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뎅의 예술적 영감을 뒤흔든 까미유 끌로델. 살바도르 달리의 화폭에서 영원한 뮤즈로 각인된 갈라. 피카소, 르누아르 등 수많은 대가들의 캔버스에서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로 기억된 볼라르, 귀가 잘린 고흐의 초상을 남게 한 폴 고갱.
 
명작의 뒤에는 명작을 가능케 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이는 명작을 보는 깊이와 즐거움을 더욱 고조시킨다.
 
범인이 아닌 예술가로 태어난 숙명처럼, 감성의 온도가 유독 높았을 역사 속 화가들의 이야기는 때론 가슴을 우둔거리게 하는 감동을 전한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화폭 속의 사랑과 우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명작을 완성시키는 또 다른 이름, 컬렉션에도 이에 못지않은 흥미로운 스토리가 존재한다.
 
마치 필연적으로 만나야 할 인연인 것처럼 씨줄 날줄 엮인 명작의 컬렉션 행로는 작품에 의미 있는 스토리를 덧댄다. 화가의 몸에서 태어나 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먹고 자란 듯 자신의 컬렉터를 만나 역사의 먼지를 털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미술품 유통의 역사 속 컬렉션 에피소드는 화가의 열정만큼이나 특별하다.

◆역사 속 컬렉션 에피소드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는 쉽지 않은 행로를 거쳐야 했다. '세상의 기원'은 기존의 에로틱한 누드의 형식을 파괴하고 팔, 다리도 없는 여성의 몸통을 묘사한 과감한 구도의 작품으로, 그 제목인 '세상의 기원' 역시 묘한 메시지를 준다.
 
극단적인 성에 대한 집착, 혹은 '세상의 기원'이란 제목처럼 어머니의 몸에서 탄생하는 생명에 대한 찬사로도 짐작할 수 있는 이 작품은 17세기 프랑스 파리에서는 통념상 이해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처음 이 작품을 주문한 이는 부호 외교관이자 방탕아인 카릴 베이였지만, 발칙한 구도처럼 안전하게 보관되기 어려웠던 '세상의 기원'은 이후 여러 나라를 이동하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이후 '세상의 기원'은 자크 라캉의 소유가 됐는데, 작품의 안전을 우려한 라캉은 화가 앙드레 마송에게 덮게 그림을 부탁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의 온도를 앞서나갔던 작품을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컬렉터들의 혜안으로, '세상의 기원'은 130여년 만에 음지에서 나와 오르세미술관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영국 컬렉터 찰스 사치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가치의 세례를 내린 컬렉터로 평가할 수 있다. 데미한 허스트를 일약 스타로 부상하게 했던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뒤에는 이들의 존재성을 가능케 한 컬렉터 찰스 사치가 있었다.
 
그가 이슈를 몰고 다니던 미술계의 악동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소장한 일화는 유명하다. 연일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작품을 발표해 '베드걸', '사이코' 등의 별명을 가진 트레이시 에민은 자신의 지저분한 침대를 통째로 전시실로 옮겨놓으며 리얼리티와 예술의 경계를 교란시켰다.
 
작품으로 인식되기조차 어려웠던 이 오브제를 15만달러에 컬렉션하며 '예술'의 세례를 내린 컬렉터가 찰스 사치였다. 예술적 평가와 컬렉터의 역할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은 사치라는 이름과 뗄 수 없는 유명한 작품이 된 것만은 자명하다.

◆한국역사 최고의 컬렉터는
 
우리나라 역사 속에도 라캉이나 사치 못지않은 컬렉터들이 존재했다. 조선후기 최고의 엘리트, 이견이 없는 천재 추사 김정희는 당쟁에 휘말려 제주도의 질곡한 유배길에 오르게 됐다. 그의 주변을 둘러싸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제주도에 끝까지 오가며 추사와의 의리를 지킨 이가 역관 이상적이었다.
 
어려웠던 시기, 좋은 서적을 구해다 주고 추사의 그림을 중국에 알리기도 했던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선물한 그림 '세한도'는 문인화의 정수로 평가되며 추사 작품 중에서도 역작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세한도'는 이상적이 떠난 후 여러 사람을 거쳐 일본 경성대학 후지쓰카 교수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세한도'는 그렇게 일본에서 움직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서예가 소전 손재형은 한달음에 일본으로 건너가 '세한도'를 넘겨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단호하게 거절했던 후지쓰카였지만, 자신을 정성으로 간호하고 100일이 되도록 쉽게 의지를 꺾지 않는 손재형에 마음이 움직여 결국 '세한도'를 그에게 넘겼다. 이후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세한도'에 20여명의 학자들이 발문, 찬문을 붙여 작품과 컬렉터 손재형을 높였다.
 
또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컬렉터로 이견이 없는 이가 간송미술관을 남긴 전형필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신의 수탈을 보고만 있지 않았던 문화재 보호의 수장 전형필은 조선 최고의 갑부였다.
 
그는 유학시절,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후 본격적인 문화재 수집에 뛰어들게 되는데, 한번 사들인 문화재는 되팔지 않았으며 가치에 맞는 가격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거간이 전형필에게 '훈민정음'의 가격이 1000원이라고 말하자, 전형필은 1000원을 그에게 수고비로 지불하고, 물건 값으로 1만원을 내놓아 화상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국보 70호 '훈민정음'에 제값을 지불한 일화다.
 
전형필은 그렇게 가치 있는 문화재의 수탈을 막는데 앞장서며 나라가 할 일을 대신했다. 전형필이 세상을 떠날 무렵 그의 재산은 모두 컬렉션으로 소진됐지만, 오늘날 그가 남긴 문화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로 숨 쉬고 있다.
 
작가의 손에서 떠난 명작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작품의 예술적 온도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작품을 사랑했던 컬렉터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컬렉션은 명작의 또 다른 완성인지도 모른다. 
  
☞ 프로필
이애미·뉴욕·퀼른·워싱턴·런던·도쿄·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00여회의 전시를 가졌으며 2011년 청작미술상을 수상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한정판 라인 출시, 소녀시대 의상 콜라보레이션 등 갤러리의 문턱을 넘어 문화 전반에서 관객과 만났다. 주요 저서로는 <스물아홉 김지희, 그림처럼 사는>, <스물아홉 김지희, 삶처럼 그린>(2012)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