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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인간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영위하게 됐지만 그만큼 삶의 여유를 잃었다. 부를 축적하는 데 삶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사회는 점차 병들어갔다. 쉴 틈 없는 업무환경부터 살인적인 근로시간까지.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등 재정상태가 바닥을 긴다. 한마디로 ‘웰빙’하지 못한 상태다.
◆경제 성장할수록 황폐화되는 정신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유례 없는 발전을 이뤘다. 반세기 만에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성장했고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의 회원국이 되는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국가로 거듭났다.
이 같은 성장의 바탕에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은 전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서구국가들이 산업혁명 이후 200여년간 쌓아올린 업적을 한국은 50년 만에 이뤘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먹고 살수 있게 되면 행복할 줄 알았던 한국인의 믿음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사업가 A씨(55)는 “경제가 성장할수록 삶이 더 고된 느낌”이라며 “예전과 달리 근래 들어 사회가 각박해졌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관계에서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한국인은 더 많은 노동력을 강요받았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살인적인 근무를 일컫는 ‘크런치모드’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휴일과 퇴근이 사라지고 야근과 주말출근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개인적인 용무와 여가는 물론 심지어 병원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한국사람의 절반가량은 한달에 한번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B씨(45)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병원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알게 된다”며 “평일에만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대다수일뿐더러 회사에서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심지어 법으로 규정된 연차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삭막한 대인관계와 살인적인 업무환경은 한국인을 사지로 내몬다. 지난 2월 강북삼성병원 기업가정신연구소는 4시간 이하로 잠을 자는 사람은 7시간가량 잠을 자는 사람보다 4배 이상 우울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잠잘 시간도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8.7명으로 OECD 평균인 10만명당 12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인은 잠을 줄여 돈을 벌고 삶을 관리하는 경향을 지녔다. 과연 이 행동이 옳은 것일까.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수면부족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우울증을 동반하면 그 증상은 더 심해진다”며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한다는 교육이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한국인의 정신이 더 피폐해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벌어도 벌어도… 웰빙하지 못한 재정
잠과 일상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에 몰두한 한국인은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가정이 번듯한 자동차를 소유하고 가족수만큼의 휴대전화를 보유하는 등 윤택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그것은 빚더미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평균 가정은 연간 4767만원을 벌어 843만원을 연금과 세금에 쓴다. 이외의 가처분소득 3924만원 가운데 대출금 상환에 952만원을 지출한다. 전체 수입의 25%를 빚 갚는 데 사용하는 셈이다. 문제는 소득보다 부채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현재 가구의 평균 부채는 6655만원으로 전년보다 6.4% 증가했다. 금융부채를 보유한 가구 중 70.1%가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했으며 ‘부채상환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응답한 가구도 6.1%에 달했다. 한국인은 네덜란드 국민보다 연중 800시간 더 일하지만 소득은 늘지 않고 빚만 불린다.
왜 재정은 풍족해지지 않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의 ‘근로시간 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일 연장근로를 실시하는 사업체 10곳 중 2곳은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5인 이상 29인 이하 사업체의 경우 65.3%만이 가산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이 한국인이 아무리 일해도 재정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주된 원인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재정·건강 문제가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해결책으로 근로조건 완화를 주장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근대적인 근로기준제도를 현대화해야 한다”며 “기업생태계가 근로자의 건강과 미래를 뺏는 착취구조가 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6호(2017년 9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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