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의 추억과 젖줄을 잉태한 곳


철암탄광역사촌과 철암역두선탄장 전경. 선탄장 위쪽으로 비축용 탄이 초록색 천으로 덮여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고속열차는 빠르다. 불과 100분이면 서울에서 강릉이다. 강릉지역 접근성이 좋아져 이른바 ‘찍고 돌아오는’ 당일치기 강릉여행이 가능하다.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경강선 KTX는 강릉관광의 '새 기관차'로 우뚝 설 모양이다. 게다가 평창올림픽 특수를 잡았으니 경강선 KTX의 속도는 거침없다.

같은 산맥을 넘어가도 어떤 기차는 예나 다름없다. 빠른 경강선 KTX를 위해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 길을 터준다. 태백을 거쳐 삼척으로 넘어가 가쁜 숨 몰아 쉬며 강릉에 닿는 열차는 양보가 몸에 배었다. 태백선은 평창올림픽 노선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빠른 길을 내주고 멀리 돌아온 덕에 서울에서 강릉까지는 꼬박 6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렇기에 느릿느릿 완행열차를 이용해 머무는 태백여행은 어머니 품처럼 정겹다.


태백역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무궁화 열차. 하루 6~7차례 청량리역을 오간다. /사진=박정웅 기자

오래전 폐선된 윤후명의 수인선 협궤열차 소리가 태백행 열차에 빙의한 듯하다. '사우르스…사우르스…'하며 들리던 공룡열차의 발자국 소리. 효율성과 공공성 간의 평행선. 숱한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평행의 궤도는 효율이란 이름의 빠름을 짐짓 외면한다.

남들보다 더 빨라야 직성이 풀리는 수상한 시대. 청량리역에서 태백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크고 흰' 원시의 깊은 곳을 향한 열차는 호흡이 가쁜 듯 가다 서다를 거듭한다. 먼 길 돌아 당도한 눈 내리는 강원도 태백시, 그곳엔 자연과 사람이 빚은 이야기꽃이 하나둘 피어난다. 태백시는 이러한 관광자원을 배경으로 1월19일부터 2월11일까지 '제25회 태백산 눈축제'를 연다.

◆한반도의 젖줄, 검룡소와 황지


태백은 한강과 낙동강 두 젖줄의 시원을 품고있다. 검룡소(儉龍沼)와 황지(黃池)는 각각 514㎞ 한강과 525㎞ 낙동강의 공식 발원지다.

검룡소 전경. 이무기가 소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쳤다는 형상이 작은 폭포를 이뤘다. /사진=박정웅 기자

금대봉 기슭의 검룡소는 하루 평균 2000여톤의 생명수를 뿜어낸다. 검룡의 전설은 재미있다. 용이 되려고 한 서해의 이무기가 한강하구의 김포를 거쳐 이곳 검룡소까지 왔다. 소(沼)에 틀어박히려 애쓴 자국인 여러 겹의 작은 폭포가 인상적이다. 이무기는 소에서 승천 기회를 엿보며 주변의 가축을 잡아먹었다. 이에 격분한 주민들이 이무기를 죽인 뒤 소를 메워버렸다.

1억5000만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 연못인 검룡소는 생태·지리적 가치가 있어 2010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됐다. 안타깝게도 검룡이 소에서 빠져나오려는 듯한 용출의 몸부림을 볼 수 없다. 그 모양이 괴이한 나머지 탐방객 심리 보호 차원에서 큰 돌로 소 입구를 틀어막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검룡소 주차장 인근의 검룡소 상징물. 한강 발원지를 나타낸 것으로 물방울과 한강유역을 형상화했다. /사진=박정웅 기자

낙동강 시원인 황지는 태백시내 중심부인 황지읍 황지공원에 있다. 하루 5000여톤의 물이 용출하는데 상지, 중지, 하지 이렇게 세 못으로 이뤄졌다. 검룡소처럼 아이들에게 익숙한 전설이 있다.

