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8일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 모인 시민단체들이 ‘제주영리병원 승인 원천 거부 및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재추진 반대’를 외치고 있다(사진=박성필 기자)

건강보다 돈…中관광특수 탈 쓴 '의료 뱀파이어' 논란
"외국인 상대 돈벌이 빌미, 의료 민영화 수순" 반발 거세


국내에 투자개방형 영리병원 도입이 논의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못 벗어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영리병원이 도입될 경우 국내 의료서비스 산업의 부가가치는 21조원, 고용 증대 효과도 21만명에 달한다. 이처럼 국내 경제 성장과 고용증대에 큰 이점이 되는 사업임에도 영리병원 도입이 10년 넘게 지지부진한 까닭은 무엇일까.

◆국내 첫 영리병원, 10년째 ‘탁상공론’

영리병원 도입이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통해서다. 침체된 내수시장 활성화 및 고용 증대를 위해선 외국인 투자가 필요한데 영리병원이 적합하다는 이유가 한몫 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내국인이 외국법인과 합작해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시행은 쉽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005년 인천 송도경제특구에 송도국제병원을 건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매번 무산되더니 최근 인천시가 송도국제병원의 비영리화를 추진키로 하면서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후에 지목된 곳이 제주도다. 제주 서귀포시에 설립하기로 했던 영리병원인 ‘싼얼병원’은 중국 텐진화업그룹의 한국법인인 ‘차이나템셀’(CSC)이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48개 병상)로 총 505억원을 투자해 2015년 개원할 예정이었다. 성형수술·피부미용·건강검진이 주 진료과목이다.

싼얼병원은 지난 2월 설립신청서를 제주도에 냈고 제주도는 보건복지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이후 복지부는 지난 8월16일 배포한 주간보도계획(18~24일)에 ‘국내 최초 투자개방형 외국의료기관인 싼얼병원 사업계획서 승인’이라는 내용을 포함시키면서 영리병원 승인이 거의 확정된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복지부는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승인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지난 8월21로 예정된 발표 시기를 일주일 연기하더니 하루 뒤인 22일 ‘승인 잠정 보류’ 결정을 내렸다. “제주도 승인을 요청한 싼얼병원 사업계획을 충분히 검토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복지부 측 답변이었다.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무성한 비난’

정부의 싼얼병원 설립 승인이 잠정 보류된 배경에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이들 시민단체는 영리병원 도입을 비롯한 의료민영화 시도 중단을 거세게 주장하고 있어 승인 여부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28일 서울 계동 복지부 앞에서는 여러 시민단체들이 모여 ‘제주영리병원 승인 원천 거부 및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재추진 반대’를 외쳤다. 수개월 전부터 시민단체들의 주장하고 있는 영리병원 설립 반대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피부, 미용 등으로 중국환자들을 현혹해 돈을 벌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인에 대해서도 의료관광이 아니라 적절한 필수 의료를 제공해 ‘국격’을 높이겠다는 ‘선진국’형 사고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들은 싼얼병원 승인으로 영리병원 도입을 본격화하려는 속내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논의조차 힘든 병원인 싼얼병원의 허가를 통해 영리병원 논의를 본격화하고 이 병원의 경영성과 등을 조작해 국내 도입까지 시도하려는 꼼수는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리병원이 의료비 폭등은 물론 의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한국 의료제도의 파탄을 불러올 것이라는 비판도 거침없이 내놨다. 이미 영리병원을 도입했던 미국조차 심각한 폐해로 고민하는데다가 그동안 수많은 논란을 통해 의료비 폭등과 건강보험 붕괴는 물론 건전한 병원까지 더욱 영리화시키는 ‘뱀파이어 효과’를 불러왔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지난 5월31일 의료호텔인 ‘메디텔’을 비롯해 보험업의 외국환자 유치알선 등을 허용하려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부분도 꼬집었다.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을 공약으로 삼았음에도 내국인에 대해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외국인에 대해 의료로 돈벌이나 하려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비꼬았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처럼 많은 비난이 일고 있음에도 복지부는 싼얼병원의 문제점을 보완 후 승인하기로 하고 보류 결정을 내렸다”며 “문제점을 보완한다고 영리병원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에 복지부는 승인을 보류할 것이 아니라 승인 요청을 원천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 정해선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김태훈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 채민석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부장 등이 ▲의료비 폭등 부를 싼얼병원 승인 원천 거부 ▲메디텔을 위시한 의료관광논리 철회 ▲경제논리가 아닌 국민건강 우선 등을 외치며 정부에 경고했다.

◆복지부, 두가지 인정 후 ‘보류 결정’

시민단체들이 지적한 사항 중 복지부는 현재 두가지를 거론하며 싼얼병원 승인을 보류한 상태다. 우선 싼얼병원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불법 줄기세포 시술을 할 경우 이를 관리·감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성형수술에 필요한 응급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도 함께 인정했다.

복지부는 “싼얼병원은 48개 병상의 소형병원이라 다른 종합병원과 연계가 필수적인데 지난 7월 말 제주 한라병원과의 진료협력 양해각서(MOU)를 파기하면서 보완이 필요해졌다”며 “향후 전문가 자문회의와 의련 수렴 등을 거쳐 실효성 있는 보완책이 마련됐는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제주도는 이번 영리병원 승인 보류 결정이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초 복지부가 영리병원 설립 승인 공지를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결정을 번복해서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도는 지역이 좁아 줄기세포 시술 등 불법행위를 하면 금방 소문이 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모니터링에도 문제가 없다”며 “싼얼병원은 양악수술 등 뼈를 깎는 위험한 수술은 하지 않고 이런 환자는 큰 병원으로 보내진다”고 반박했다.

싼얼병원 투자사인 차이나템셀 관계자도 “복지부에서 승인 보류 이유로 든 점은 수차례 보완했다”며 “싼얼병원은 한국인도 진료할 수 있지만 주 대상은 중국 부유층”이라고 응수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