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날씨가 추워져도 과거보다는 살아가기가 훨씬 낫다. 지구온난화로 추위 자체가 예전에 비해 덜한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의 국민소득이 전체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사회 인프라 구축이 잘 돼 실내는 어디나 따뜻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수단을 타더라도 버스와 전철 안 모두 훈훈하다.


하지만 겨울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살아가기 힘든 사람도 있다. 생활비 한푼이 아까워 난방비를 절약하는 빈곤층 얘기다.

TV 방송에서 한 부부가 어린 자녀를 두고도 겨울에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대신 아이에게 내복을 두겹 세겹으로 입혀 재운다고 한다. 그래도 감기에 안 걸리고 괜찮다고 아이의 부모는 말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튼튼할 거야'라며 짠한 마음을 스스로 달랬다. 겨울이라도 등산이나 캠핑을 하며 내의를 껴입고 침낭에 들어가 자는 경우도 있으므로 야외가 아닌 집안에서 그와 비슷한 상태로 잠을 자는 게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취미를 즐기려고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빈곤해서 처한 상황이기에 안타깝다.

◆농어촌, 난방비 부담 큰 이유


난방이 부실한 쪽방 모습. /사진=뉴시스 주상철 기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표준가구의 지역별 최저생계비에서 수도광열비가 대도시는 10만9063원, 중소도시 11만1023원, 농어촌 9만8293원으로 나타났다. 난방비를 아끼면 10만원 가까이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지출이 100만원 미만인 가구(2인 이상 가구 실질지출 기준) 비율이 13%나 된다. 살림이 빠듯한 가정이라면 한달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난방비를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도시가스나 지역난방보다 석유난방 사용률이 더 높은데도 소득계층별로 사용하는 난방연료는 모순된 결과를 보인다. 소득이 낮은 집단에서는 값비싼 석유의 사용 비중이 큰 반면 소득이 많아질수록 가격이 저렴한 도시가스와 지역난방 사용 비율이 높다.

농어촌에서는 47.2%가 석유를 1순위로 사용하며 저소득집단에서는 이 비율이 70% 가까이 된다. 대도시보다 중소도시가 전체적으로 석유 사용비율이 높다. 대도시에서는 소득계층을 막론하고 도시가스나 지역난방 사용비율이 매우 높은 반면 중소도시에서는 소득계층별로 크게 차이 난다.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도시가스와 지역난방 접근성이 농어촌지역은 낮고 큰 도시일수록 좋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도시가스 보급률이 서울(98.0%), 광주(97.6%), 대구(94.8%), 대전(94.0%) 등 광역대도시와 경북(60.3%), 전남(45.4%), 강원(43.6%), 제주(8.8%) 등 지자체의 차이가 심하다. 또한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저소득층일수록 주거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난방수단에서 차이가 난다.

도시가스가 들어와도 가스보일러가 아닌 기름보일러를 설치한 집도 있다. 오래전에 필자가 세 들어 살던 집이 기름보일러로 난방하는 집이었는데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집들에 비해 난방비용이 상당히 많이 나와 부담이 컸다. 연로한 어머니가 계셔서 집을 춥게 할 수 없어 난방을 제대로 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난방을 줄여 생활비를 아끼고 싶었다. 필자는 소득이 지금보다 훨씬 적던 시절에도 값비싼 기름을 사용하는 보일러가 설치된 주택에 살았고 소득이 늘어난 지금은 값싸고 편리한 도시가스 보일러를 사용하는 아파트에 산다.

◆도심서 연탄으로 추위 녹이는 사람들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서울 중심에서도 연탄재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도시가스 보급률이 100%에 육박하는 서울의 중심지역에서 기름보일러도 아닌 연탄보일러 쓰는 집을 최근에 봤다. 언덕 위로 약간 올라가는 동네였는데 길에 하얀 연탄재가 깔려 있었다.

