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문회에 모인 루비족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자신을 위한 소비를 당당히 즐기는 40~50대 여성소비자, '루비족'. 자녀 뒤치다꺼리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여가를 즐기며 생활하는 이들은 무분별한 소비가 아닌 현명한 소비를 추구한다. '나'를 위해 꼭 필요하다 싶은 상품이라면 구매에 망설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유통업체들이 주목하는 루비족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유통업체 마케팅보고서 속이 아닌 실생활 속에서 이들은 어떤 소비를 하고 있을까. 여고 동문회에 참석한 50대 여성들의 대화를 통해 '리얼'(real) 루비족의 모습을 엿봤다.

구매력이 강한 50대에게 인기가 많은 돌침대 GS홈쇼핑 판매방송(사진=머니투데이 DB)
◆경제권 쥔 그녀의 '당당한 소비'


지난 7월29일, 이른 아침부터 한무리의 50대 여성들이 대전의 한 휴양림에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열리는 여고 동문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것. 반가운 얼굴을 보자마자 그동안 쌓였던 회포를 수다로 한바탕 풀던 이들은 가정의 경제권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이렇게 입을 모은다. "우리 집 경제권? 나한테 있지."

교사, 공무원, 회사원, 사업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부터 전업주부까지 스스로를 가정 내에서 경제권을 쥐고 있는 '실세'라고 자부한다. 이들은 자신을 위한 소비에 적극적이다. 자식과 가족을 챙기는 일 만큼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을 중시하고 있는 것.

이들 가운데 중학교 교사인 이미숙씨(58·가명)가 얘기를 시작한다. "우리집 경제권은 나한테 있고, 쇼핑은 내 월급으로 자유롭게 한다"는 그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쓰는 돈이 월 30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본인이 사용할 골프용품을 구매했다.

자신의 월급이 가정의 주수익원이라는 초등학교 교사 박선희씨(57·가명)도 마찬가지다. 그는 "생활비나 저축은 거의 내 월급에서 충당한다"며 "올해 나한테 200만원 정도 썼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 부쩍 외모에 신경이 쓰인다는 박씨는 경락과 피부 마사지에 푹 빠졌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공무원 오영실씨(62)가 한마디 거든다. "올해 나를 위해 1000만원가량 썼다"는 것. 쇼핑은 주로 백화점에서 한다는 오씨. 온라인쇼핑몰을 주로 이용한다는 다른 동문들에 비해 지출규모가 큰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씨의 경우 백화점 쇼핑과 영화 관람을 즐긴다.

각종 건강기능식품이 루비족을 기다리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DB)
◆쇼핑 키워드 '건강·취미·휴식'


이들의 쇼핑 키워드는 건강·취미·휴식이다. 건강을 지키고 취미생활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제품과 서비스에는 과감히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휴식이 될 만한 제품과 활동에도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교사 박선희씨는 얼마 전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양파즙, 멀티비타민제, 오메가3 등 다양한 건강식품을 구매했다. 휴식을 위한 여행상품도 결제했다.

박씨는 "나이가 들수록 건강과 관련된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노화방지 제품이나 건강보조식품에 자꾸 눈길이 간다"며 "또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어서 여행상품도 많이 찾아보게 된다"고 전했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심리가 박씨의 손길을 지갑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악기 연주에 취미를 붙였다는 그는 최근 오픈마켓에서 클라리넷 하나를 샀다. "젊었을 때에는 직장일과 집안일, 애 키우는 일에 신경쓰느라 나에게 투자할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애들은 독립하고,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 여유가 생기니 취미활동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클라리넷을 구입한 사연을 늘어놓았다.

그런가하면 전업주부 김영혜씨(59·가명)는 올해 자신을 위해 등산화, 운동화, 수목원 입장권, 꽃박람회 입장권 등을 구입했다. 김씨는 "등산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전시를 관람하면 마음이 행복해진다"며 "그래서인지 이와 관련된 제품에 돈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종희씨(50·가명)는 거래처 선물용이 아닌,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정관장 홍삼제품을 구매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피로를 푸는 방법으로 건강보조식품 복용을 택한 것. 또한 이씨는 이전보다 여행상품을 자주 구매한다고. 두 아들 가운데 한명이 출가해 한결 여유로워진 생활을 만끽하기 위해 여행을 취미로 삼았다는 설명이다.

직장생활을 접고 주부로 전업한 이지연씨(58·가명)도 여행에서 즐거움을 찾는 케이스. 그는 올해 스스로에게 '쉼'을 선사하기 위해 하나투어 마닐라여행 패키지상품과 동유럽여행 패키지상품을 구매했다. 이씨의 경우 퇴직금으로 쇼핑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물쓰듯 쇼핑? 'No'…가격 비교 꼼꼼히


오랜 인생경험과 그동안 축적된 쇼핑 노하우를 가진 이들의 공통적인 소비습관은 돈을 물쓰듯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무분별한 소비는 자제한다는 얘기다.

이날 모인 10명의 50대 여성 동문들은 대부분이 지갑을 열기 전, 인터넷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 가격을 꼼꼼히 비교해본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 올해 거금 1000만원을 썼다는 공무원 오씨는 "갖고 싶다고 전부 다 사는 게 아니라 나에게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본다"며 "그렇게 한 뒤 여러 인터넷사이트에서 가격을 비교해보고 결제한다"고 강조했다.

교사 김지숙씨(56·가명)도 "품질대비 가격이 저렴한 홈쇼핑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며 "쇼핑은 포털 가격비교사이트와 개별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 가격을 확인해보고 결정하는 편"이라고 얘기했다.

건강과 취미, 휴식에 관심이 많은 40~50대 여성들. 낭비는 경계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제품·서비스에는 과감히 결제를 허하는 '우리 집' 실세 '루비족'. 그들은 이처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