황지는 황부자 집터가 연못이 됐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황부자가 탁발하는 노승에게 쇠똥을 퍼주자 깜짝 놀란 며느리가 쇠똥을 덜어내고 사과하며 대신 시주했다. 노승을 따라 나선 며느리가 노승의 경고를 뿌리치고 뒤를 돌아보자 황부자 집터가 순간 연못으로 변했고 못된 시아버지는 이무기가 됐다는 전설이다. 이때 집터는 상지(큰 연못), 방앗간터는 중지, 화장실 자리는 하지로 변했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의 상지. 황지 전설인 황부자와 며느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세 물줄기 나뉘는 삼수령과 걷기여행

매봉산 삼수령(三水領)은 이름처럼 세 물줄기가 나뉘는 고개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북쪽으로 향하면 한강으로 흐른다. 또 남쪽과 동쪽이면 각각 낙동강과 오십천이다. 삼수령 기념비는 옛 국도 35호선을 따라가야 있다.


기념비가 지난달 30일 개통한 35호선 삼수령터널 위에 있어서다. 삼수령의 지정학적 가치는 크다. 백두산에서 내려온 백두대간은 삼수령에서 오른쪽 태백산으로 다리를 뻗고 왼쪽 백병산 방향으로 낙동정맥을 키운다. 산경표의 '산은 스스로 물길을 나눈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삼수령을 기준으로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걷기여행 코스가 있다. 제1코스(낙동정맥구간)는 황지연못-바람부리마을-하약골-창신월드-대박동-작은피재(삼수령)다. 9.5㎞ 코스는 4시간30분 걸린다. 또 제2코스는 작은피재-매봉산-바람의언덕-수아발령-검룡소주차장-검룡소 구간이다. 8.5㎞로 4시간이면 충분하다.

특히 매봉산을 아우르는 2코스는 태백의 독특한 기후와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상쾌한 높새바람을 맞으며 고랭지 배추단지, 바람의언덕(풍력발전단지), 해바라기정원, 야상화 군락지를 두루 볼 수 있다.

인근의 금대봉은 야생화 천국이다. 금강제비꽃, 노랑갈퀴 등 특산식물과 왜미나리아재비, 나도바람꽃, 한계령풀, 덩굴용담 등 희귀식물이 자생한다. 이 탐방길은 보호지역으로 11월부터 5월초까지 출입을 전면 통제한다. 나머지 기간엔 국립공원관리공단 예약·가이드제를 통해 한정 인원이 탐방할 수 있다. 또 같은 기간 태백시 관내에서 지출한 영수증을 증빙하면 입장할 수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에 있는 옛 한보광업소 터널. 터널을 지나면 동백산역 선탄장이 있었다. /사진=박정웅 기자

◆영산 아래 깃든 광도(鑛都) 태백시

하늘의 영령이 깃든 태백산 자락의 태백. 이처럼 태백의 먼 옛날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반면 산업화를 맞으면서 태백은 그동안 없었던 애절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검은 황금이나 진주를 뜻하는 석탄과 잇댄 태백의 이야기다.

과거엔 화전민만 살던 태백지역은 행정구역상 삼척 관할이었다. 태백시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981년이다. 당시 '국민연료'인 석탄의 안정적인 공급차원에서 전국 최초의 탄광도시가 됐다. 1933년 장성 일대에서 우리나라 첫 탄맥이 발견됐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본격 채굴된 이 지역 탄광의 석탄은 산업용이나 가정용으로 두루 쓰였다. 탄광 개발 여파로 1961년과 1973년 당시 삼척의 상장과 황지가 각각 장성읍과 황지읍으로 승격됐다. 광도 태백시는 이 두 읍을 합친 것이다. 현재 경찰서와 시청이 장성과 황지에 각각 들어선 것만으로도 태백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석탄 호황기, 태백의 인구는 12만명에 달했다. 인구의 95%가 외지인이었을 정도니 돈의 위력이 대단했다. 이후 석탄산업 침체와 석탄산업합리화정책(1989년)의 여파로 50여개였던 탄광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인구는 4만명대로 급감한다.

철암천 까치발 집. 태백시는 이러한 구조의 집 11동을 매입, 철암탄광역사촌으로 만들었다. /사진=박정웅 기자

◆세상에 온기 나눠주고 사그라진 태백

'유흥업소만 500개 이상'. 태백이 과거 석탄으로 호황을 맞았다는 지표로 인구수와 함께 이 수치가 등장한다. 검은 황금을 찾기 위해, 혹은 어쩔 도리 없이 삶의 끝자락을 막장에 떠민 이가 많았던 반면 태백은 돈이 차고 넘쳤을 것이다. 또 이 목숨과도 같은 돈을 노리는 이도 많았을 법.

