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주 전산시스템을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UNIX)체제로 전환하는 것에 반대한다. 전산시스템을 유닉스로 대체할 경우 전산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전산시스템 교체 재검토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해줄 것을 요청한다." (정병기 KB국민은행 상임감사)

"국민은행 주 전산시스템 교체는 지난해 11월 국민은행 이사회에서 통과된 안건으로 재검토는 불가능하다. 현재 다수의 시중은행들이 유닉스체제로 전환하는 추세다. 이미 도입한 은행들 역시 아무 문제없이 가동 중이다. 보안성 부분도 이미 테스트가 완료한 상태여서 문제될 것이 없다." (KB국민은행 사외이사)

지난 5월19일. KB국민은행 이사회에서 오간 대화내용이다. KB금융 및 국민은행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국민은행 사외이사,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 등이 편을 나눠 적잖은 언쟁이 오갔다.

처음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정 감사였다. 정 감사는 국민은행 주 전산시스템의 유닉스체제 전환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이사회에 공식 건의했다. 하지만 임영록 회장과 국민은행 사외이사 6명은 이미 끝난 문제를 왜 거론하느냐며 일축했고 이에 이건호 행장이 다시 정 감사의 편을 들면서 논란의 불을 지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이사회를 통해 IBM 메인프레임 기반의 주 전산시스템을 유닉스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교체 비용은 2000억원대다.

양측의 불협화음은 이사회가 끝난 직후 더욱 본격화됐다. 정 감사가 자신의 건의가 묵살되자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금감원에 특별검사를 요구한 것.

금감원은 다음 날인 지난 5월20일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KB국민카드까지 전방위 조사를 단행했다. 국민은행 감사가 금감원에 직접 특검을 요청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KB금융지주 /사진=류승희 기자
◆ KB금융 볼썽사나운 집안 싸움… 왜?

이건호 행장 측이 유닉스체제 전환을 반대하는 이유는 보안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이번 전산시스템 교체는 빅뱅 리호스팅 방식이다. 빅뱅이란 금융기업이 평균 2~3년에 걸쳐 기존 전산시스템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 중 세부전환방식은 빅뱅 리엔지니어링과 빅뱅 리호스팅 두가지로 나뉜다. 빅뱅 리엔지니어링은 빅뱅처럼 말 그대로 전산시스템을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바꾸는 차세대 전산시스템이고 리호스팅은 기존의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는 그대로 이용하면서 하드웨어만 IBM의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 서버로 교체하는 기술을 뜻한다.

국민은행 측은 "빅뱅 리호스팅시스템으로 테스트를 한 결과 서버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다"면서 "고객 대출금리가 잘못 산출되거나 일부 전산시스템이 누락되는 등 전산 에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서버를 바꾸는 빅뱅 리엔지니어링으로 추진한다면 이런 리스크는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리호스팅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문제가 된 것 같다"면서 "(이건호 행장 측이) 이러한 결함을 국민은행 이사회에 보고했는데 (이사회에서) 이를 묵살했다"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금감원 특검 신청에 대해 "지금 (유닉스체제 전환 안건이)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추후 금융감독당국에 보고서가 올라가면 문제 제기될 만한 부분이 발견돼 감독당국에 보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KB금융은 유닉스로 전환할 경우 비용절감과 인력의 효율적 관리가 가능하다고 맞받아쳤다. 또 안전성부문은 이미 내부검증을 끝냈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사회에서 통과됐다는 것이 KB금융 측의 입장이다.


KB금융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민은행이 IBM 메인프레임 사용료로 매달 지급하는 비용은 250억원 수준. 그런데 유닉스체제로 전환하면 매달 100억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임영록 회장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서 충분히 논의가 됐을 텐데 그 결과를 외부기관(금감원)에 의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이라며 "이사회에서 의결이 나면 그에 대해 존중해야 하고 은행을 책임지는 집행기구의 최고책임자인 CEO는 이사회 결정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다만 최근 불거진 이 행장과의 불협화음에 대해서는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임 회장은 "(전산시스템 교체는) 은행과 이사회 간의 문제"라며 "회장과 행장 간의 문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 우선협상 탈락한 기업의 적잖은 '파급력'

금융업계에서는 KB금융의 집안싸움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핵심은 국민은행이 IBM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와 왜 지금 시점에 문제제기를 하는지 여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건의 발단은 이메일 한통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병기 감사가 지난 4월14일 전산시스템 변경을 위한 우선협상에서 탈락한 IBM코리아 대표로부터 전자시스템 신규 입찰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이후 곧바로 감사에 착수, 전산시스템 도입 재검토 요청을 하게 된 것이다.

김재열 KB금융 CIO는 "시스템 변경과정에서 우선협상에 탈락했던 업체 대표의 사적 이메일을 받은 은행 경영진이 공식절차 없이 관련 메일내용을 근거로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 이번 해프닝의 시발점"이라며 "상임감사가 은행 경영협의회를 거쳐 은행·카드 이사회에서 결의된 사항에 대해 자의적인 감사권을 남용해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특히 일각에서는 유닉스시스템으로 변경하기 위한 공급업체 공개경쟁 입찰을 단 하루 남기고 금감원에 특검을 요청하면서 정 감사와 IBM코리아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IBM 측과)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정확히 표현하면 주 전산시스템 전환은 금융지주가 아닌 은행의 권한이다. 치명적인 에러가 발생해 재검토를 요구한 것은 은행장과 은행 감사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일축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