매일 연탄 가는 일은 매우 귀찮다. 연탄을 집에 들여오고 재가 생기면 버려야 한다. 연탄가스의 누출 우려까지 있다. 이에 도시에서는 난방비가 많이 나가더라도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꾼 가구가 대다수다. 도시가스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기름보일러에서 가스보일러로 난방을 교체하는 추세다. 아직까지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집은 난방비가 저렴하므로 굳이 돈 들여 보일러를 교체하지 않고 사용하던 보일러를 계속 쓰는 것이다.

연탄은 연소할 때 발생하는 산성성분의 황화가스로 인해 오래 사용하면 보일러 재질이 부식된다. 또한 연탄이 완전 연소되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날씨나 기타 조건에 따라 일부 탄소가 불완전연소되면 일산화탄소가 생긴다. 독가스인 일산화탄소는 자살하는 사람이 일부러 마시기도 하는 성분이다.

옛날엔 겨울이면 연탄아궁이의 온돌방에서 자던 사람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다. 아궁이에서 생겨나는 뜨거운 가스가 통과하는 구들장에 틈이 생겨 일산화탄소를 품은 연탄가스가 방안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연탄보일러도 보일러 재질이 상하면 가스가 누출돼 위험할 수 있다.

◆난방기름 지원은 왜 안하나

이처럼 빈곤층 가운데는 난방비가 많이 들어가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거나 보건문제가 생길 수 있는 낡은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집이 여전히 많다.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어떤 할머니는 보일러 교체비용 전액을 시에서 지원해준다고 해서 10여년 전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교체했다.

그러나 난방 연료비 때문에 멀쩡한 기름보일러를 뜯어내고 다시 연탄보일러로 바꿨다. 사실 연탄은 기업과 복지단체에서 기부를 많이 해주는 반면 난방용 기름 지원은 매우 적다. 후원이 연탄에 집중돼 쪽방촌에는 연탄보일러 쓰는 집이 기름보일러 쓰는 집의 2배가 넘는다. 기름값이 수년간 하락한 반면 연탄값은 지난해 대폭 인상돼 연탄의 가격 메리트가 줄었는데도 말이다.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단체는 있지만 기름을 지원하는 운동단체는 찾기 어렵다. 연말이나 겨울에는 연탄 봉사 이야기가 ‘연탄천사’, ‘기부천사’란 표현과 함께 언론매체에 등장하고 대중스타나 정치인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12월16일에는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마을에서 동계스포츠 선수들과 유명 정치인이 연탄 배달하는 사진이 언론에 실렸다.

해외에서 지원받는 경우도 있다. 서울 창신동 꼭대기 판자촌의 98세 할머니가 사용하는 연탄보일러는 국내에 후원자가 없었는데 미국에 거주하는 익명의 한국 동포가 350달러를 기탁해 시공이 이뤄졌다.

봉사하는 모습을 널리 알리는데 효과가 큰 연탄에 후원과 봉사가 집중되고 기름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빈곤계층 다수가 여전히 연탄보일러를 고수하는 현실을 곱씹어보자. 복지와 기부도 현실을 다각도로 파악하고 실천에 옮겨야 실질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빈곤계층의 난방문제는 요금감면, 쿠폰·바우처방식, 난방기기교체방식, 주거환경개선 등 여러 방식으로 상황에 맞게끔 접근해야 한다.

아파트 거주자는 대부분 난방설비 문제를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연립주택이나 다세대 주택 거주자는 난방을 하지 못한 경험이 꽤 있다. 단독주택 거주자 중 저소득층은 난방시설문제가 더 크다. 겨울철에 난방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가구는 전체 가구 중 2.6%인 반면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가구(중위소득 40% 이하) 중에서는 17.9%나 된다.

‘난방이 적절히 갖춰지지 못한 곳에서 생활한다’는 비율이 전체 가구 기준 13.2%인 반면 수급대상자는 28.0%에 달한다.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가질 때 막연히 도와주기보다는 가정마다 개인마다 애로사항이 가장 많은 부분은 어디인지를 파악해 도움의 손길을 보내자.

☞ 본 기사는 <머니S> 제520호(2017년 12월27일~2018년 1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