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에서 선수 출신 감독들이 위기에 빠진 구단을 정상에 올려놓는 사례가 종종 있다. 피 말리는 승부가 벌어지는 '경기장'의 경험치가 훌륭한 지휘관을 이끌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대표적인 외화창출 시장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전히 침체 일로다. 때문에 '조선 빅3' 중 하나인 삼성중공업은 지난 3월15일 주주총회를 통해 '현장통'인 박대영 거제조선소장을 '총감독'(사장)의 자리에 올렸다. 침체 국면의 조선시장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앞서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2월5일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신임 사령탑에 박대영 사장을 선임한다고 발표하면서 '체질개선'을 거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사장은 조선·해양플랜트 전문가로 그동안 현장을 누비며 삼성중공업의 사업구조를 변화시킨 주인공이다. 

지난 2010년 12월 삼성중공업의 거제조선소장으로 부임한 후 그는 공법혁신을 통해 회사의 생산체제를 종전 선박 중심에서 해양설비와 특수선박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업종 전체가 장기침체를 겪던 터라 그의 성과는 더 빛났다. 

◆ 심해저·해상풍력에 '화력 집중'

주총을 통해 공식 데뷔한 박 사장은 앞선 2월 삼성중공업의 '체질개선'을 또한번 외쳤다. 기존 사업인 조선·해양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심해저 개발, 해상풍력, 기계전기 등의 신규사업에 기업의 화력을 쏟아 붓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

박 사장은 지난 2월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해상풍력은 자체 개발하고 심해저 개발과 기계전기는 인수합병(M&A) 및 합작을 통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해상풍력은 자체 기술을 개발해 2020년까지 삼성중공업 매출 증가의 핵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삼성중공업의 매출비중을 지난해 조선 36%, 해양 40%, 기계전기 24%에서 올해는 각각 20%, 50%, 30%로 조정했다.

신규사업에 대한 열의와 함께 박 사장은 수주 목표치에도 손을 댔다. 올해 수주를 지난해 실적(96억달러)보다 약 35% 증가한 130억달러로 정한 것. 고유가가 이어지고 심해 시추활동이 증가하면서 해양설비 관련 특수선 수요가 늘고 있는 것에 착안한 조치다.

이외에 박 사장은 삼성중공업을 해양플랜트 전문 엔지니어링회사로 키운다는 청사진 아래 삼성엔지니어링·영국 AMEC과 함께 미국 휴스턴에 설립한 해양 엔지니어링 합작회사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각 사업분야의 이 같은 가능성을 타진해 그는 현재 15조원 규모인 삼성중공업 매출을 오는 2020년 31조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른바 '비전 2020년'이다. 이에 근거한 올해 기대매출은 14조9000억원. 지난해 해양과 특수선 분야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공고히 한 만큼 조선업황 침체에도 여전히 'Go'를 외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 무더기 계약 해지, 돌파구 있을까

'매출 15조'를 주창하며 전진명령을 내린 박 사장이지만 시장현실은 그리 녹록한 편이 아니다. 당장 최근 들어 연이은 발주사의 계약취소 문제만 해도 갈 길 바쁜 그의 발목을 잡은 형국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3월19일 주식시장 종료 후 중동 선주사의 자금난 악화로 2007년 이스라엘 짐(ZIM)사가 발주한 1만2600TEU급 컨테이너선 8척 가운데 5척에 대한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해지된 금액은 9481억원으로 지난해 매출액의 7.1%에 해당한다. 당초 지난해 선박을 인도 받기로 계약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선박 인도 시점을 2015년으로 늦춘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계약 취소가 안된 나머지 3척의 선박 인도 역시 2016년 7월로 연기됐다.

악재는 이 뿐이 아니다. 삼성중공업은 이에 앞선 3월6일에도 2008년 영국 플렉스LNG로부터 수주한 2조6000억원대 규모의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LNG FPSO) 4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해지했다. 해지금액은 2조5925억원으로 연간 매출액의 19.4% 수준. 그동안 중도금 입금을 유예해주고 선종 변경 가능성 등에 대해서도 협의했지만 건조작업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 지난해 12월에도 회사는 아시아지역 선주로부터 FPSO 1척의 계약을 해지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 측은 발주취소에 따른 악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발주취소로 인한 피해보다는) 오히려 내실있는 신규 프로젝트 수주에 전념할 수 있게 돼 긍정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안 사태' 매조지도 해결과제

사업영역과 별개로 박 사장은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태'를 매듭져야 하는 임무도 갖고 있다. 지난 2007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중국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이 충돌해 대량의 기름이 유출된 후 피해주민들은 수년째 삼성 측에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서해안유류피해민전국총연합회 측만 해도 최근까지 서울 삼성동 서초사옥에서 피해주민 5000여명을 데려와 '삼성 투쟁 궐기대회'를 열어 삼성을 압박했다. 이들은 기름 유출사고 직후 삼성중공업이 '지역발전기금 100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가해자인 삼성에서 5000억을 보상해야 한다"며 추가 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삼성 측을 더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삼성중공업이 중국에서 허베이피릿호와 과실률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면서 1000만달러의 화해비용을 줬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태안유류피해특위 소속 박완주 의원(민주통합당)은 "삼성중공업 관계자들이 의원실을 방문해 중국과의 소송 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2심까지 소송비용으로만 700만달러(77억원)를 사용했다고 말했다"며 "3심까지 가게 되면 비용으로 1400만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중국과의 과실률을 5대 5로 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1000만달러를 화해비용으로 지급했음을 밝혔다"고 전했다.

'선수 출신' 감독의 첫해는 으레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위기와 기회를 동반한 2013년의 조선시장에서 박 사장의 '삼성중공업호'가 어떤 결과물로 업계를 호령할지 지켜볼 일이다. 
 
☞ 프로필
1953년생/서울고/연세대 기계공학과/삼성중공업 조선영업실 특수선영업팀장·해양생산부문장/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현)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