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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파산으로 화주의 신뢰를 잃은 한국 해운업체들이 한정된 노선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렸다. 해운강국의 위상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 해운업을 살린다는 정부의 지원책도 현장에선 별무소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해운사들이 뭉쳤다. 각자도생으로는 도무지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8일 출범한 한국해운연합(KSP)은 순항할 수 있을까.
◆살기 위해 뭉친 해운사들 “출혈경쟁 막자”
제1의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한 이후 우리나라 해운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M상선과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합종연횡으로 몸집을 더 키운 대형선사들과의 경쟁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예전만 못하다.
국적 근해선사들 역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선사’라는 꼬리표 때문에 화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가운데 아시아 역내 노선의 수급불균형이 심화돼서다. 아시아 주요 국가의 성장 둔화로 화물수요가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글로벌 선사들이 대형선박을 아시아 역내에서 운항하며 공급에 비해 수요가 현저히 부족한 상태가 이어지는 것.
공급과잉이 누적되면서 운임은 뚝 떨어졌다. 지난해 한국-동남아항로 운임은 2013년 대비 약 40% 하락했다. 우리나라 주요 근해선사들의 지난해 영업이익도 2015년 대비 57%나 줄어들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부족한 항만 물동량을 근해선사가 근근이 채우는 현실인데 이마저도 더 힘들어지면 우리나라 물류 생태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KSP는 이런 위기감 속에 출범했다. 글로벌 해운업체들이 결성한 해운동맹(Alliance)처럼 국내 선사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목표다. KSP에 참여한 컨테이너선사는 14개로 한일·한중·동남아항로 협의체에 가입한 컨테이너 선사가 모두 참여했다.
회원사는 고려해운, 남성해운, 동영해운, 동진상선, 두우해운, 범주해운, SM상선, 장금상선, 천경해운, 태영상선, 팬오션, 한성라인, 현대상선, 흥아해운 등이다. 앞서 현대상선과 장금상선, 흥아해운이 HMM+K2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협력체를 결성한 적은 있지만 국적 컨테이너 선사 전체가 참여하는 협의체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SP에 참여한 14개 선사의 선복량을 합치면 78만7000TEU, 보유 선박 수는 250척에 달한다. 한진해운의 선복량이 60만TEU였던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시장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갖춘 셈이다.
참여 선사들은 공급과잉 항로를 축소해 출혈경쟁을 해소하고 근본적인 해운업 불황 극복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KSP의 우선 추진과제는 항로 합리화와 선복 교환 확대다. 이와 함께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정부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으로는 신규항로 개설과 해외 터미널 인수 등 신성장동력 확보에도 나설 계획이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은 "모든 정기 컨테이너 선사가 참여하는 협의체 결성은 한국 해운 역사상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상징성이 있다"며 "한국해운연합이 국적 선사들의 장기적인 성장동력이 되도록 세부 운영규정 등을 차질없이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해관계 조율·정부지원 관건
하지만 KSP를 바라보는 해운업계의 시선은 우려가 섞여있다. 본격적인 항해에 나서기까지 많은 난관이 예상돼서다.
KSP가 가장 먼저 맞닥뜨릴 암초는 ‘선사간 이해관계 조율’이다. KSP는 연내 운영규정과 구조조정 대상항로를 확정한 뒤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공급과잉 항로를 줄여 출혈경쟁을 해소한다는 목적에 공감하지만 세부사항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는 이해관계가 갈릴 수밖에 없다.
일례로 현재 국내선사들의 출혈경쟁이 가장 심한 인도네시아, 베트남(하이퐁), 태국 등의 노선 통폐합을 진행할 경우 전체 노선수가 대폭 줄어 규모가 큰 회사만 노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각기 규모가 다른 선사를 모두 만족시키는 노선개편은 불가능하다”며 “협의 과정에서 몇몇 해운사가 중도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자칫 KSP가 일부 업체를 위한 연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선사간 이해관계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도 “국내 업체간 무리한 운임경쟁을 피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특히 대만·일본·중국 등의 선사들이 정부의 지원으로 몸집을 키우는 상황에서 선사들의 연합만으로는 글로벌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해운업계는 문재인정부가 공약 대로 해운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기대한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한국해운연합 결성은 선사의 자발적인 산업재건 노력, 국적 선사간 상생조성 시도, 미래 먹거리의 공동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글로벌 해양강국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정부도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1호(2017년 8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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