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요새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난해 6월부터 원주시의 뒷골목을 청소하고 있는 김윤영 옹(74)은 매일 아침 일터에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바람이 난다. 그는 "노인들을 위한 협동조합이 생기지 않았다면 막막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원주 노인생활협동조합의 크린콜 사업은 원주시의 무단폐기물 및 뒷골목을 청소하는 일.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고 75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올해는 기본급이 상향조정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와 더욱 신이 난다. 그전에는 골프장의 잔디 깎기 등의 일을 했는데 겨울에는 일이 없는 등 소득이 불규칙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그는 "일을 하면서 마을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보람까지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원주 노인생활협동조합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긴 노인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서로를 돕는 협동조합이다. 지난 2006년 창립돼 학교 청소, 소독·방역, 길거리 청소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급여는 일의 성격이나 근무시간에 따라 1인당 월 20만~30만원에서 100만원 이상까지 지급한다.

괄목할 점은 어려운 경제환경에서도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해 일자리 참여 인원이 2010년 51명, 2011년 125명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160여명의 노인이 5억69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60세 이상 어르신 2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유창목 원주노인생활협동조합 사무부장은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자리에도 노인들은 기꺼이 찾아가니, 처음에는 노인들을 신뢰하지 않던 곳에서도 일을 맡겨보고는 만족해한다"고 전했다.

실제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3개월 인턴기간 동안 급료의 50%를 지원하는 '시니어인턴십'에도 참여 중인데, 원주 노인생활협동조합원의 경우 인턴기간이 끝난 후 계속 고용하는 비율이 40%를 넘을 정도로 근무평가가 우수하다. 유 부장은 "조합에서 지속적으로 설문조사와 교육 등을 통해 직무능력을 향상시킨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정된 일자리 문제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다. 매년 어르신 일자리를 늘리고 있지만 희망자에 비해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유 부장은 "전체 조합원 1600명 중 절반 정도가 일자리를 원하고 있는데, 현재 일자리는 200개 남짓"이라며 "일자리 확산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원주 노인생활협동조합은 앞으로 6080실버카페, 결혼이민여성 교육, 학습지도사업, 돌보미센터 등 사업 다각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 노인 자립 도모하는 '협동조합 새싹' 전국서 꿈틀

고령화사회의 노인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으로 협동조합이 주목받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전국 곳곳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광주 광산구에서는 지난 1월18일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자립 자생을 돕는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50명이 출자해 500만원의 출자금을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이렇게 첫 걸음을 뗀 '마중물 협동조합'은 향후 폐지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직원조합원들의 최저생활보장을 위해 보탤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같은 지역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이 주도하는 취업취약계층 일자리사업 협동조합 '더불어락'이 출범되기도 했다. 노인 20명이 힘을 합했다. 노인복지관을 빌려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북카페'를 운영하고, 인근 시장에 팥죽가게·두부가게도 차렸다.
 
광산구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자립·자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길을 지역사회와 논의한 결과 협동조합 설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협동조합으로 어르신들이 좀 더 편안하게 작업하고, 든든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르면 2월 안으로 '한국형 은퇴설계' 모델을 추구하는 '한국은퇴설계소'(가칭)도 협동조합 형태로 설립된다. 이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우재룡 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영리법인으로 은퇴자 문제를 풀기가 어렵기 때문에 협동조합이 가장 적합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 소장은 "보통 은퇴 후에는 갈 곳도 없고 친구관계도 끊어지므로 은퇴자끼리 모여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길거리 떡볶이 사업도 혼자서는 엄두를 내기 힘들지만, 은퇴자가 여럿 모이면 자본도 나눠서 마련하고 번갈아 휴식도 취할 수 있는 데다 외로움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민수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사무국장도 "협동조합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주식회사 등에 비해) 자본이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노인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은퇴 후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노인 단체(모임)가 많은데, 이 단체들이 봉사만 목적으로 하지 않고 소일거리를 발굴한다면 앞으로 노인 협동조합이 다양하게 갈래를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 국장은 기대했다. 그는 "현재 노인 꽃 배달이나 책 읽어주는 모임 등 노인 일자리 방안을 지자체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100세 시대' 활기찬 노년의 일자리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노인들 스스로의 적극적인 참여 자세도 요구된다. 유창목 부장은 "정년퇴직을 하고 연금을 받는 노인들은 생활하는 데 여유가 있어 일자리를 찾지 않고, 주로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원하다 보니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도 배치할 수 없게 된다"며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선 노년 인력의 다양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