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의 전성시대다. 시내 곳곳에 자리한 대형서점들은 넓은 공간과 수많은 책을 앞세워 시민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최근에는 책뿐만 아니라 각종 전자제품부터 캐릭터 상품, 푸드코트가 어우러져 서점이라기보다는 도심의 대형쇼핑몰 같은 느낌이다. 


이에 반해 동네서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는 곳이 부지기수다. 살아남은 곳 대부분은 학교 앞에서 각종 참고서로 근근이 유지하는 정도다. 대형서점의 확장과 온라인서점의 공격적인 가격 마케팅에 동네서점이 설 자리는 점차 사라지는 실정이다. 지난해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표한 ‘2016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국내 서점 수는 3429개에서 2116개로 38.3%(1313개) 감소했다.

그럼에도 야생초처럼 동네책방이 하나둘 문을 여는 점은 긍정적이다. 의욕적인 동네서점의 ‘주인’들은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동네, 나아가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문화 사랑방'을 꿈꾼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시집전문 작은서점 ‘청색종이’. /사진=박흥순 기자

◆ 시집전문 작은서점 '청색종이'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 인근 시집전문 작은서점 청색종이를 찾았다. 기름냄새와 쇠냄새 섞인 모퉁이를 돌아서자 오래된 책의 향기가 파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차 한대도 오갈 수 없는 좁다란 골목어귀의 파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고 아담한 마당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청색종이의 정기휴일인 월요일이었다. 그럼에도 청색종이의 대표 김태형 시인은 불쑥 찾아온 ‘불청객’을 따뜻하게 안으로 맞았다. 내부는 건물 외부보다 더 작고 아담했다. 응접실 하나, 김 시인의 작업실 하나, 그리고 쉴 수 있는 작은 다락방 하나가 전부다. 마당을 지나 응접실에 이르자 마음이 절로 편해졌다.


지난해 1월 문을 연 청색종이는 김 시인이 출판사를 겸해 운영하는 곳이다. 소장가치가 있는 오래된 시집과 절판된 유명 시집은 물론 인문서적, 신간시집 등을 고루 갖췄다. 이곳의 시집은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힘든 책이다. 구경하는 재미는 물론 시의 해석을 시인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색다른 문학공간이다.

오래된 서적을 판매하는 이유에 대해 김 시인은 “어떤 문학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시는 자신만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문학”이라며 “단순히 트렌드에 치우치는 것보다 오래된 시집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색종이는 출판사와 책방 외에 문학의 ‘샘터’ 역할도 한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문학강좌와 시 낭송회 등을 열어 문인과 일반인이 교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를 읽고 좋은 시를 가려냈으면 좋겠다”면서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큼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웃음 지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그림책방 ‘노란우산’. /사진=박흥순 기자

◆ 커피 파는 그림책방 '노란우산'

청색종이를 나와 마포구 상수동 당인리사거리 인근의 그림책방 노란우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청색종이와 달리 대로변에 위치한 노란우산은 백색톤의 모던한 외관이 눈길을 끌었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림책은 0세에서 100세까지’라는 슬로건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오는 평일 오후라 책방을 찾은 사람은 별로 없어 차분한 분위기 속에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이리저리 매장을 둘러보다가 샘플로 전시된 한권의 책을 열자 평면의 책 안에서 고래가 튀어나왔다. 우거진 나무들도 입체적으로 표현됐다. 어린아이보다 어른의 구미를 당길 만한 책이 더 많이 진열돼 있었다.


문득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타 서점의 그림책은 밀봉돼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데 반해 노란우산에 전시된 그림책은 샘플 서적이 1부씩 개봉돼 있었다.

최재경 노란우산 매니저는 “미리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그래도 사실 분들은 다 산다”고 말했다.

노란우산은 그림책 전문 출판사인 보림출판사가 설립·운영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노란우산 곳곳에는 보림출판사가 출간한 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자사 책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최 매니저는 “작은 출판사가 대형서점에 책을 진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그런 문턱을 없애는 것도 노란우산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노란우산은 계산대가 위치한 1층, 가장 많은 책이 진열된 2층과 갤러리로 활용되는 3층 등 총 3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독특한 점은 그림전문 책방답게 한가지 색을 테마로 책을 진열한다는 점이다. 마침 이날은 하얀색이 주제여서 2층 중앙에는 온통 흰색 표지의 책이 진열돼 있었다. 이 같은 진열방식은 권종택 보림출판사 대표의 생각이라고.

한 직원은 “가장 좋은 공간에 테이블을 두지 않고 책을 진열한 이유는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권 대표의 배려”라며 “요즘 주말이면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책방이 꽉 들어차 정신없지만 한편으로는 내일처럼 기분이 좋다”고 즐거운 마음을 표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0호(2017년 8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