노산 이은상은 1975년 2월 산업전사 위령탑 <명예로운 광부>에 이렇게 적었다. "강원도 안에 있는 여러 광산에서 희생된 산업전사들이 정부 수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못 1703명이요 그밖에 생명과 내력을 알길 없는 무명전사들까지…, 부디 이 제사를 받으시고 명복을 누리옵소서."

철암탄광역사촌 전경. 당시의 주상복합 건물들을 재구성해 탄광역사촌으로 꾸몄다. /사진=박정웅 기자

광산에선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무너져 내린 갱도에서 탈출하지 못하거나 살아남았더라도 진폐증을 비롯한 각종 병마와 싸우다 숨졌다. 당시 공무원 임금의 2배 이상을 벌었다는 광부의 급여는 사투치고는 적은 것이었을까.

검은 가래를 삼키기 위해 돼지고기를 구웠고 막장생활 첩첩산중이라 소주잔 또한 넘쳤을 것이다.

살아남은들 그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졌겠는가. 그들이 캔 탄은 세상을 지폈고 그들이 들이킨 탄가루는 가족을 데웠다. 폐가 규화목이 되고서야 곡괭이를 내려놨다. 막장생활 5년이면 진폐증이 뒤따른다는 게 한참이 지나서 밝혀졌다. 광부시인 성희직은 여의도에서 손가락을 잘랐다.

◆철암탄광역사촌과 철암역두선탄장

전국 450여개에 이르던 탄광이 지금은 5개로 쪼그라들었다. 지역으로 보면 전남 화순이 1곳이고 태백과 도계(삼척)가 2곳씩이다. 화순은 화재 여파로 가동이 중단됐다고 한다. 태백의 2곳은 장성에 있다.

광부의 삶. 철암탄광역사촌에는 광부의 삶을 표현한 작품이 많다. /사진=박정웅 기자

"불원천리 장성땅에 돈벌러 왔다가/ 꽃같은 요내 청춘 탄광에 늙네// 작년간다 올해간다 석삼년이 지나고/ 내년간다 후년간다 열두해가 지났네// 남양군도 검둥이나 얼굴이나 검지/ 황지장성 사는 사람 얼굴 옷 다 검네// 통리공개 송애재는 자물쇠 고개인가// 돈벌러 들어왔다가 오도가도 못하네// 문어낙지 오징어는 먹물이나 뿜지/ 이내 몸 목구멍에는 검은가래가 끓네" <태백아리랑>

광부와 그들의 가족사는 철암탄광역사촌, 태백석탄박물관, 태백체험공원(탄광사택촌)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중 철암탄광역사촌은 생활사박물관이다. 철암지역은 한때 2만4000여명이 거주할 정도로 번성했다. 비좁은 철암천 양쪽에 기둥을 세운 '까치발 집'을 짓고 살았다.

탄광이 쇠락하면서 빈 까치발 집은 사라졌다. 태백시는 11동을 매입, 철암탄광역사촌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이 광부의 삶을 조명한 곳으로서 가족여행지로 매우 좋다. 영화 <1987>이 이곳을 찾았다.

철암천 건너편 전망대에 오르면 철암역두선탄장과 철암역을 볼 수 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지다. 선탄장은 쓸모 있는 탄을 고르는 집하장이다. 이곳의 선탄시설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한국 최초의 것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철암역에서 보는 게 가깝고 코레일 관광열차(오 트레인, 브이 트레인)가 정차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 지진으로 붕괴한 우르크발전소를 배경으로 포토존이 있다. 한보광업소 목용탕을 재활용한 것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태백시티투어 팁

열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태백 가족여행이라면 태백시티투어를 눈여겨볼 만하다. 태백의 자연과 삶의 속살을 버스로 편리하게 만날 수 있다. 총 2코스로 이뤄졌다. 1코스(태백 산따라 물따라 코스)는 태백역-구문소 및 고생대자연사박물관-철암역-철암탄광역사촌-황지자유시장-검룡소-용연동굴-철암역-태백역으로 구성된다. 2코스(통리5일장 코스)는 태백역-검룡소-통리5일장-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구문소-365세이프타운-태백역이다. 2코스는 통리5일장이 서는 매달 5일, 15일, 25일만 운영한다. 시티투어는 태백역이 기점이어서 열차와 연계성이 좋다. 매일 운영하나 전체 예약 7인 미만일 경우 취소된다. 운행 확인은 하루 전 오후 2시까지 개별 안내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4호(2018년 1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