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등 비리 고위층 척결 ‘집도’…부패 개혁 성공 주목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가 지난달 22일 1심 선고를 받았다. 중국 지난(濟南)중급인민법원은 뇌물수수, 공금횡령, 직권남용 범죄가 인정된다며 무기징역과 정치권리 종신박탈, 개인재산 몰수형을 선고했다. 이로써 지난해 2월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으로 도피해 정치 망명을 신청하면서 시작된 보시라이 스캔들이 1년 반만에 일단락됐다.

이 사건은 중국에서 1971년 린뱌오(林彪) 사건(당시 중국 내 2인자이던 린뱌오가 마오쩌둥을 상대로 한 쿠데타가 실패하자 비행기로 탈출하던 중 추락사한 사건) 이후 최대의 정치 스캔들로 불린다. 표면적으로는 보시라이, 구카이라이(谷開來) 부부의 부패와 치정극에 불과한 이 사건이 이처럼 평가받는 것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중국 지도자들의 부정부패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뇌물수수와 재산 해외은닉, 여배우 성상납, 더 나아가 독살, 은폐 등 1949년 국민당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던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권력남용이 얼마만큼 심각한지,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이 때문에 이 사건으로 중국 공산당이 입은 타격은 1989년 톈안먼 사태에 버금갈 만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붉은 황태자 보시라이, 교도소서 생 마감하나

무기징역에 정치 권리까지 종신박탈 당해 정치인생이 사실상 끝난 보시라이는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지도자다. 공산당 8대 원로 보이보(薄一波) 부총리의 아들로 한때 태자당(당·정·군·재계 고위층 인사 자녀들)의 리더이자 '붉은 황태자'로 불리기도 했다.

보시라이는 특히 2007년 3000만 인구의 충칭시 당서기로 부임하면서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하는 이른바 '충칭 모델'을 제시해 신좌파의 핵심인물로 떠올랐다. 폭력조직 소탕, 대규모 임대주택 보급 등 친서민 정책은 빈부격차 확대와 부정부패 심화라는 개혁개방 부작용에 시달리던 상당수 중국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좌파세력의 대표로 중국 공산당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까지 노리던 보시라이의 실체는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법원은 보시라이가 쉬밍(徐明) 다롄스더그룹 회장 등으로부터 프랑스 별장 구입과 아들 유학자금 명목으로 2044만위안(약 36억8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500만위안(9억원)의 공금을 횡령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 발표는 축소된 것이며 실제로 보시라이 일가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은 80억위안(1조4400억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충칭시 서기 재직시절 월급이 1만위안(180만원)에 불과했던 보시라이가 막대한 부를 모은 것은 기업인들과 이권거래를 하면서 뇌물을 챙겼기 때문이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쉬밍이 대표적 '돈줄'인데, 보시라이의 다롄시장(1993∼2001년) 재직시절 그의 비호로 관급공사를 잇달아 수주하면서 거부로 성장했다.
 
◆부패 민낯 드러난 중국 지도층

중국 고위층 비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섹스 스캔들도 드러났다. 보시라이는 재판 과정에서 "아내는 내가 외도하는 것을 알고 분노해 영국으로 떠났다"며 불륜 사실을 인정했다. 이와 관련, 쉬밍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여배우를 10여차례 보시라이에게 보내 '성접대'를 했고, 그 대가로 한차례에 최고 18억원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성상납 의혹의 대상자로 지목된 중국 여배우 장쯔이가 언론매체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중국 지도층 부패는 보시라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최근 기소된 '중국 고속철도 총설계사' 장수광(張曙光) 전 철도부 운수국장은 고속철 건설과 관련, 4755만위안(86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150만달러(16억원)의 저택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LA에는 중국 고관들의 '탐관촌'이나 '정부(情婦)촌'이 있다는 소문까지 있다.

이에 앞서 류즈쥔(劉志軍) 전 철도부장(장관급)도 고속철 이권 제공으로 6460만위안(116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사형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고속철 사업이 철로방(철도 인맥)의 뇌물수수 창구로 활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고위층 비리가 언론을 통해 속속들이 공개되는 것은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로 시진핑 체제 출범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11월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돼 중국의 1인자 자리에 오른 시진핑은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분명히 하며 "호랑이부터 파리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패를 척결하라"고 지시했다. '파리'는 하급 비리 공무원, '호랑이'는 중앙 정계의 거물급 부패 인사를 일컫는 비유다.
 
◆시진핑 '호랑이' 때려잡을 수 있을까

시진핑의 취임 일성은 단순한 엄포에 그치지 않고 강도 높게 추진되고 있다. 중국 관료들의 저승사자로 평가받는 공산당 최고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천리안'에 걸려든 장·차관급 인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사라지고 있다. 보시라이를 때려잡은 시 주석의 다음 사냥감은 진정한 호랑이로 평가받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법위원회 서기 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알려졌다.

그는 후진타오 전 주석 시절 중국 수뇌부를 구성했던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한명인데 중국 공안과 무장경찰, 검찰, 사법부를 지휘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정계 입문 전 30여년을 석유업계에서 활동, 석유방(석유업계 고관 출신의 정치세력) 대부이기도 한 저우는 러시아, 남미 유전 투자 등을 통해 1000억위안(18조원)의 자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부패의 상징적 존재로 떠올랐다.

최근 중국 사정당국은 저우의 아들 저우빈(周斌)을 해외에서 붙잡아 베이징으로 압송, 가택연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저우융캉에 대한 조사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정치국 상무위원 출신은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고위층 사정에 성역이 없다는 현 지도부의 선명성을 과시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시 주석을 중심으로 한 5세대 지도부가 부패 척결에 집착하는 것은 국민의 불만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빈부격차, 부정부패, 환경오염 등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연소득이 2300위안(41만원) 미만인 빈곤층이 1억2000만명에 달하고, 사회의 불평등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말 0.47로 사회적 불안이 초래된다는 0.4를 넘은지 오래다.

게다가 금융위기 이후 고속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매년 10만건 이상의 집단시위가 발생하는 등 사회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부정부패 척결 등 개혁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중국을 진정한 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부패한 고위관료와 국영기업 간부 등 기득권층을 털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 역시 태자당 출신인 시 주석이 자신의 세력기반을 위협하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