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희생해야 했던 사람은 언제나 ‘누나’였다. 집안의 희망인 남동생을 위해 학업을 포기했던 누나, 젖먹이 동생을 등에 업고 집안일을 하던 누나… 첫 딸이 살림밑천이란 말은 누나에게 결코 반가운 말이 아니었다. ‘누나의 길’에는 그 시절 우리 ‘누나’들의 이야기가 있다. 

누나의 길

◆누나의 길과 신발박물관

부산을 대표한 근대산업 중 하나는 신발이었다. 특히 부산 동구는 고무산업이 발전하기 좋은 천혜의 입지였다. 고무의 원료인 생고무가 들어오는 항구가 바로 앞에 있고 근처에 좌자천, 동천 등이 있어 고무 생산품을 식히는데 필요한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1923년 일영고무를 시작으로 1926년 도변고무, 1930년 대화고무 등이 동구에 세워졌다. 1934년 일본계 삼화고무(삼화호모)도 범일동에 들어섰다. 

때마침 신발에도 변화가 있었다. 근대화가 일어났던 이 시기에 사람들은 짚신을 고무신으로 바꿔 신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엔 수요가 급증했다. 고무공장이 많았던 동구 지역에 고무신공장이 생겨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범일동 골목 시장 끝에 ‘누나의 길’이 있다. 고무공장 전성기를 이끈 곳이다. 지금은 모퉁이 대폿집이 인상적인 좁은 골목길일 뿐이지만 이때는 출퇴근시간에 몸이 부딪힐 정도로 많은 사람이 왕래했다고 한다. 골목에는 그 시절 ‘누나’의 사연이 담긴 액자가 걸려 여행자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이 길에서 여공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반장님 시다 자리 하나 내 주이소.” 
“우리 그때는 예뻤지예.” 

공장에서는 주로 여성들이 근무했다. ‘공순이’라 불리던 그 시대의 ‘누나들’이었다. 좁은 골목길은 공장 직원들이 애용하던 지름길이다. 전성기 때는 대규모 공장이었던 삼화고무의 종업원 수가 1만여명이었다고 한다. 공장이 밀집된 범일동 골목까지 셔틀버스가 다녔고 그녀들의 출퇴근길에는 발소리가 굉장했다고 한다. 

물론 집도 많이 들어섰다. 공장 아가씨들은 방 하나를 얻어 여럿이 생활했다. 알뜰살뜰 돈을 모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촌에서 온 ‘누나’들이었기 때문이다. 집은 대부분 무허가 판잣집이었고, 태풍이 불면 날아가기 일쑤였지만 그나마도 비는 방이 없었다고 한다.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매캐한 고무 냄새와 함께 엄청난 유해물질이 작은 공감을 메웠을 것이다. 여기에 무례한 관리자의 욕설도 흔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월급 받는 직장은 인기 있는 일자리였다. 그때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에 만족하며 허드렛일을 하던 남의 집 더부살이가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휴일은 한달에 두번, 밀린 집안일을 하려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겠지만 멋을 내고 영화를 보러 나갔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야학을 다니는 늦깎이 여학생들도 있었다. 청춘의 에너지는 힘들던 시간에도 추억을 만드는 묘수를 선사했다. 

골목에는 신발박물관이 있다. 작은 전시관에는 소박하게 그 시절 이야기와 이 골목이 탄생시킨 히트 상품들이 전시됐다. 

고무신 제조공장들은 저마다 브랜드를 출시했다. 1950년대에는 후발주자였던 왕자표고무신이 인기를 끌어 중간상인들의 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웃 동네인 초량동에서는 동양고무가 기차표고무신을, 진구의 태화고무는 말표고무신을 출시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운동화 시대가 열렸고 삼화고무의 범표운동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포스터를 보니 지금 유행하는 스니커즈 스타일로 다시 내놔도 손색이 없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신발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호황을 누리긴 했지만 이미 업계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점차 값싼 노동력을 가진 중국과 동남아로 신발공장이 이전했고 한국 공장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누나의 길 끝에는 1980년 화재로 사라진 삼일고무의 옛 터가 있어 이 골목의 흥망성쇠를 말해준다.

