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들이 블랙컨슈머(악성고객)의 잇단 등장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발생한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미끼로 블랙컨슈머의 활동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블랙컨슈머란 블랙(black)과 소비자란 뜻의 컨슈머(consumer)를 합친 신조어로 금융사에서 정상적으로 업무처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대부분 정신적 피해를 봤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노리는 수법을 이용한다. 본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정신적으로 피해를 봤다며 보상금을 노리는가 하면, 콜센터 직원의 말실수를 트집 잡아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각 금융사들은 이들에 대해 '특별관리'에 나섰지만 아직 뾰족한 해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가 금융소비자보호 강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사가 블랙컨슈머에 섣불리 대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블랙컨슈머의 민원을 막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결국 선량한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이들의 악성 민원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감사부는 나의 편… 민원제기하면 보상 'OK'

며칠 전 A카드사의 콜센터 직원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고객이 은행에 의해 신용정보가 노출돼 불법 스팸 문자를 받고 있다며 정신적 위로금을 지급하라는 민원을 제기한 것. A은행 상담원은 "우리 은행은 신용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안내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해당은행은 소액의 사례금을 주고 그 고객과 합의했다.

B은행 고객관리부서장은 블랙컨슈머의 민원 제기로 진땀을 뺐다. 지난달 정기예금이 만기돼 원금과 이자를 수령한 한 고객이 "왜 세금을 떼 가냐"며 보상을 요구한 것. 이 고객은 가입 전 세금에 대한 부분을 안내받지 못했다며 은행 창구직원에게 문제 제기를 했다. B은행 부장은 "예금이자에 대한 세금은 은행이 아닌 정부가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보상이 힘들다"고 설명했지만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금융감독원과 감사원, 은행 소비자보호부서에 반복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결국 은행에서 소정의 사은품을 주고서야 민원이 해결됐다.

황당한 민원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B은행의 또 다른 고객은 정기예금 만기 후 해지하지 않고 시일이 경과되자 시일 경과분만큼 이자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개인정보 유출로 여론의 몰매를 맞은 카드사들 역시 블랙컨슈머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모바일 게임회사에서 중복결제 문자가 왔다"며 피해를 제기하는 집단 민원에 시달린 것.
하지만 검찰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에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이 유출된 적이 없어 부정사용 사례가 없었다는 것. 결국 애꿎은 카드사들의 신뢰도만 떨어진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블랙컨슈머들은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해 콜센터 직원이 업무를 보지 못하게 하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블랙컨슈머에 대응 못하는 금융권

금융사들은 이처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블랙컨슈머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잦은 민원이 외부에 새나갈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아무리 악성민원이라고 해도 사례가 많아지면 기업이미지가 하락할 우려가 있어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터지면서 악성민원도 급격히 늘어났지만 이를 외부에 알릴 수는 없다"며 "무엇보다 금융감독당국이 민원을 최소화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가급적 내부적으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블랙컨슈머가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특히 점점 지능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에 이에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물론 악성민원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내부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해답 없다…새 이슈에 밀리는 대응책

블랙컨슈머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은 정말 없는 걸까. 시중은행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은행연합회에 해답을 물어봤다. 하지만 아쉽게도 들려온 답변은 '없다'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부의 금융소비자보호 강화정책과 더불어 시중은행 간 협조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은행연합회는 지난해 6월 블랙컨슈머에 대한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합회는 당시 민원담당 부장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악성민원 고객에 대해 당당하게 맞설 태세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당시 논의된 블랙컨슈머 공동 대응 TF팀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담당자가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겨 협의가 되지 않는다는 게 은행연합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블랙컨슈머에 대응하는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손경애 은행연합회 민원상담실장은 "정부가 금융소비자보호를 강화하고 있는 데다 최근 좋지 않은 이슈가 터지면서 블랙컨슈머 대응방안 매뉴얼은 논의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지난해만 해도 올해 초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협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손 실장은 이어 "매월 셋째주 수요일에 정례회의가 있는데 3월쯤에는 관련 안건을 올려볼 생각"이라면서 "하지만 다른 주요 사안이 터진다면 역시 4월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매뉴얼은 연합회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업계 실무진과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