생하는 이익을 모두 조합원이 갖는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지분제 방식은 시공사의 책임이 커지는 사업방식이다. 조합원 개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취득·등록세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비는 시행사가 부담한다. 사업 초기부터 조합원의 무상지분을 확정하기 때문에 사업 도중에 지분이 변경되는 일이 없다.
사업이 끝나는 시점에서 발생하는 손해나 이득은 시공사가 떠안는다. 만약 사업 도중 추가 사업비가 들면 시공사가 부담해야 하지만 분양가격이 올라 분양수입이 증가하더라도 이익은 시공사가 갖는 구조다.
최근 재건축 조합은 건축자재가격 상승과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인해 분양수익이 줄어들자 도급제 방식 대신 지분제 방식을 택했다. 도급제 방식을 택할 경우 추가 사업비의 부담이 조합에게 돌아오는 데다 시장 분위기 상 높은 분양가격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규가 바뀌면서 발생한 수익을 단순 개발 수익금으로 볼 수 있느냐다. 만약 계약 이후 법규가 바뀌면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수익을 개발 수익금으로 본다면 이 돈은 시공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아직 이와 관련한 법원의 판단이 없어 시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