신발박물관
보림극장

◆춤과 노래, 낭만이 흐르던 극장

범일역에서 범일동시장으로 가는 길에는 철길 위 구름다리가 있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과 유오성이 뜀박질하던 육교다. 이 다리를 건너면 지금은 사라진 삼일극장 자리로 이어진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서면 건너편에 보림극장이 보인다. 지금 건물은 다른 용도로 쓰이지만 하춘화, 나훈아, 남진 리사이틀 포스터를 그대로 간직해 순식간에 시간을 1970년대로 되돌린다. 

부산 동구는 영화와 뗄 수 없는 곳이다. 동구에 극장이 18개나 있었고 여러 영화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범일동에는 삼성, 삼일, 보림극장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이웃해 있었고 극장 뒤로 고무공장이 밀집돼 그 시절 ‘공순이’들 중 여기 한번 와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극장은 지친 생활인에게 고마운 오락거리였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 다양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극장 하나에 상영관도 하나였다. 바꿔 말하면 규모에 있어서는 그 시절 극장이 더 크고 웅장했다. 1·2·3층을 한 관으로 쓰고 스크린 또한 대형이었으니 오히려 영화 보는 맛은 옛날 극장이 제대로였다. 필름이 긁혀서 죽죽 비가 내리던 스크린, 목소리와 그림이 잘 맞지 않던 장면, 쉬는 시간에 오징어를 팔던 행상, 어른 분장(?)을 하고 몰래 들어왔던 고등학생들, 시험 후 단체관람… 모두가 극장의 추억이다. 

극장이 하나둘씩 문 닫은 것은 고무공장의 성쇠와 관계가 깊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공장들이 하나씩 문을 닫자 인구가 빠져나갔고 TV가 대중화되면서 극장 손님도 줄어들었다. 세 극장 모두 재개봉관으로 범일동 사람들과 애환을 나누다 이제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보림극장은 처음에 영화극장으로 문을 열었다가 무대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영화 배급에 문제가 있어 궁여지책으로 기능을 바꾼 것인데 그것이 신의 한 수였다. 지금도 남아있는 포스터처럼 남진, 나훈아 등 톱스타들의 공연으로 전성기를 누렸고, 1980년 조용필 쇼를 끝으로 다시 영화극장으로 돌아온다. 현재는 폐관돼 전면의 간판과 뒷편의 영화이야기 담장으로 옛 시절을 추억한다. 

삼일극장은 폐관 직전 영화 <삼거리 극장>을 촬영했다. 곧 철거될 극장을 위로하듯 혼령들이 나와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내용의 컬트영화로 극장으로서는 행복한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삼성극장은 199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오다 2003년 영화 <친구>의 촬영지로 주목받았고 지난 2011년 철거됐다. 

이제는 누나도 극장도 사라졌다. 조그만 흔적들만 남아 옛 골목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들을 귀 있는 자들만 들을 수 있는 속삭임이다. 누구에게는 ‘누나’들의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실망할 건 없다. 여전히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시장 사람들의 소리가 있으니 말이다. 

“누부야 온나, 수지비 한 양재기 묵구 가라~” 

구름다리 <친구> 촬영지

[여행 정보]

[대중교통으로 여행지 가는 법] 
범일동 보림극장, 신발박물관: 범일역 – 현대백화점 – 친구의거리(구름다리) – 보림극장 – 범일 골목시장 – 누나의 길 – 신발박물관 순으로 도보 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보림극장: 검색어 ‘보림극장’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537 
신발박물관: 차량이동 불가, 범일동 골목시장에서 도보이동 / 부산광역시 동구 범곡북로 16-1 
누나의 길: 부산광역시 동구 범곡북로 14번길 

이바구길
문의: 051-467-0289
http://www.2bagu.co.kr

음식
할매국밥: 1956년 범천동 삼화고무 담벼락에서 국밥 장사를 시작해 1970년 범일동 현재 위치로 가게를 옮겼다. 삼화고무 직원, 근처에 있던 시내버스 운전자, 보림극장 관람자 등 50년이 넘은 단골 손님이 많다.  
순대 1만원 / 따로국밥 6000원 / 순대국밥 5000원 
051-646-6295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533번길 4 

숙소
까꼬막: 산복도로마을기업에서 운영하는 숙소로 동구 이바구길 여행자에게 좋은 숙소이다. 산복도로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고, 할인행사도 자주 진행한다. ‘까꼬막’은 산비탈을 의미하는 사투리이다. 
예약문의: 070-7333-9195 /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596번길 18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